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감학원 특별법 발의… “국가폭력의 역사, 멈춰야 할 때”
“특별법 또는 진화위법 통과, 더 이상 미뤄선 안돼”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고 반성하지 않는 데 대해 비판하고 행동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는 우리의 역사를 반성하고 성찰하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이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여준민 활동가-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당시 경기도 부천군 대부면 선감리 섬)에 만들어진 부랑아 수용소로, 1945년 이후부터 1982년까지 경기도 공무원에 의해 운영됐다.

국가의 ‘부랑아 정책’에 따라 부랑아 수용소라는 명목 아래 어린이들을 무분별하게 납치·감금했으며 강제 노동을 비롯한 온갖 폭력이 벌어졌지만, 지금까지 명확한 사건 파악이나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권미혁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은 ‘선감학원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선감학원 특별법)’을 19일 대표발의하고, 같은 날 ‘선감학원 강제수용 등 인권침해 진상규명과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었다.

선감학원 특별법은 국무총리 소속 ‘선감학원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설치·운영해 피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와 그 유족에 대한 명예를 회복·보상함으로써 이들의 생활 안정과 인권 신장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다.

피해자와 그 유족, 이들과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 또는 선감학원 피해사건에 관해 특별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위원회가 구성된 날부터 1년 안에 진상규명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위원회는 진상규명 신청이 없는 경우에도 직권으로 조사 개시 결정을 할 수 있다.

위원회는 최초의 진상규명 조사 개시를 결정한 날부터 2년간 진상규명 활동을 하되, 1년의 범안에서 연장할 수 있다.

피해자와 그 유족에게는 보상금, 의료지원금,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국가·지방자치단체는 피해자를 위한 주거복지시설과 의료복지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같은날 열린 토론회는 경기도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49통일평화재단이 공동 주관·참석했다. 피해생존자들이 직접 선감학원 사건을 증언했다.

 

 

경기도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김영배 회장은 “경찰과 공무원이 서울, 경기, 인천 지역의 어린이들을 거리에서 잡아들여 선감학원으로 인계했다. 공권력은 인적사항까지 조작하며 이들의 사회적 존재를 소거시켰다. 다수의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은 퇴소 또는 탈출 이후 성인이 돼서야 주민등록이 말소된 것을 알고, 선감학원 입소기록으로 호적을 새로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차림새를 이유로, 거리에 있다는 이유로, 공권력에 의해 인권을 유린 당하고 침해 당한 선감학원 사건. 과거 형제복지원 사건과 비슷한 양상을 띄지만, 실체를 드러내고 증명하기에는 아직까지 어려운 부분이 있다.

형제복지원은 당시 정부와 박인근 원장을 중심으로 어떤 법에 근거해 운영됐는지 밝혀졌지만, 선감학원은 가해자나 가해 구조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선감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선감학원 관련 자료. ⓒ선감역사박물관
선감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선감학원 관련 자료. ⓒ선감역사박물관

선감학원 사건에 대해 20여 년간 조사·연구한 안산지역사연구소 정진각 소장은 일제강점기에 시작해서 40년간 존재한 기관임에도 기록으로는 가해자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1941년 10월 ‘조선사회사업협회’를 내세워 기부금 50만 원으로 선감도 섬 전체를 사들이고 1942년 5월 29일 선감학원을 개원했다. 조선사회사업협회는 행정상 ‘조선총독부 사회과’ 사무실에서 보조금을 받아 운영하는 형태로 위장했기 때문에 운영 사항은 조선총독부 공식 문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법으로 보면 조선감화령과도 관계가 없고 자의로 움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물론 과거에도 선감학원 사건에 대한 보도는 있었다. 1961년 11월 24일 인천신문에 따르면,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그해 11월 박창원 도지사는 선감학원을 사찰한 뒤 ‘운영방식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군사정부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처럼 은폐정책을 택했다.”며 “1969년 삼선개헌과 함께 언론 장악이 행해지면서 신문마저도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 선감학원은 1967년과 1968년 기록으로 끝난다. 선감학원의 가해자를 확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라고 바라봤다.

선감학원의 구체화 된 자료는 부족하지만 국가가 부랑아 정책을 펼쳤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서산개척단 등 모두 국가가 내세운 정책과 제도 아래 벌어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에 정 소장은 “국가의 부랑아 정책과 관련해 폭 넓게 찾아봐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9월 19일 열린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선감학원 피해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9월 19일 열린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선감학원 피해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진상규명’, 국가폭력을 멈추는 첫 걸음

“과거사 관련 법안 가운데 어느 하나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는 것이 피해자에게 또 한 번의 아픔을 주는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무겁다. 피해자가 정신상 건강을 잃었다는 것도 있으나 사회, 정치, 문화, 일상 모든 곳에서 배제된 채 살았다. 그럼에도 스스로 피해자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없는 사회이자 국가다. 피해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영선 사무총장-

최근에는 선감학원에 대한 2017년 경기도의회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서를 통해 다뤄지기도 했다. 토론자들은 그러나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부실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냈다.

4.9통일평화재단 안경호 사무국장은 과거사 관련 법안을 통해 진상규명이 시작된다면 진실을 밝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지한 ‘대한민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 진상규명 활동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이하 진화위법)’ 또는 특별법 통과로 다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사무국장은 “문재인 정부는 2017년 하반기에 진화위법을 통과 시키고 2018년 하반기에 정상 조사활동에 들어간다는 목표를 가졌다. 정권의 의지는 확인했으나, 각 정당과 국민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바라봤다.

그는 “국민과 여론이 피해자의 간절함에 동의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숱한 국가폭력 범죄가 자행됐다. 숱한 농성과 절규를 일상에서는 거들떠보지 않다가, 누군가가 죽거나 나가떨어져야 비로소 언론은 앞다퉈 사진기와 펜을 굴렸다. 가장 퇴행적인 것은 국가폭력 피해자를 두 번, 세 번 울리는 일이다. 조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배움의 기회를 잃고 생존의 기회를 박탈 당해 노년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전쟁 유족은 70년간 부모의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제 국가가 응답해야 할 때이다. 국회에서 과거사 관련 법안이 빠른 시간 안에 통과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른쪽부터) 토론에 참여한 비마이너 하금철 전 편집국장, 안산지역연구소 정진각 소장, 오마이뉴스 이민선 기자, 49통일평화재단 안경호 사무국장.
(오른쪽부터) 토론에 참여한 비마이너 하금철 전 편집국장, 안산지역연구소 정진각 소장, 오마이뉴스 이민선 기자, 49통일평화재단 안경호 사무국장.

선감학원은 왜 피해자의 몫으로만 남았나

비마이너 하금철 전 편집국장은 ‘한국사회가 해방 직후부터 지금까지 부랑아를 단속하고 강제 수용하는 과정에서 일반 시민의 책임이 조금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부랑아와 관련해 최초의 범정부적 대책이라고 할 수 있는 1956년 법무부·내무부·보건사회부 합동 ‘부랑아 근절책 확립의 건’을 살펴보면, 민·관 합동의 연계활동을 강조했다.

해당 안건에 명시된 ‘부랑아보호책 실시요령(안)’에는 ▲중앙과 지방에 각각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부랑아보호대책위원회 설치 ▲부랑아 배후관계자 단속강화 ▲부랑아 보호에 대한 계몽 (값싼 동정과 일시적 시여의 자제 권고) ▲부랑아 보호취체의 강화 (연고지·본적지 이송 또는 분산수용. 경찰관, 역원, 학교교직원, 지방청공무원, 사회사업가, 청소년단원, 학생 및 기타 지방유지의 협력태세 구축) ▲열차·전차·버스 승객 상대 구걸 방지를 위한 교통기관의 방지책 마련 ▲범죄성 있는 아동의 법원 소년부 송치 및 아동의 성향에 따른 분류수용 ▲가정환경 개선과 면학분위기 조성을 통한 부랑아 발생방지 등이 담겼다.

하 전 편집국장은 “부랑아 단속과 강제 수용이 관행되는 데 일반시민이 적지 않게 기여했다. 해당 문건을 알던 모르던 이런 관행이 오래 이어졌고, 1980년 사회정화위원회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그래서 지금도 시설이 존재하고 강제 수용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사건에 직접 관계가 없는) 나머지 사람은 마치 선진국이나 안락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처럼 시치미 떼고 있다. ‘국가가 가해자다’라고 외치기만 하고 도덕상 연민의 그늘 밑에 숨는 비겁한 행동일 수밖에 없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 책임이라는 것은 피해생존자와 소통하고, 기록하고, 알리고, 다양한 활동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만이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회복이라는 정의를 재구축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선감학원의 사건을 담은 책 ‘소년들의 섬’을 엮은 오마이뉴스 이민선 기자 역시 ‘국민이 곧 국가이고 국가가 국민인 나라에서 가해자는 대한민국 전체 국민’이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구하려 하지 않았고, 아픔을 알기 위해 적극 노력하지 않았고, 오히려 침묵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대한민국 전체 국민이 피해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자행한 폭력을 간접 경험했기 때문.”이라며 “선감학원의 고통이 ‘소년들이 당한 고통’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힘 없는 국민에게 더 친절한 대한민국을 물려줘야 할 의무가 기성세대인 우리에게 있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도 함께했다. 참석한 이들은 드러나지 않은 국가폭력 피해자가 무수히 많을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현재 경기도기록관에 있는 선감학원 공식 퇴원아 명부에는 4,961명이 기록됐다. 해당 명부에는 ‘수집’ 또는 ‘수거’라는 표현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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