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인권 디딤돌 판결] 정당한 편의제공은 당연한 ‘권리’
[장애인인권 디딤돌 판결] 정당한 편의제공은 당연한 ‘권리’
  • 황현희 기자
  • 승인 2017.11.16 08: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와 장애인권법센터는 15일 오후 12시, 서울시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2017 장애인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보고회’를 열었다.

이에 웰페어뉴스에서는 보고회에서 발표된 디딤돌‧걸림돌 판결을 소개하고자 한다.

올해의 수집‧분석 대상 판결은 지난해 6월~2017년 5월까지 선고된 장애인 관련 사건의 판결로, 디딤돌 판결 7건, 걸림돌 판결 4건, 주목할 판결 2건, 주제 판결 9건이 선정됐다.

판결 선정위원회는 ▲장애인인권법센터 김예원 대표 ▲법무법인 디라이트 김용혁 변호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상임대표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제철웅 교수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최정규 소장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최현정 변호사 등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적용… 법 해석은 어디까지?

디딤돌 판결 7건 중 3건은 정당한 편의제공 관련한 사항이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규정하는 정당한 편의제공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성별, 장애의 유형과 정도, 특성 등을 고려한 편의시설‧설비‧도구‧서비스 등 인적‧물적 제반 수단과 조치’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항은 재판부에 따라 편의 제공 범주가 달리 해석돼, 해석 여부에 따라 피고의 편의제공 거부가 정당한 사유로 인정되기도 하고, 인정되지 않기도 한다.

첫 번째 사건은 면접과정에서 청각장애인에게 면접에 필요한 정당한 편의제공을 하지 않은 기술교육원에 대한 장애인차별행위중지이행청구 및 위자료 청구소송 판결이다.

청각장애가 있는 ㄱ 씨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면접 시 정당한 편의 제공을 요구했지만, 기술교육원 측은 ㄱ 씨에게 ‘스스로 소리 내어 자기 소개를 하라’는 등의 요구를 하며, 면접에서 불합격 시켰다.

이에 법원은 '피고(기술 교육원)는 원고가 장애인인 사실을 인지하거나 인지할 수 있음에도,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면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험시간 연장, 문자통역 등 인적‧물적 제반 수단을 제공하지 않았으므로 원고가 배우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만으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정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장애를 이유로 면접에서 불합격 시켰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피고에게 ‘원고가 이사건 선발과정에서 불합격한 것이 장애를 이유로 한 것이 아님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고, 피고가 이를 입증하지 못해, 법원은 이 역시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법원은 피고에게 위자료 500만 원 지급을 명했다.

김예원 변호사는 해당 판결은 ▲정당한 편의제공은 굳이 먼저 요구하거나 요청하지 않아도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의해 당연히 제공돼야 하는 것을 천명한 점 ▲면접에 임하는 청각장애인에게 제공돼야 하는 정당한 편의의 내용이 무엇인지 설시한 점 ▲피고에게 ‘장애를 이유로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한 점이 의미 있다고 전했다.

특히, 김 변호사는 해당 판결은 ‘법이 규정한  정당한 편의 제공 규정을 제대로 적용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장애 당사자가 정당한 편의를 요구할 때 대부분의 상대방은 요구가 ‘과도한 부담’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차 여러 시정권고 결정을 통해 정당한 사유 중 과도한 부담과 관련해 사용자 등 편의제공자가 해당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경제상 극심한 타격을 입는 경우만을 의미하고, 단순히 편의제공으로 인한 비용의 부담 정도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상황.

이에 김 변호사는 “재판부는 정당한 편의제공이 원고가 굳이 먼저 요청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요구돼야 하는 것이며 청각장애인 면접 시 단순히 옆에 있는 사람의 도움을 허락한 정도로는 정당한 편의 제공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는 매우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전했다.

이어 “입증 책임도 굉장히 까다로운 부분인데, 재판부가 피고에게 입증 책임을 지도록 함으로써,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규정하는 ‘차별행위를 한 자가 고의 과실이 없음을 입증할 책임이 있음’ 조항이 판례로 인해 법문언의 해석이 명확해졌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판결의 경우, 뇌변병 장애가 있는 ㄴ 씨는 교육공무원 채용 면접시험에서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지 못해 면접 불합격 통보를 받아 불합격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불합격 처분 취소을 판결했다.

이후 ㄴ 씨는 AAC 프로그램 제6공 등을 통해 면접에 합격했고, 현재 특수교사로 재직 중이다.

해당 판결 역시 다툼이 됐던 부분은 정당한 편의 제공의 거부에 의한 차별이 성립하기 위해 원고가 구체적 편의 제공을 요청했어야 하는지 여부와 원고가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피고의 편의제공 의무는 완성된 것인지 여부, 편의 제공이 정당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다.

재판부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피고가 정당한 편의 제공을 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김용혁 변호사는 “본 판결은 채용 시험에서 정당한 편의에 관해 구체적으로 판단한 첫 판결로서 공무원 채용시험의 절차를 바꾸고, 채용 분야에서 장애인에 대한 권익 보장을 이끌어 냈다.”고 디딤돌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밖에 지적장애가 있는 피의자에게 변호사 등 신뢰관계인의 동석 없이 9시간 가량의 신문을 통해 얻은 진술에 대해 ‘증거능력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사건도 디딤돌로 선정됐다.

위원회는 해당 판결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정하는 절차 요건을 준수하지 않고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장애등록 거부·비자의 입원’…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위반

디딤돌 판결 중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위반했다는 판결이 2건이다.

먼저, 틱 장애가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유형으로 규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장애인 등록신청을 거부한 처분에 대해 법원은 헌법 제11조 평등 원칙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원고는 음성 틱 증상으로 10년 동안 치료를 받아 사회생활과 일상생활에 심각한 장해를 보여 장애인등록 신청서를 행정청에 제출했다.

하지만, 행정청은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의 종류와 기준에 틱 장애에 관한 규정이 없어 장애진단서를 발급할 수 없다며 신청을 반려했다.

이에 원고는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원고는 틱 장애로 일상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임에도 등록 대상 장애인으로 규정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등록대상 장애인에서 제외됐다. 이는 장애인에게 이익을 부여하는 평등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행정입법에 의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고, 틱 장애를 다른 등록대상 장애인들과 구별해 차별적인 취급사이에 실질적 합리적인 관련성이 없다. 따라서 장애등록 반려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법원 판결에 대해 제철웅 교수는 “장애인복지법의 취지는 장애인의 복지, 자립, 사회활동참여를 증진시켜 사회통합을 실현하는 것.”이라며 “의학 기준 뿐 아니라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초래하면 이를 장애로 규정해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 이에 이번 판결은 앞으로 의학적 판단기준에 전적으로 의존한 장애의 개념을 사회통합의 목적에 부합되도록 개선하는 것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정신장애인에 대한 강제입원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내린 헌법불합치 결정도 디딤돌 사례도 선정됐다.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 결정 이유로 강제입원 조항이 과잉금지원칙 위반 조항과 신체 자유를 침해를 판시했다.

제철웅 교수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치매환자를 요양원에 입소시키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사회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 자유를 침해당하고, 묵살하는 관행이 자행된 사회에 최초로 경종을 울린 판결.”이라고 선정이유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