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에서 36년, 불법체류라며 범칙금이 3,000만 원
시설에서 36년, 불법체류라며 범칙금이 3,000만 원
  • 정두리 기자
  • 승인 2021.06.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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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접수… 범칙금 면제와 체류자격 방안 마련 요청

탈시설을 준비하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가 불법체류에 범칙금까지 내야 하는 억울한 상황에 처했다.

이에 장애계 단체는 지난 10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를 찾아 진정을 접수하고, 범칙금 통고 처분 면제와 안정적인 체류자격 부여를 위한 방안 마련 권고를 요청하고 나섰다.

이들은 진정서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평생을 살며 국가의 보호에 의지해온 왕OO 씨에게, 그의 사정과 무관하게 이뤄진 부적법 체류에 대해 범칙금을 형식적으로 부과해 생존의 위협을 끼치고 있다.”며 인권침해 시정을 촉구했다.

출생 당시 체류자격 취득하지 않아 ‘불법체류’… 시설 입소과정에서도 적절한 대처 없어
 
왕씨는 1970년 9월 22일 대한민국에서 출생해 51년간 국내에서 계속 거주하고 있는 중증 지적장애인이다. 현재 ‘인강원’이라는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거주하고 있으나, 2022년 폐쇄될 예정으로 다른 거주시설로 이전하거나 지역사회에서 자립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왕씨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미등록 체류 외국인이라는 것.

왕씨는 대한민국에서 중화민국(대만) 국적의 부친 고 왕△△ 씨(당시 F-2 비자 보유)와 한국 국적의 모친 고 예OO 씨 사이에서 출생했다.

장애계에 따르면 부모가 현재 모두 사망한 상황에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출생당시 구 국적법의 부계혈통주의에 따라 한국 국적의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의 국적인 중화민국 국적을 취득하게 됐다. 이에 왕씨는 아버지와 동일한 체류자격 F-2를 취득해야 했으나, 해당 체류자격을 취득하지 않아 현재까지 미등록 체류 상태로 살아오게 된 것이다.

이후 왕씨는 어머니의 가출과 이후 양육을 맡아주던 고모의 갑작스러운 정신질환으로 15세가 되던 해에 도봉구청을 통해 현재 살고 있는 인강원으로 입소했다.

하지만 행정청은 인강원 입소과정에서 대만 국적을 갖고 있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체류자격이나 체류 등록에 대한 확인과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진정서를 통한 주장이다.

결국 미등록 상태로 시설에서 51세가 될 때가지 거주하고 있다.

불법체류 기간에 대한 범칙금만 3,000만 원… 그의 권리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왕씨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탈시설 또는 다른 거주시설로의 이전을 고민하는 시점에서 시작됐다.

2014년 인강원에서는 시설 원장의 횡령과 시설 내 학대 등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대대적인 정비가 이뤄졌다. 지난해부터는 서울시의 ‘지역사회 서비스 변환 정책’을 통해, 2022년부터 거주시설이 폐쇄되고 장애인 복지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변환될 예정이다.

왕씨도 당장 내년부터 인강원에서 거주할 수 없게 되며, 다른 거주시설로 이전하거나 지역사회에서 자립을 해야 한다는 것.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는 기대도 잠시, 그의 국적과 체류자격이 문제가 됐다.

왕씨가 거주하고 잇는 시설의 직원들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가족들과 연락을 시도하며 가정법원과 출입국·외국인청 등을 찾아다니며 방법을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출입국·외국인청 등에 방문하면서 확인한 결과는 임시라도 체류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불법 체류기간에 대한 3,000만 원의 범칙금을 우선 납부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3년의 체류 등 적법한 요건을 갖춰야 귀화신청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인강원 측의 요청을 받은 장애계단체와 변호사들이 함께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 왕씨의 탈시설과 이후 생존을 위해 우선 관련 절차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지난 10일 출입국·외국인청 세종로 출장소에 방문해 체류자격을 신청했다.

대한민국에서만 50여 년 “범칙금 면제와 체류자격 방안 마련해 달라” 요청
 
현재 왕씨는 노숙인복지법에 따라 노숙인 등으로 분류돼 의료급여와 보장시설 수급자로 생계급여 일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노숙인복지법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고, 담당구청 공무원도 피해자에 대해 보장시설 수급자 자격으로 주어지는 생계급여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표한 것에 비춰 볼 때 피해자가 인강원을 나간 이후 체류 자격 없이 한국에 머물면서 계속 의료·생계급여를 수급하는 것은 배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다.

결국 피해자가 현재 지급 받고 있는 소액의 사회복지 혜택 또한 인강원 퇴소 이후는 중단될 가능성이 크며, 지금은 인강원의 교사들이 후원금을 모아 피해자의 생계를 지원하고 있으나, 인강원이 폐쇄된 후에는 그조차도 유지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장애계의 의견이다.

나아가 다른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체류자격도 없고 최소한의 복지서비스도 주어지지 않는 피해자를 비용을 부담하면서 까지 입소시키고 돌봄을 제공하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더욱이 피해자에게는 달리 생계비를 지원할 가족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한 혈족인 여동생이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으나 유아기 이후로 교류가 사실상 없었고 현재 피해자를 지원할 능력도 의사도 없는 상황이다.

이에 왕씨와 장애계는 인권위에 “범칙금 통고 처분 면제와 안정적인 체류자격 부여를 위한 방안을 조속히 마련할 수 있도록 관련기관에 강력하게 시정권고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진정 접수에 앞서 기자회견에 나선 인강원 백지혜 생활재활교사는 “오랜 시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지만 아직도 법적 문제는 제자리.”라며 “체류자격 취득과 비자, 범칙금, 귀화신청, 국적취득에 이후 문제까지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래도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고 힘을 더해주고 관심 가져주는 분들이 있어서 희망을 갖고 있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장애인신문·웰페어뉴스 정두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