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벽을허무는사람들 등 13개 단체

“<뉴스9>는 청각장애인들의 방송 접근권과 비장애인들의 시청권을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TV화면의 제약성으로 인해 수어방송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9>에 수어방송을 제공해달라는 요청에 KBS <보도기획부>와 <KBS미디어기술연구소>의 검토의견서가 도착했다. KBS는 “TV화면의 제약성으로 인해 수어방송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료방송을 가입해 스마트 수어방송을 시청하거나 UHD방송이 안착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우리 단체들이 KBS 답변에 참담함을 느끼는 이유다.

비장애인들의 시청권 조화를 위해 수어방송은 안 된다(?)

우리는 지난 3월 14일(목) KBS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 <뉴스9>에 수어방송 제공을 통

한 청각장애인의 시청권 보장을 촉구했다. 또한 <장애인방송 편성 및 제공 등 장애인 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에서부터 선도적으로 메인뉴스에서 수어방송 제공을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KBS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를 망각한 채 ‘동문서답’을 내놨다.

KBS는 <뉴스9>에 수어방송을 실시하지 못하는 이유로 “청각장애인들의 방송 접근권과 비장애인들의 시청권을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TV화면의 제약성’을 근거로 제시했다. ‘조화’라는 말은 “서로 잘 어울림(표준국어대사전)”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 단어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수어방송이 제공되면 시청권과 관련해 비장애인들은 TV 화면 하단 한 쪽 끝 부분을 가리는 정도의 불편함을 겪는다. 반면, 수어방송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장애인들의 시청권은 어떻게 될까. 청각장애인은 <뉴스9>에 대한 접근권 자체가 불가능하다. KBS는 이 결과를 두고 ‘조화’라고 말할 수 있는가.

공영방송의 저녁종합뉴스인 <뉴스9>는 당연히 다중언어서비스를 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수화언어법>은 ‘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히고 있다. 이렇듯, 한국수어가 우리나라의 또 하나의 법적언어로 인정된 만큼 <뉴스9> 화면에 넣는 문제는 어떠한 정보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특히, 수어를 중심으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자막’은 부가적인 언어이다. 그러한 이유로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자막(글자) 읽기에 대한 교육은 ‘수어’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청각장애인에게 자막방송이란 비장애인들이 뉴스를 영어 등 타국의 언어로 듣는 것과 다르지 않다. KBS가 ‘자막방송 100%’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안 되는 까닭이다.

우리 단체들이 ‘수어방송’을 해달라고 요청한 프로그램이 KBS <뉴스9>라는 점도 곱씹어볼 문제다. KBS는 2019년 들어오면서 뉴스를 11년 만에 개편했다. 그리고 개편 첫 날 <뉴스9>는 ‘부의 불평등’ 등 사회적 약자의 삶에 주목했던 걸 기억한다. 향후, KBS <뉴스9>가 나아가고자하는 방향이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그 같은 뉴스를 한글을 읽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은 볼 수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KBS는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이다. KBS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KBS 공정성 가이드라인> ‘소수계층 참여의 확대’(51Page)를 보면, “시청자의 광범위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에도 소수 계층이나 취약집단을 방송에서 배제할 우려가 있다”며 “소수계층의 사람들도 고루 참여하고 시청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의 전체 장르에 걸쳐 제작 요소와 시각적 장치들을 적합하게 준비하도록 고민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묻고 싶다. KBS는 진정 소수계층의 사람들이 시청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는가.

스마트 수어 방송이면 다 해결되는가

“방송통신위원회는 현재 일부 방송사업자들과 ‘스마트 수어 방송’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스마트수어 방송은 수어 방송의 위치와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고, 수어 수신 여부도 시청자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 수어 방송은 아직 IPTV 등 유료방송에서만 가능한 기술입니다”

“KBS는 주파수 대역을 지금보다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UHD 초고화질 방송이 안착되면 지상파 직접 수신을 통해 스마트 수어 방송 등 장애인 편익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도입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 중입니다”

KBS가 내놓은 또 다른 답은 ‘스마트 수어 방송’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KBS도 인정하는 부분은 바로 그것이다. 스마트 수어 방송은 지상파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다면, 수어방송을 보고자 한다면 유료방송을 시청하라는 건가? 그렇지 않아도 지상파들이 플랫폼 정책은 포기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지금, 그게 진정 공영방송 KBS가 할 수 있는 말인가.

KBS는 또한 청각장애인들이 유료방송이 아닌 지상파를 통해 수어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방법은 UHD 방송의 안착이라고 설명한다. UHD 방송이 안착되면 <뉴스9>를 스마트 수어 방송으로 제공할 수 있으니(한다는 얘기도 아니다) 기다리라는 얘기다. 사회적 약자라고 하여 그들의 권리는 ‘나중에’라는 말로 유보되어야 하는가. KBS의 답이 궁색한 이유이다.

KBS는 ‘스마트 수어 방송’을 대안으로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정확히 말하면 동문서답에 가깝다. 청각장애인들이 요구하는 KBS <뉴스9>를 스마트 수어 방송을 통해서 본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수어통역’의 실시가 전제가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비장애인 핑계-스마트 수어 방송이 답인가?

KBS는 ‘비장애인의 시청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 단체들은 KBS가 비장애인을 핑계로 뒤에 숨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과연,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수어방송이 화면을 조금 가린다고하여 비장애인들이 반대가 높을지 의문이 든다. KBS가 그에 대한 여론조사를 돌려본다는 등의 노력도 하지 않고 너무 쉽게 ‘비장애인의 시청권’을 들먹이고 있는 건 아닌가. 그리고 실제 ‘불편해서 반대’한다는 여론이 많다고 하더라도 공영방송이라면 그들을 설득해 다양한 사람들이 KBS <뉴스9>를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게 책무일 것이다.

또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스마트 수어 방송은 최선의 답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2018년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인구 중 장애인 비율은 5%(267만 명)가 넘는다. 인구 100명 중 5명 이상은 장애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비장애인이 체감하는 장애인 비율은 이만큼 높지 않다. 사회가 그들을 격리하고 배제하여 장애인들을 비가시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시청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수어방송을 비장애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기술에만 의존하는 게 사회통합을 위해 올바른 정책인지도 고민해볼 지점이다.

KBS가 시청료를 받고 있는 공영방송으로 책무를 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청각장애인 시청권 확대를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우리 단체들이 요구한 것 또한 KBS의 최소한의 책무였을 뿐임을 다시 한 번 밝힌다. KBS는 저녁종합뉴스 <뉴스9>에 수어방송을 즉각 실시하라.

2019년 4월 2일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삼성농아원, 상상행동 장애와여성 마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언론개혁시민연대, 원심회, 자립생활지원센터WITH,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프리에이드,

한국농아인협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장애인연맹(총 13개 단체,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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