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례를 중심으로 바라본 시각장애인 방송접근권 개선 방향
“모두를 위한 ‘화면해설방송 확대’ 대비해야”

▲ '시각장애인 방송접근권 제고를 위한 정책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 '시각장애인 방송접근권 제고를 위한 정책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11년 12월 26일, ‘장애인방송 편성 및 제공 등 장애인 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이하 방송접근권 고시)’가 제정된지 약 5년이 지났다. 이에 시각장애인의 방송접근권을 되돌아보고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장애인재단이 주최하고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가 주관한 ‘시각장애인 방송접근권 제고를 위한 정책 토론회’가 지난 30일 KBS미디어센터에서 열렸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11년 방송접근권 고시의 제정으로 방송사업자의 자막·수화·화면해설 등 장애인방송 제공이 의무화돼 대상사업자의 범위와 장애인방송 편성비율 등 세부사항을 고시, 장애인의 방송접근권을 보장하고자 했다.

이로 인해 지난 2016년 기준 한국의 장애인방송 편성의무 달성 현황을 살펴보면 95.7%가 장애인방송을 편성하는 등 양적 목표가 충족되고 있지만, 여전히 인기 프로그램은 제외되는 등 질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전문가들은 화면해설방송의 질을 높이기 위한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시각장애인과 모두를 위해 필요한 ‘화면해설방송’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2015년도에 실시한 ‘언론수용자의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미디어별 하루 평균 이용시간은 텔레비전이 153.8분, 인터넷이 103.8분으로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언론수용자들에게 텔레비전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각장애인은 여기서 배제되고 있다.

▲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하종원 교수가 영국 사례를 통한 우리나라 화면해설방송의 진단과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하종원 교수가 영국 사례를 통한 우리나라 화면해설방송의 진단과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하종원 교수는 “시각장애인들은 방송접근이 어려운 이유로 화면해설방송 등 시청을 위한 편의서비스가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있다.”며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공동체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미디어지만, 시각장애인들은 편의서비스 부재로 소통권과 알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화면해설방송이 확대돼야 하는 요인으로 ▲방송접근권에 대한 정책적 인식의 변화 ▲잠재적 및 실제적 수요층의 확대 ▲화면해설 대상 영역의 확장을 꼽았다.

특히 하 교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수요층을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가 장애인방송의 질 개선의 방해요소가 되고 있어, 의식개선과 더불어 화면해설방송의 수요층·콘텐츠 확장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영국에서 화면해설방송이 노인이 방송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실험을 진행했다.”며 “실험에 따르면 화면해설이 있는 영상을 본 노인집단에서 방송에 대한 높은 이해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며 화면해설 방송의 영향력을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화면해설은 단순히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닌 고령을 앞둔 모든 사람의 방송접근권을 보장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며 “텔레비전과 영화와 같은 영상물의 화면해설의 질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공연, 연극, 무용, 스포츠 등에서 화면해설이 확대돼야 할 것.”이라고 화면해설의 잠재된 가능성에 대한 체계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동체’로 움직여야 할, 화면해설방송 체계

하 교수에 따르면 최근 방송접근권 고시의 개정이 예상되고 있어 화면해설방송과 관련해 보다 실효성있는 상세한 개정을 위해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하 교수는 지난 6월 진행된 영국 연수에서 경험한 영국 화면해설방송 시스템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화면해설방송의 발전 방향에 대한 정책제안을 했다

하 교수는 실제 장애인방송 수용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화면해설방송의 발전을 위해 △방송사 전담인력과 공조체계 구축 △장애인방송 제작기반 및 전문 인력 양성 시스템의 구축 △화면해설방송 제작지침의 구축 △편성시간대의 균형성 △화면해설방송에 대한 정보시스템의 구축 △비실시간·이동형 접촉의 확대 △사회적 홍보 및 수용성 조사의 정례화 △체계적인 불만처리 시스템의 구축 등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먼저 영국의 경우 화면해설방송 활성화를 위해 방송사(기획·편성), 제작사(제작), 시각장애인(수용자), 정부(관리감독)으로 각각의 역할들이 정책공동체로 구성돼 있다.

▲ 영국의 화면해설방송 활성화를 위한 정책공동체 모델.ⓒ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하종원 교수
▲ 영국의 화면해설방송 활성화를 위한 정책공동체 모델.ⓒ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하종원 교수

여기서 제작사의 경우 화면해설사, 화면해설방송작가 등 전문 인력을 육성·고용해 질 높은 방송을 만들어 제공하고, 영국의 각 지상파 방송사는 접근성 전담팀을 구성해 각 프로그램에서 화면해설방송 제작사와 연계를 맺고 방송을 기획하고 편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송은 시각장애 당사자와 정부가 함께 관리 감독하는 등 협력, 공조 관계로 화면해설방송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전담팀과 전문인력이 부족해 보다 체계화된 화면해설방송 제작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하 교수는 “우리나라의 방송사에는 장애인방송 관련 전담인력 없는 상황이지만, 만약 영국의 사례만을 가져와 제작사만 늘어나게 된다면 가격경쟁으로 방송 질이 하락할 우려가 있다.”며 “서로가 협력하고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난 뒤, 화면해설방송 작가 협회 설립, 전문인력 인증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각 공동체의 역할을 명확하게 하는 것을 돕는 화면해설방송과 관련한 제작·편성지침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과 우리나라는 현재 편성은 방송사의 고유권한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영국은 방송접근성 고시에 편성·일정과 관련해 ‘각 채널별 주요 시청시간대에 자막·화면해설 편성을 기대한다’고 명시돼 있다. 더불어 화면해설방송에 대한 지침을 만들어 화면해설방송의 모범사례를 명시했다.

이는 영국 지상파 방송사의 주요 프로그램이 방송될 시간에 질 높은 자막·화면해설방송이 편성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 교수는 “이러한 지침은 제작사와 방송사에 장애인방송 제작에 대한 최소 기준이 될 것.”이라며 “강제할 수 없더라도 모범사례나, 최소기준을 명시한다면 이는 방송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밖에도 방송사에서 적극 화면해설방송에 대한 홍보를 통해 화면해설방송 수용자를 확대하고, 비실시간 이동형 매체인 브이오디(VOD)서비스의 화면해설방송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하 교수는 “앞으로 개정될 방송접근권 고시에는 개인의 사회참여와 평등권을 실현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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