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계, 제한된 문화접근성 지적하며 장애유형에 맞는 문화권 확보 주장
문화권 공약 제안서 더불어민주당·정의당·국민의당에 전달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갔는데, 영화관에 휠체어 석이 두자리 뿐이다. 휠체어 석 옆에는 좌석도 따로 없다. 나는 휠체어 석에서 보고, 친구는 비장애인 좌석에서 각각 보라는 뜻인가.  영화관 맨 뒤에 휠체어 자리 두 개 마련해놓고, 접근성 확보했다? 과연 그러한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장애인의 영화·공연 관람 등 문화시설에 대한 접근 환경이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원하는 영화를 보지 못하고, 제한된 자리에서만 공연을 관람해야 한다.

▲ 장애인 문화접근권 공동대책위원회는 18일  장애인문화권 공약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장애인 문화접근권 공동대책위원회는 18일 장애인문화권 공약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에 다음달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계 단체는 장애인 문화접근권 공동대책위원회(문화공대위)를 구성해 대통령 후보에게 문화권 공약 수용을 촉구했다.

문화공대위는 장애인의 문화와 예술 관련 문제를 시혜의 관점이 아닌 권리의 문제로 인식할 것을 요구하며 ▲영화와 연극 등 문화공연장 편의시설 설체, 정보 접근환경 단계적 의무화 ▲온라인을 통한 영화, 공연정보와 매표가 가능하도록 단계적 의무화 ▲장애인 창작 지원과 관련 정책 마련 ▲법률 제·개정과 예산 확보를 통한 장애인의 보편적 정책 마련 등을 제언했다.

장애인문화누리 김철환 실장은 “수 년동안 문화권 보장을 위해 투쟁해온 결과 휠체어 자리가 생기겼고, 수화 통약 방송이 늘었고, 화면해설 영화도 생겨났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하다.”며 “휠체어 자리가 있지만, 공연장 맨 끝이거나 맨앞에 있다. 자리 선택권도 없이 고개를 높이 들어 영화를 보거나, 맨 뒤에서 겨우 봐야한다. 화면해설 영화가 생겼지만, 극히 일부 뿐이어서 장애인들은 정작 보고픈 영화를 보지 못할 때가 많다.”고 부족한 장애인 문화권 실태를 전했다.

이에 기자회견을 통해 당사자들은 문화권 보장이 되지 않아 겪는 불편함을 토로했다.

▲ (왼쪽부터)동서울장애인자립센터 오명철 대표, 장애인정보문화누리 함효숙 활동가
▲ (왼쪽부터)동서울장애인자립센터 오명철 대표, 장애인정보문화누리 함효숙 활동가

동서울장애인자립센터 오명철 대표는 “‘시각장애인은 한국영화를 보고, 청각장애인은 해외 영화를 본다’는 말이 있다. 장애인 문화권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인 듯 하다. 그러나 최근 한국영화에도 중국사람 혹은 일본사람들이 등장해 중국어, 일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비장애인의 경우 자막으로 보면 되지만, 시각장애가 있는 나는 그 말들을 이해할 수 없다.  결국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영화관을 나온 적도 있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청각장애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 함효숙 활동가는 “여느 학생들처럼 내 자녀도 아이돌을 좋아한다. 한 번은 아이돌이 나오는 음악방송 관람 신청을 했는데, 운좋게 당첨이 됐다. 딸이 신나서 방송국을 갔지만, 이내 좌절을 맛봐야 했다. 입장에서 관람까지 자막이나 통역사가 한명도 없어서 방청을 제대로 즐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상시 수화 방송도 생기고, 자막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짧았다. 일상생활에서 청각장애인이 문화를 누리기에는 여전히 많은 것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이렇듯 그동안 문화권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즐겨야 했다. 문화 공대위는 앞으로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다양한 문화를 선택해서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는 “문화를 즐기고 누리지 못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문화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중요한 요소다. 어떤 드라마가 유행인지, 어떤 뉴스가 사회 화두가 되는지를 알아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나아가 장애인은 장애인 문화, 비장애인은 비장애인 문화 따로 구분돼 함께 살아갈 수 없게 만든다.”고 문화권 보장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 문화 공대위는 (위부터)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국민의당을 차례대로 방문해 ‘장애인 문화권 확보 공약 요구안’을 전달했다.
▲ 문화 공대위는 (위부터)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국민의당을 차례대로 방문해 ‘장애인 문화권 확보 공약 요구안’을 전달했다.

이어 오명철 대표는 “문화권은 말 그대로 권리다. 권리는 선택, 의지가 핵심이다.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는 자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이런 것들이 보장돼야만 진정한 의미의 문화권이 실현되는 것이다. 시각·청각·지체 등 장애유형에 따라 문화 선택이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장애유형에 상관없이 누구나 문화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다. 문화 공대위는 문화권이 단순히 문화 콘텐츠만 관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창작하고 활동할 수 있는 데 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철환 실장은 “그동안의 문화권은 장애인이 수동적으로 문화를 ‘보는 것’에 그쳤다. 앞으로는  능동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온라인을 통해 직접 티켓을 예매하고,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개선, 근거법률 마련이 필요하다. 정부가 문화권에 관련한 법 제정을 통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문화를 즐기고, 누리고, 만들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장했다.

한편 문화 공대위는 기자회견이 끝난 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국민의당을 차례대로 방문해 ‘장애인 문화권 확보 공약 요구안’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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