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거주시설에서의 삶 증언대회-그곳에 사람이 있다’ 김희선 씨

‘장애인거주시설에서의 삶 증언대회-그곳에 사람이 있다’의 마지막 증언 김희선 씨의 이야기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참으라 그러니까 기도하면서 참았어요

거기 있는 사람들끼리는 맨날 싸워요. 사람들이 답답하니까 서로 싸워요. 그럼 다음날 밥부터 그 사람들한테는 한 달 동안 밥을 안줬어요. 어떤 사람은 두 번이나 그랬어요. 밥 안주고 물만 줘요. 나도 그랬어요. 이틀동안 밥을 안 줬어요. 내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또 뭐 했다고.. 물만 줬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싸우면 tv를 못보게 했어요. 거의 한 달씩 못 봤었어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버텼어요. 아빠, 엄마가 참으라 그러니까 기도하면서 참았어요. 아빠가 생일 때 와서 원장한테 돈 줬어요. 원장은 돈 주면 좋다고 웃고. 왜 원장한테 돈 주냐면 내가 우리한테 예배 하러 온 사람들 전화 빌려서 엄마한테 전화 했어요. ‘엄마, 나 죽겠어. 맨날 맨날 똑같애. 선생님한테 돈 좀 주라’고 했어요. 나 좀 편하게 지내게...

거기서는 계속 눈치를 봤어요. 다 눈치 보이긴 하는데 전화할 때가 가장 눈치 보였어요. 핸드폰 가진 사람은 한명도 없고, 전화 못하게 감시하고. 그러다 내가 우리한테 기도하러 온 사람 핸드폰 빌려 통화하는 걸 목사님이 봤어요. 내가 엄마, 아빠한테 전화해서 집 간다고 할까봐 원장이 진짜 싫어했어요.

‘언니, 나야. 나 나갈거야. 언니 빨리 와’

애경언니가 먼저 나가서 자립한 다음에 나를 찾아왔어요. 그런데 나는 5년 동안 고민했어요. 나는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는지 몰랐고, 두렵고.. 나 혼자 어떻게 사나... 아빠, 엄마도 허락 안 해주니까.. 나도 부모님한테 ‘나 나갈거야, 집에 갈거야.’ 그랬더니 엄마아빠가 참으라고 하니까 못 나왔었어요. 그래도 나는 언젠가 꼭 나갈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는 언젠가 나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2016년도에 애경언니한테 전화해서 ‘언니, 나야. 나 나갈거야. 언니 빨리 와’ 그랬어요. 마음먹고 나니까 애경언니가 ‘너 나와서 이거 할 수 있고, 저거 할 수 있다’고 얘기해줘서 별로 걱정이 안 들었어요.

○○원에서 먼저 자립한 장애경, 김탄진 부부가 김희선 씨를 찾아가 자립을 제안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원에서 먼저 자립한 장애경, 김탄진 부부가 김희선 씨를 찾아가 자립을 제안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원장이 알게 돼서 저한테 ‘너 나갈거야?’ 그래서 제가 그렇다고 했더니, 원장님이 ‘그럼 엄마, 아빠한테 전화해서 집에 가’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엄마, 아빠한테 전화해서 빨리 오라고 했는데 그날 밤에 왔어요. 얘기하니까 엄마가 저한테 ‘너 맛이 갔지’ 했어요. 그러면서 전화를 김필순선생님한테 바꿔보라고 하고 또 준민언니한테도 전화했어요. 준민언니가 엄마랑 싸웠어요. 준민언니가 ‘희선이 더 이상 애기 아니에요. 엄마, 아빠 말 들을 필요 없어요.’ 그랬어요. 그래서 엄마가 저한테 ‘너 이제 엄마아빠 안 볼거야?’ 물어봐서 저는 ‘나 나갈거야. 아빠엄마 이제 필요없어’ 했어요. 빨리 나가고 싶은 생각만 했거든요. 원장은 그 뒤로 나한테 ‘너 빨리 나가라’ 그랬어요. 나한테 질려서. 지금은 엄마, 아빠가 한 달에 한 번씩 오세요. 지금 제가 잘 사는 거 보고 좋아하세요. 엄마가 저한테 미안하다고 했어요.

다 있어. 나와

내가 나올 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자유였어요. 모든 순간이 다 자유로워요. 내가 먹고 싶은 고기도 마음대로 사먹을 수 있어요. 사람들이 나오기 위해선 활동지원시간 24시간, 아파트, 공부가 필요해요. 지금 시설에 있는 사람들한테 ‘다 있어. 나와’라고 해주고 싶어요. 내가 나와서 살아보니까 더 좋고 자유가 있어요. 활동지원선생님도 있어요. 그러니까 다 나와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2018년 신길역 리프트추락참사에 대한 시위에 참여한 김희선 씨.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2018년 신길역 리프트추락참사에 대한 시위에 참여한 김희선 씨.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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