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은 스토리텔링의 보고(寶庫)이다. 어린 단종의 아픈 사연을 간직한 곳이자, 김삿갓의 풍류가 아름다운 동강과 서강을 따라 구절양장 굽이치는 곳. 한때 국가산업의 중추 역할을 하며 인구가 13만명이나 됐지만, 세월이 흘러 4만의 인구로 쪼그라진 곳. 하지만 천혜의 자원과 역발상 마케팅으로 다시 가장 매력적인 관광지가 된 곳, 그곳이 바로 영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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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酒泉), 술의 고향!

동강과 서강을 가로 지르고, 청령포, 어라연,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 이정표가 손짓했지만, 기자에겐 주천(酒泉)이란 지명이 내내 어른거렸다.

이십대의 지난 나날들이 떠올랐다. 스무살 무렵의 ‘패기’란, ‘객기’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당시 술판이 거나해질 때면 술잔을 움켜쥐고 목 놓아 ‘권주시’를 읊던 후배가 있었다. 패기였던가, 객기였던가? 지금은 보신하느라, 몸을 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술잔을 함께 들었던 놈들, 너나 할 것 없이 이렇게 외치곤 했다.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하늘에는 주성(酒星)이란 별이 없었으리니
땅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땅에는 주천(酒泉)이란 샘이 없었으리니
하늘과 땅이 이미 술을 사랑하였음에
나 또한 술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
청주는 현인에 통하고
탁주는 성인에 통한다 했는데
내가 이미 청주를 마시고 탁주를 마셨으니
성인이 아니요, 현인이 아니던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산에 와 누우니 하늘이 곧 이불인 것을!

나중에 알고 보니 이태백의 시였다. 태백이 강원도 영월까지 온 적은 없을 것이다. 물론 영월 옆 태백까지는 왔다고 우겨서도 안된다.

주천(酒泉)이란 곳, 분명 중국에 있는 지명일 텐데, 한국에도 있다. 바로 영월군 주천면이다. 주천은 전북 남원군에도 있고, 진안군에도 있다. 하지만 그건 주천(酒泉)이 아니라 주천(朱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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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특구, 영월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영월은 육지 속의 오지다. 왕의 자리를 빼앗은 수양대군이 조선 제6대 왕 단종을 유배했던 곳이다.

최근 영월군 서면이 한반도면, 하동면이 김삿갓면으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김삿갓면 김삿갓 유적지 가는 길에 옥동마을이 있다. 동행한 문화해설사 이갑순씨는, 지금은 구슬 옥(玉)으로 바뀌었지만, 원래는 감옥을 말할 때의 ‘옥(獄)’자를 사용했었다고 말한다. 마을 안에 들어서 사방을 둘러보면 빙 둘러선 산이 마치 감옥을 연상케 한다.

영월은 그렇게 산이 높고, 물이 굽이치는 곳이다. 대한민국 100대 명산 중 3개, 대한민국 하천 계곡 100선 중 5곳이 영월에 있다. 물론 한곳도 지니지 못한 시군 지자체도 숱하다. 만약 지역 안배를 하지 않았더라면, 영월군의 산과 하천은 여러곳이 충분히 올랐을 것이다.

믿기지 않는 것은, 그러한 오지 중의 오지가 2008년 지식경제부가 지정한 대한민국 유일의 박물관 특구라는 사실이다. 사진, 곤충, 민화, 화석, 도자기, 지리, 악기, 아프리카, 동굴, 탄광…. 영월에는 갖가지 박물관, 전시관이 많다. 2010년 1월 현재모두 19곳이다. 그것도 모자라, 일이년만 더 있으면 30여곳이 된다. 고작 인구 4만의 도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기자는 1990년대 말 즈음의 영월을 기억한다. 그 시절을 조금 앞서 옹진군이 ‘섬을 팝니다’라는 문구로 화제 모은 적 있다. 인천 앞바다 수많은 섬을 가진 옹진군이 투자 및 관광 목적으로 ‘섬을 팝니다, 섬을 사세요’란 이벤트로 전국적인 시선을 집중시킨 것이다.

영월군은 그보다 한 발 더 나갔다. ‘별을 분양합니다!’라며, 1등성부터 5등성까지 관측 가능한 별을 팔겠다고 나섰던 것.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도 혀를 내두를 발상이었다.

당시 말단 공무원으로 그러한 아이디어를 내고, 미션 임파셔블처럼 여겨지던 그 프로젝트를 진행시킨 이가 현재의 이형수 문화관광과장이다. 영월의 별마로천문대는 지난해 유료 입장객 6만여명이 다녀간 영월의 대표적 관광자원 중 하나이다.

박물관 역시 1999년 영월책박물관을 시작으로 끊이지 않고 들어서고 있다. 폐교를 활용해 옛 탄광촌 오지의 이미지를 딛고, 지역발전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것.
그런데 주천면을 가진 영월에서 뭔가 빠진 듯한 박물관이 있었다. 바로 술 박물관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드디어 오는 4월 주천 술샘박물관이 첫 삽을 뜬다.

다하누촌 술샘길 ⓒ관광경제신문J ⓒ2010 welfarenews
▲ 다하누촌 술샘길 ⓒ관광경제신문J ⓒ2010 welfarenews
다하누촌, 술샘길 트레킹

주천면에는 또 하나의 명소가 있다. 지난 해 150만명이 다녀간 다하누촌. 한우마을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전국적인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곳이다.

다하누촌은 2007년 8월 정육점 1곳과 식당 3곳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당시 아무도 다하누촌의 성공신화를 예상 못했다. 고기를 먹기 위해 그 먼곳까지 오리라고 예상못한 것.

하지만 현재 영월 다하누촌은 60곳의 정육점과 식당이 성업중이다. 김포군과 MOU를 체결, 김포다하누촌도 오픈했으며, 전국적으로 15곳의 다하누촌을 계획중이다. 다하누촌은 최근 고깃감으로 활용도가 낮은 엉덩이살을 이용, 유케포차란 실내포차형 육회 프랜차이즈도 론칭시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남아도는 사골뼈를 이용한 곰탕 프랜차이즈도 시작했다.

수입 소고기 개방에 대응하는 모델로서 다하누촌은 유통을 중시했다. 생산 가공 유통의 일체화로 질 좋은 한우의 대중화에 성공하며, 돼지고기보다 싼 소고기로 명성을 얻게된 선구자다. 횡성한우처럼 명품 한우 생산에 집중해 성공을 거둔 사례와는 또 다른 길이었다.

주천면 다하누촌은 최근 한우마을와 연계한 트레킹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추천 겨울 여행지로 각광받는 다하누촌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트레킹 코스다.

하지만 ‘다하누촌 올레길’이란 트레킹 코스의 이름은 적당치 않아 보인다. 제주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올레’란 어원은, 집으로 향하는 돌담이 있는 골목길이다. 그래서 그보다는 술샘길이 오히려 적당한 듯 싶다.

한우 직거래마을 다하누촌에서 출발하는 술샘길은 약 2시간 소요되는 코스지만, 아라비안 나이트가 머쓱할 만큼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다하누촌 광장에서 출발, 조금만 걸으면 주천삼층석탑에 이른다. 주천3층석탑은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인 법흥사로 인도하는 성격을 지닌 탑이다.

의로운 호랑이 이야기를 간직한 의호총 ⓒ관광경제신문J  ⓒ2010 welfarenews
▲ 의로운 호랑이 이야기를 간직한 의호총 ⓒ관광경제신문J ⓒ2010 welfarenews
3층석탑을 지나면 의호총(義虎塚)이 나온다. 올해는 호랑이의 해다. 동방예의지국이었던 우리나라에는 별난 호랑이 유적지도 있다. 조선시대 국상을 당해 3년상을 지내고 죽었다는 호랑이다. 그곳에는 호랑이 무덤과 함게 동상, 상을 치렀던 움막이 조성되어 있다.

본격적인 트래킹은 주천(酒泉)이란 비석이 있는 술샘에서 시작된다. 겨울철 기자가 보았을 때는 물이 말라 있었지만, 신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이 샘에서는 술이 나왔다고 한다. 양반이 오면 약주, 천민이 오면 탁주가 나왔다는 것. 그런데 어느날 양반 복장을 한 천민이 약주가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샘에서는 평소처럼 탁주가 나왔다. 화가 난 그가 샘터를 부수자 이후로는 맑고 찬 샘물만 나오게 됐다는, 그야말로 전설이 깃든 샘이다.

주천 옆 오솔길을 오르면 나지막한 망산이다. 주천강의 경치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 빙허루가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 조선 철종의 태실비 터가 있다.
빙허루에서 아래로 향하면, 오르막길과 주천강변으로의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가벼운 도보여행을 원한다면, 주천강 쌍섶다리로 향하면 된다.

쌍섶다리 ⓒ관광경제신문J ⓒ2010 welfarenews
▲ 쌍섶다리 ⓒ관광경제신문J ⓒ2010 welfarenews
영월군의 쌍섶다리는 300년 유래를 갖고 있다. 1457년 단종이 사약을 받고 승하한 뒤 백성들이 단종을 흠모하자, 1699년 숙종은 노산묘를 장릉으로 추봉하고, 신임 강원 관찰사는 반드시 참배하게 했다.

어명에 따라 원주에서 오는 관찰사 일행이 주천강을 건너려 했다. 하지만 강을 건너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이때 강 양쪽 마을의 주민들이 서로 경쟁을 하며, 쌍섶다리를 만들었다.
며칠 후 돌아가는 길에 관찰사는 주천에 머물며, 수고한 백성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잔치를 베풀었다. 그 후 쌍섶다리놓기는 이곳이 민속놀이로 전승되어 오고 있다고.

쌍섶다리를 건너면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1호로 지정된 김종길 가옥이다. 대문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헛간, 오른쪽에는 넓은 방과 부엌이 설치된 전형적 영서지방 민가의 모습이다.

술샘길 코스의 종착지는 다시 다하누촌. 산지 직거래로 시중보다 30~50% 저렴하게 1등급 이상 한우를 맛볼 수 있는 그곳에서는, 주말이면 사골국과 감자, 막걸 리가 무료로 제공된다. 산과 강, 역사와 전설, 그리고 낭만과 즐거움까지 지닌 맛있는 여행지로 기억될 만하다.

강원도 문화재 자료 71호 김종길 가옥 ⓒ관광경제신문J ⓒ2010 welfarenews
▲ 강원도 문화재 자료 71호 김종길 가옥 ⓒ관광경제신문J ⓒ2010 welfar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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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유성욱 기자
사진 / 조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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