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 연관 재판, “당사자의 지능 지수 아닌, 사건의 정황·편의제공 여부 등 전체 살펴야”

지적장애인이 원고 혹은 피고가 되는 사건의 경우, 재판부는 당사자의 지능지수와 사회성숙도 지수에 따라 당사자의 의사능력을 판단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기에 문제점을 지적한다.

단순히 지능지수와 사회성숙도 지수만으로 지적장애인의 의사능력 여부를 판단하고, 이를 판결의 상당부분에 적용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시 여러 상황과 지적장애인을 위한 편의제공(알기 쉬운 설명, 조력인 동반 등)여부 등을 종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고려 없이 단면적인 의사능력으로 편견에 갇힌 판결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지난 15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와 장애인권법센터가 진행한 ‘2017 장애인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보고회’에서 소개된 판례들을 보면, 전문가들이 꼬집고 있는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

판례1.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이 근보증 당시에 의사능력이 없었으므로 근보증계약이 무효라는 사례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은 ㄱ 씨가 제기한 근보증채무부존재확인소송에서 ㄱ 씨의 IQ 69, 운동협응기능이 8세 7개월 수준에 해당하며, 사회연령 10.8세 정도에 있어 근보증계약 체결 당시 계약의 법률 의미와 효과를 이해할 수 있는 의사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의 근보증계약은 원고가 의사능력을 흠결한 상태에서 체결된 것으로 무효다.”

판례 2.

지적장애인이 휴대전화 가입신청을 할 당시에 의사능력이 있었으므로 계약이 유효하며 그로 인한 200만 원 채무가 존재한다는 사례

지능지수 47, 지적장애 3급인 원고는 휴대전화 2대를 개통해주면 그 대가로 30만 원을 주고 휴대폰과 단말기 대금은 본인이 납부하겠다고 거짓말하는 동창생에 속아 가입신청을 해 휴대전화 할부금과 통신요급 약 200만 원의 채무를 지게 됐다.”

법원은 이에 대해 원고가 금전 이익을 얻기 위해 가입신청을 한 점, 가입신청 이후 요금할인을 위한 결합할인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한 점 등을 비춰 볼 때 이 사건 가입 신청 당시 법률 의미와 효과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고의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기각.

판례 3.

정신분영질환이 있는 지적장애인이 체결한 부동산 매매계약이 의사무능력 상태에서 체결된 것이므로 무효라는 사례

“원고와 피고 사이의 매매계약에 기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이행 소송에서, 피고는 정신분열질환이 있는 지적장애인으로 의사무능력자이므로 매매계약 무효.”

판례 4.

지적장애인이 체결한 거래약정은 의사무능력자의 계약 체결로 무효이므로 그 계약상 채무의 이행을 명한 지급명령에 기초한 강제집행을 불허한 사례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원고와 ㄱ 씨는 연인관계로 지내면서 원고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단란주점을 운영하던 중 위 단란주점을 운영하는데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피고로부터 원고 명의로 2,000만 원을 대출받도록 했다. 법원은 원고의 지능지수가 55이며 사회성숙도 지수가 약 8세 정도에 해당해 이 사건 거래약정의 법률 의미나 효과를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 능력이나 지능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해, 거래약정은 무효.”

판례에서 보듯, 당사자의 지능 지수와 사회 성숙도 지수로만 사건을 해결하는 재판부에 대해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철웅 교수는 “지능 지수 혹은 사회 성숙도 지수가 낮더라도 조력자가 있으면 충분히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사회적 연령이 얼마이기 때문에 의사능력이 없다는 식의 이유 설시는 장애인의 인격을 모독하거나 편견을 양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제 교수는 지적장애인 관련 사건을 해결할 경우 ▲모든 성인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추정에서 출발해야한다 ▲질병이나 장애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해야 할 계기가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장애인의 지능이 의사능력의 유무를 판단하는 근거로 삼는 것에는 신중을 거듭해야한다 ▲지능이 낮더라도 쉽게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고, 사회 연령이 낮더라도 조력이 있다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는 점을 고려해 의사능력 유무를 판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제 교수는 “질병이나 장애가 있어서 의사결정 유무에 의문이 든다면, 당해 거래 내용을 알기 쉬운 용어 등으로 설명하거나 조력인이 동반해 설명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절차가 없다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규정한 정당한 편의제공 위반.”이라고 전했다.

이어 “뿐만 아니라 그런 절차가 없어 당사자의 지능이나 사회연령 등으로 말미암아 당해 거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당해 거래는 의사능력이 없었으므로 거래는 무효라는 논리가 바람직하다. 즉, 단순히 지능 지수만으로 의사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거래 당시 상황을 봐야한다.”고 전했다.

가령, 위 판례 판례에서 휴대폰 계약 사건의 경우, 휴대폰개설계약을 체결해 친구에게 주는 것의 의미(이로 인해 자기가 부담하게 될 휴대폰 비용이 얼마인지에 대한 이해), 자신이 30만 원을 받는 것의 의미를 알았는지 살펴봐야한다. 그렇지 않고 막연히 경제 이익을 얻기 위해 계약을 체결했다든지, 신분증을 자신이 줬다든지, 분실신고를 했다는 것만으로는 휴대폰개설계약 당시 의사능력이 유무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기 어렵다.

특히 지적장애인 관련 사건에 대해 재판부의 공정한 판단을 위해서는 인권 감수성이 필수라는 의견도 나왔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지능 지수 만으로 사건을 판단 태도는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기 때문에 어느 쪽의 편견도 갖지 않는 상태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상식적인 기준에서 상황을 판단해보고 보편적인 생각과 다를 때 전문가에게 의견을 묻는 태도가 중요하다.”며 “지적장애인은 모두 인지에 문제가 있다는 전제를 깔고 가서는 안된다. 명확한 근거와 근거에 의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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