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성명서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사립유치원의 개학연기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하지만 이런 집단행동은 고사하고 자신의 문제를 주장하기 어려운 이들이 있다. 청각장애 학생들과 청각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다. 청각장애인의 교육 문제를 정부나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청각장애인 교육은 심각하다. 청각장애 특성을 도외시한 통합교육, 청각장애 교사 등 교육전문가의 부재, 선택권을 고려하지 않은 언어교육 등이 청각장애 교육을 한 쪽으로 몰고 있다.

현재 청각장애 특수학교는 “특수”라는 말을 사용하기에 민망하다. ‘아이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특수학교에서 일반학교로 통합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일반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학교 내의 특수학급이나 통합학급도 특수학교 못지않다.

일반학교의 특수교사들의 경우 청각장애 학생에 대한 전문성이 낮다. 교육 환경이나 시스템도 마찬가지이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가 도외시되고, 편의 기준이 없어 형식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러다보니 일반학교에 입학한 청각장애 학생이 특수학교로 옮기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특수학교에서 일반학교로 옮겼다가 다시 특수학교로 가는 경우도 있다.

학교를 배움의 전당이 아니라 ‘앉아다 오는 곳’ 이상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청각장애 학생들도 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도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 학교를 졸업해도 원하는 직장에 가기도 힘들다.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참여하는데 어려움도 생긴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청각장애인들에게 직면한 상황을 개선해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차별의 악순환을 가중시키고 있는 샘이다.

청각장애 교육 문제의 이면에는 뿌리 깊은 수어에 대한 차별이 도사리고 있다. 또한 청각장애인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는 것도 있다.

청력이 떨어지면 시력 등 감각기관으로 정보를 받아드리려는 욕구가 있다. 시력 등 감각기관에 기반을 둔 대표하는 언어가 수어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교육현장에서 수어가 억압되어 왔다.

그리고 ‘청각장애’ 상태를 고쳐야하는 질병과 같이 생각해왔다. 비장애인처럼 되려고 발성연습을 하고 독화훈련을 해야 했다. 값비싼 보청기를 사용하거나 인공와우의 시술이라도 하여 비장애인과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각장애’가 있는 상태는 인격적으로도 불완전하다고 여겼다. 이러한 생각은 청각장애인의 선택권과 결정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곳곳에서 작동해왔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이다. 청각장애인들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서는데 기초가 되며, 사회로 나가고,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기초가 된다. 더 나아가청각장애인들의 겪는 차별의 고리를 끊는데도 많은 역할을 한다.

우리는 지난 2011년 한국수어법 제정 운동을 할 당시부터 청각장애인 교육 환경 개선 활동을 해 왔다. 또한 얼마 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청와대 앞에서 “한국수어 독립 만세!”를 외친바 있다. 그리고 독립된 한국수어 언어정책을 만들어 달라고 청와대에 진정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의 하나로 이제 청각장애인 교육환경 개선 운동을 시작한다.

현재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잘못된 청각장애 교육에 대한 원성이 높다.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부모님들도 많다. 우리단체는 이들과 연대를 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단체들과도 연대할 것이다.

정부도 이제는 청각장애인 교육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1913년 일본이 만든 제생원(濟生院)에서 청각장애 교육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청각장애 교육은 100년이 훨씬 넘다. 그 동안 정부는 유물 같은 청각장애 교육을 손질하는 수준에서, 특성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다보니 청각장애 교육이 비판받아 왔다.

그래서 정부는 청각장애인 교육 개선에 과감해져야 한다. 청각장애 학생의 권리를 기반에 두고 개혁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 청각장애인, 장애인단체, 부모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수용해야 한다. 이를 통하여 ‘청각장애 교육의 백년지대계’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2019년 3월 5일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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