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복지사무소 양원석 대표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발표했다. ‘악의 평범성’하면 ‘영혼 없는 공무원’으로 표현되는 가해자를 주로 떠올린다. 하지만 ‘악의 평범성’은 가해자 뿐 아니라, 피해자로 여겨졌던 유대지도자의 악함까지 세상에 고발했다.
당시 유대지도자는 질서 유지 등을 이유로 ‘영혼 없는 권한’을 발휘해 독일군에 협조했다. 이 때문에 독일군의 일사불란한 집단 가해가 가능했다. 만일 유대지도자에게 ‘권한’이 없었거나, ‘영혼 없이’ 협조하지 않았다면, 피해 규모는 지금보다 줄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한나 아렌트는 피해자 속에 감춰져 있던 ‘영혼 없는 권한’이라는 악함을 정교하게 구분해 고발했다.

2018년 8월, 진각복지재단(이후 재단)과 산하수탁시설(이후 산하시설)이 서울시의 특별지도감독을 받았다. 종교회비납부 강요, 종교활동 강요, 종교에 따른 차별행위, 부당해고 및 공개채용 위반, 산하시설장 현행법 위반 및 이에 대한 지도 감독 해태 등 다 열거하기도 벅찬 온갖 부정이 드러났다.
서울시는 행정처분을 재단과 산하시설인 성북노인종합복지관, 월곡종합사회복지관 등에 사전 통보했다. 행정처분 예고 통지 내용은 재단 대표이사와 상임이사의 해임, 성북노인종합복지관 월곡종합사회복지관 수탁 해지, 시설장 교체 등이다.

필요한 해법은 단순명료하다. 서울시와 성북구가 재단과 산하시설에 합당한 행정처분을 중단 없이 진행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물으면 된다. 특히 서울시는 지금까지 능동적으로 특별지도감독을 실시했고 후속조치를 취해왔다. 앞으로도 서울시가 흔들림 없이 진행하기를 강력히 요청한다. 성북구 또한 서울시와 함께 엄정한 집행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 칼럼은 다른 시민사회복지단체 등의 주장을 반복 소개하기 위함이 아니다. 현재는 빗겨있지만, 꼭 짚어야 할 지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산하시설 임원은 과연 피해자이기만 한가?’
현재는 마치 재단과 산하시설의 문제로만 한정된 느낌이다. 하지만 악을 찾아 처벌하는 것은 정교해야 한다. 어설프게 면죄부를 주어서는 비슷한 악이 면죄부를 디딤돌 삼아 활개 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원과 직원은 권한이 다르다. 그만큼 임원은 무거운 책임을 진다. 재단이 불법을 자행할 때, 임원인 기관장은 권한을 사용해 협력했다. 기사에 따르면, 재단이 후원금을 강요하면 기관장은 직원이 수만~수십만 원씩 비용을 냈는지 취합하여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 재단이 종교활동을 강요하면, 기관장은 “네 참석하겠습니다~~”식으로 답변하며 협력했다. 물론 기관장 또한 재단의 일방적 압력을 못 이겼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참작의 여지이지, ‘영혼 없는 권한’을 남용한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게다가 일부 기관장과 재단의 관계가 ‘피해자-가해자’ 또는 ‘단순협력자-가해자’ 관계로 보이지 않는다. 앞서 서울시는 재단 산하시설장 교체를 행정처분으로 예고했다. 그러자 재단은 해당 기관장 일부를 재단 내 다른 기관으로 인사 조치했다. 사실상 재단이 해당 기관장을 피신시킨 셈이었다. 서울시 처분을 피한다는 오해를 받을 줄 알면서도 재단이 무리수를 둔 점을 고려하면, 둘의 관계는 정말 ‘피해자-가해자’라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가담자-가해자’ 관계라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지 않은가.

직원의 대규모 피해를 수년 동안 가능케 권한을 사용하고 이제는 가해자인 재단의 도움으로 행정처분을 피하려는 ‘영혼 없는 가담자’.
일부 기관장은 과연 전적으로 ‘직원=피해자’ 무리에 섞여 있어도 될까? 이런 의문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으로 강조한다. ‘그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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