예산에 맞춰 철저하고 각별하게 감시한 사각지대

유례 없는 국정농단 사태로 탄핵 된 박근혜 전 대통령.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탄핵 사유는 ▲국민주권주의 및 법치주의 위반(최순실 등 비선조직의 국정농단에 따른) ▲헌법 수호 의지 부족 등이다. 결정문으로만은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모든 정책에서 소외 당한 사람들의 삶이 설명되지 않는다.
이에 웰페어뉴스에서는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사회약자 관련 정책이 어떻게 변했는지 3회(장애계, 빈곤, 인권)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두 번째로 박근혜 정권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알아보기 위해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을 만났다.

지난 2012년 12월 20일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 그는 도시락을 들고 창신동 쪽방지역에 사는 노인을 찾았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 소외 계층을 생각하는 대통령’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직후에도 ‘시국이 어수선하고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더욱 힘들어지는 것은 서민과 취약계층의 삶이다. 단 한 곳의 사각지대도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고 각별하게 챙겨 봐주실 것’을 강조했다.

만약 그 마음에 일말의 진정성이 있었다면, 그는 정권 4년동안 제도‧정책으로써 성과를 보였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 4년동안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박 전 대통령은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공약으로 ▲기초생활보장 사각지대 완화 ▲맞춤형 빈곤정책 대상 확대 ▲기초생활보장제도 급여체계 개편 등을 내걸었다.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절반 이상 탈락

내가 시설에 있었을 때 탈시설을 하고 싶어 서울시 자립생활센터에 주택 입주신청을 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내가 수급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탈시설 뒤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신청을 거부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나에게 탈시서의 기회마저 빼앗았다. 부모님이 그들의 노후를 보낼 수 있을만큼의 적은 돈이 있다는 이유로 나는 평생 시설에서 살아야 하는가. 나의 자립을 돕지는 못할망정 연로한 부모에게 나를 책임지라는 국가가 너무하다.

지난 2014년 장애인거주시설을 나와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황인현  씨.

그는 자립생활을 위해 기초생활수급을 다섯 번이나 신청했지만 매번 거절 당했고, 그럴 때마다 자립생활의 꿈은 좌절로 끝났다. 

기초생활수급 신청자의 배우자나 부모, 1촌 직계 혈족 등 부양할 책임이 있는 사람을 부양의무자라 한다. 부양의무자에게 일정 기준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신청자(신청자의 소득이나 재산이 적더라도, 혹은 부양의무자와 단절된 체 살아가더라도)는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많은 이들이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삶을 마감하거나,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박근혜 정권은 폐지가 아닌 완화를 선택했다.

기존 부양의무자 기준은 ‘수급가구와 부양의무자 가구의 최저생계비를 합한 금액이 130%(취약가구 185%)를 초과할 경우’다.

지난 2015년 개정된 기초생활보장법의 맞춤형 급여에서는 부양의무자의 소득에서 수급자의 최저생계비를 뺐을 때 중위소득 미만인 경우 모두 부양능력 없음(또는 미약) 상태로 완화했다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로 사각지대에 놓인 12만 명이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으나, 2010년 기준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사각지대가 117만 명임을 고려할 때 턱없이 낮은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지난 2015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 신청자 중 절반이 넘는 67.59%의 사람이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권에서 탈락했다. 탈락자 중 부양의무자를 포함한 친지, 이웃에게 도움을 받는 가구는 24.38%에 불과하다.

김 사무국장은 “부양의무자 기준은 완화됐지만 수급률은 지난 2012년 3.2%, 2015년 2.6%로 오히려 하락했다. 완화만으로는 사각지대 축소 효과는 크지 않다는 반증이다. 결국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사각지대 해소의 해결책.”이라고 전했다.

대상 확대 위한 중위소득 적용, 예산에 짜맞추는 유용한 수법

▲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기준.
▲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기준.

박 전 대통령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을 확대하기 위해 선정기준을 기존 최저생계비(인간으로서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에서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 순위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해당하는 가구의 소득)으로 변경했다.

2017년 중위소득은 4인가구 기준 439만1,434원, 1인 가구 기준 162만4,831원으로 지난해 대비 1.7% 소폭 올랐다. 문제는 정부가 중위소득을 결정하는 기준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5년 중위소득 결정기준에는 농어가가구가 제외됐고 지난해에는 다시 포함됐다. 농어가가구는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가구로 이를 포함할 경우 중위소득 기준이 크게 달라진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떤 대답도 없이 중위소득 결정과정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7년 최대생계급여액은 중위소득 대비 30%(4인가구 기준 134만214원)로, 개정 이전 2015년 기준 지급됐던 최대현금급여액(134만9,428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심지어 제도 도입초기 근로자가구 평균소득 대비 40.7%였던 최저생계비(2011년 143만9,413원) 보다 더 적다.

김 사무국장은 “정부는 선정기준을 최저생계비에서 중위소득으로 바꾸면서 수급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홍보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중위소득에 따른 생계급여액은 기존 최저생계비 책정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심지어 중위소득 기준도 일정치 않다. 정부가 예산에 따라 중위소득을 짜맞추는 것은 아닌지 의심마저 든다.”고 말했다.

맞춤형 급여체계, ‘그럴싸하게 이름만 바뀌어’

박 전 대통령은 공약 발표 당시 ‘통합급여체계는 수급자에게 복지혜택이 집중돼 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사이에 소득역전 등의 부작용이 있으며, 이로 인해 근로의욕 저하와 탈수급 기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하며 ‘수급자 중심의 통합급여체계를 맞춤형 급여체계로 확대 개편하겠다’고 했다.

김 사무국장은 박 전 대통령이 소득역전(기초생활수급자가 차상위계층보다 소득이 많은 현상) 용어를 쓰며 기초생활수급권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것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정부의 잘못된 인식을 꼬집었다.

2017년 기준 최대생계급여액은 4인가구 134만214원, 1인가구 49만5,879원이다. 오늘날 물가를 감안할 때 결코 큰 액수가 아닌, 말 그대로 생계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금액이다.

만약 차상위계층이 이보다 적은 수입으로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간의 소득역전 현상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기초생활수급자가 소득이 많은 것이 아니라 차상위계층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수입도 얻지 못함을 의미한다.

김 사무국장은 “소득역전현상은 부양의무자 기준 등 기초생활수급의 높은 문턱으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기초생활수급자를 마치 ‘대단히 잘 사는 사람’처럼 묘사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혼자 중·고등학생인 딸 둘을 키우고 있는 ㄱ 씨. ㄱ 씨의 월 수입은 180만 원 미만이다. 이는 3인 기준 교육급여(기준중위소득 50%-178만9,509원) 수급 대상자에 속하는 수입으로, 두 딸에 대한 교육급여를 받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 ㄱ 씨는 일터로부터 밀린 수당 20만 원가량을  받으면서 교육급여 대상에서 탈락했다.  월 180만 원이 조금 넘었다는 게 그 이유다.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 더 이상 교육급여를 받을 수 없는ㄱ 씨는 앞이 캄캄하다.

▲ 급여종류별 수급자 선정 기준.
▲ 급여종류별 수급자 선정 기준.

2015년~2016년 급여종류별 수급자 선정기준에 따르면, 지난해 5월까지 전체 기초생활수급자는 166만8,000여 명이다. 급여별로 살펴보면 ▲생계급여 126만4,000명 ▲의료급여 143만2,000명 ▲주거급여 141만5,000명 ▲교육급여 40만1,000명이다.

정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 뒤 전체 수급자가 167만 명으로, 개편 전 132만 명에 비해 27%(35만 명) 증가했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이는 당초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75만 명 추가 확대 계획의 절반도 달성하지 못한 수치다.

또한 의료급여에서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로 12만 명의 신규진입자가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제도 개편을 통해 늘어난 수급자는 11만 명에 그쳤다.

주거급여 역시 올해 주택임대료상승률을 기준으로 3,000원~9,000원 올랐다고 선전했지만, 실제 받는 금액으로는 최저 주거기준에도 못 미치는 쪽방이나 고시원밖에는 선택지가 없다. 서울에 거주하는 1인가구가 받을 수 있는 최대 주거급여는 20만 원에 불과, 지방이면 금액은 더 적어진다.

예산 효율 중심의 근로능력 판정, 쫓기다 목숨까지 잃어

박 전 대통령은 대외에서는 소득기준‧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를 꺼내든 한편,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근로능력을 내세우며 탈락을 양산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의 ‘근로능력 있음’ 판정은 2012년 12월 국민연금공단이 근로능력평가를 실시하면서부터 꾸준히 늘었다. 국민연금공단 이전 ‘근로능력 있음’ 판정은 5%, 이후 2013년 15.2%, 2014년 14.2%로 세 배 가량 증가했다.

김 사무국장은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1~2년 사이에 갑자기 근로능력이 생겼다는게 말이 안된다.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일할 수 없기 때문에 ‘조건불이행’이라는 명목으로 탈락하고 있다. 행여 근로능력 판정에 대해 이의가 있어도 따로 신청할 곳도 없다.”고 질타했다.

근로능력 있음 판정으로 내몰리고 나면, 취업우선지원사업에 또 한 번 고역을 치른다.

지난 2015년 이전 자활사업 참여를 조건으로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사람의 경우, 지자체의 자활역량평가를 토대로 취업성공패키지사업­(고용센터)―희망리본프로젝트(광역자활센터/민간기관)­―자활근로(지역자활센터/지자체)에 각각 배치됐다.

2015년 근로빈곤층 취업우선지원사업이 시행되면서 이력서 작성, 취업 상담·연계 등 모든 관련 업무는 고용센터가 맡았다. 문제는 전체의 70% 이상을 취업성공패키지에 연계했을 때 고용센터가 평가에서 가점을 받도록 돼 있어 ‘무작정 일자리 연계’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고용센터는 일할 것을 재촉하게 되고, 당사자들은 탈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일단 일자리를 찾고 본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울뿐더러, 무작정 무리하게 일을 시작했다가 다치거나 사망에 이르는 일까지 생긴다.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은 ㄴ 씨. 그는 지자체를 통해 근로빈곤층 취업우선지원사업을 참여해야 한다. 중도에 포기하거나 조건을 불이행하면 수급자에서 탈락하게 된다.

지난 2014년 시범사업에 선정된 지자체에서 취업성공패키지 지원을 받았다. 고용센터에서는 70% 취업 성공 압박에 ㄴ 씨를 재촉했고, ㄴ 씨 또한 취업이 안되면 수급에서 탈락할 것이란 불안감에 시달렸다.

결국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지하주차장 청소일을 시작한 ㄴ 씨, 그는 일을 시작한지 2개월만에 심장 쇼크로 혼수상태에 빠졌고 사망했다.

ㄴ 씨는 심장쪽 대동맥 기형으로 호흡이 일정하지 않아 주변 먼지·청결 상태에 영향을 많이 받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사무국장은 “박근혜 정권은 예산 효율화란 명목 아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처참하게 만들었다. 근로지원사업 역시 기존에 지자체, 민간기관, 등이 함께 해놓던 것을 고용센터에 전임해 악화 시켰다. 자활사업에 참여해야 수급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조건을 달면서, 정작 일할 수 있는 체계는 만들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며 정부는 ‘수급’을 빌미로 압박만 할 뿐이었다.”고 비판했다.

시민·사회단체는 먼저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사각지대가 크기 때문에, 먼저 이를 통해 기초생활수급 진입 문턱을 낮추자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복지사각지대 해소’란 목표 아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그러나 사각지대 양산의 핵심 문제인 부양의무자 기준은 그대로며, 빈곤에 놓인 사람들의 삶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당선 직후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에는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해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 사람을 처벌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에 경찰이 구걸을 하는 사람을 현장에서 연행하고, 주소지가 불명확할 경우 인신구속도 가능하게 됐다. 시민사회단체는 구걸 행위 처벌에 대해
▲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당선 직후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에는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해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 사람을 처벌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경찰이 구걸을 하는 사람을 현장에서 연행하고, 주소지가 불명확할 경우 인신구속도 가능하게 됐다. 시민·사회 단체는 국가에도 책임이 있는 빈곤 문제를 간단한 처벌로 해결하려는 것에 강하게 분노하며 기자회견과 선전전을 진행했다. ⓒ빈곤사회연대 최인기 활동가
▲ 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지난달 12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더 처참하게 만드는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쳤다.
▲ 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지난달 12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더 처참하게 만드는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쳤다. ⓒ빈곤사회연대 최인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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