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시각장애인의 참정권 무력화하는 헌법재판소를 강력히 규탄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7조(참정권)의 숭고한 정신을 훼손시킨 헌법재판소, 개탄스럽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9월 3일 점자형 선거공보의 페이지 수를 제한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은 합헌이라는 결정을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시각장애인이 낸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이 같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해당 조항이 개정되면 과도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미명하에 시각장애인의 기본권인 참정권 보장에 대한 국가적 책무를 외면한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점자형 선거공보는 다른 선거홍보물에 접근하기 어려운 시각장애선거인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후보자 등에 대한 정치적 정보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매체이자 핵심적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자형 선거공보의 페이지 수를 제한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이 합헌이라는 결정은 점자형 선거공보를 작성하는 경우에도 책자형 선거공보의 면수 이내로 한정하여 그 내용의 동일성을 유지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점자는 일반 활자와 동일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하여 약 2.5배 내지 3배 정도의 면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당 조항은 장애를 고려하지 아니하는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시각장애선거인의 후보자 등에 대한 정치적 정보취득의 기회가 박탈될 수 있게 하거나 제한되게 하여 선거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 시각장애선거인에게 불리한 결과 즉 실질적인 불평등을 초래하여 선거권 행사 영역에서 차별하고 있다.

게다가 국가가 과도한 비용을 부담할 수 있음을 청구 기각 사유로 설명했지만 점자형 선거공보의 작성비용이 국가적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적어도 선거에서는 점자형 선거공보의 면수를 책자형 선거공보의 면수로 제한할 필요가 없다 할 것이므로, 해당 조항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반된다.

또한 국가는 점자형 선거공보의 작성비용을 전액부담하고 있으므로, 선거공보 면수의 상한을 늘리는 것일 뿐 더 많은 양의 공보물을 제작하라는 것은 아니고, 후보자의 선거운동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에 선거에 있어 점자형 선거공보의 작성비용은 국가적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렵다 할 수 없으므로 해당 조항은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 위반된다.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서 시각장애인의 선거권과 평등권을 보호해야 할 헌법재판소가 점자출판 시설 및 점역 교정사의 부족으로 현실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국가가 과도한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운 작금의 현실에 우려와 함께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아울러 점자형 선거공보의 작성 면수를 책자형 선거공보의 면수 이내로 한정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입법자의 선거제도 형성이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하여 시각장애인의 선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의 결정은 극히 위험한 발상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공직선거법 제65조 제4항 위헌확인’의 헌법소원을 기각하면서 소수 약자의 보호 받아야 할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기는커녕 스스로 부정하는 만행에 대해 사과하라!

나아가 시각장애인의 선거권을 보장하고 시각장애로 인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로서 실질적이고도 가시적인 계획을 수립 시행함으로써 구호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제1항에서는 ‘장애인을 장애를 사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제한·배제·분리·거부 등에 의하여 불리하게 대하는 경우’를 차별행위로 명시하고 있으며, 동법 제27조(참정권) 제1항의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와 공직선거후보자 및 정당은 장애인이 선거권, 피선거권, 청원권 등을 포함한 참정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입법취지를 계승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이 길만이 금번 결정으로 인해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실추시킨 명예를 회복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유일한 길임을 엄숙히 촉구한다.  

2020년 9월 8일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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