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농아인협회

〔성명〕현장수어통역사 없는 물고기와의 담화

“저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말 하는거야?”

‘벙긋 벙긋’ 어항속의 물고기가 벙긋거리듯 TV 속의 사람들이 입을 열었다 닫는다. 대한민국의 최고권력자인 대통령도 진행하는 진행자도. 참여자들도 어항속의 물고기와 다를바 없었다. ‘벙긋 벙긋’.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국민과의 대화’라 하는데 마치 어항속 물고기가 우리를 향해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 듯, 대통령도, 그 장소에 참여한 사람들도 우리에게는 물고기와 다를바가 없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소리가 들리는 사람이 보는 세상과, 우리들 농아인이 보는 세상은 다르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가지 색깔 중에서 어느 한 색상이라도 빠지면 완전히 달라지듯이, ‘빛과 소리’, ‘소리와 빛’ 둘중 어느 하나만 사라져도 세상은 매우 많이 달라보인다.
아름답다고 하는 베토벤의 교향곡도, 누구나 즐거워 하는 BTS의 노래도, 무섭다고 공포영화의 비명소리도 완전히 사라진 세계에서 우리의 소리는 눈으로 보는 손이며, 손으로 하는 수어가 우리의 소리다.

‘나중에 자고 일어나서 언론기사로…’

이러한 생각을 하는 청인 혹은 자포자기하고 현실과 타협한 농아인들도 찾아보면 어느 한 구석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국민이 아니었던가. 알고 싶지 않았던가. 듣고싶지 않았던가.

듣고싶다는 그 열망을, 마치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을 적시는 한줄기 빗줄기처럼 농아인의 유일한 소통수단이 된 ‘수어’가 빠진 국민과의 담화는 ‘물고기들의 대화’, ‘물고기들의 잔치’와 다르지 않다.

복지국가를 향해 나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인들의 복지를 위해 힘써준다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가장 최고권력자와의 대화조차 불통의 상징인 ‘물고기’와 같이 입만 벙긋거리다가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는
더 이상 물고기들의 정부가 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2019.11.21.
(사)한국농아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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