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 성명서

정부는 발표한 발달장애인지원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권리에 기초한 실효성 있는 지원계획을 다시 수립하라 !

이 땅의 발달장애인들과 가족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정부의 발달장애인지원계획이 드디어 공개되었다. 이 지원계획에서 정부는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회 실현”을 비전으로 제시하면서, 권리보호와 진단ㆍ치료, 복지서비스, 교육ㆍ훈련, 그리고 자립지원의 다섯 가지 영역에서 13개의 주요 정책과제를 추진할 것을 밝혔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지원계획의 세부내용을 살펴본 우리 부모들은 실망을 넘어 허탈감마저 느끼고 있다. 이것이 진정 정부가 40여명의 발달장애인 전문가와 부모들로 ‘발달장애인정책기획단’을 꾸려서 장장 10여개월 동안 발달장애인 정책안을 고민하고, 억대의 돈을 들여 발달장애인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물이란 말인가?

‘언어재활사’ 국가자격제 도입이나 작년에 제정된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의 하위법령으로 입법예고된 장애영유아어린이집의 특수교사 배치 확대와 자격기준 강화 등 이미 도입이 예정된 제도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발달장애인을 위한 체계적인 권리옹호 시스템과 발달장애인 서비스의 기초인 사례관리제도의 구축 없이 성년후견제를 그 본 취지와 동떨어진 발달장애인 권리보호 서비스로 둔갑시킨다거나,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발달장애인지원센터를 「장애아동복지지원법」상의 장애아동지원센터와 통합하여 시범운영하려는 계획을 보면 우리는 정부가 발달장애인 지원체계를 오히려 왜곡시키고 축소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의심이 든다.

물론 이번 지원계획에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보완대체 의사소통기구의 개발ㆍ보급과 발달장애인 부모에 대한 전문 심리상담 지원, 보호주택을 비롯한 지역사회 거주모델 개발 등 새로운 지원사업들이 제시되고 있고, 기존의 서비스들을 일부 확대하거나 강화하는 내용들도 담겨있다. 하지만 이러한 찔금찔금식의 지원들을 늘여놓고 정부가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회 실현”을 운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번에 발표된 지원계획의 절반 이상이 이전에 이미 발표된 내용이거나 추진 중이었던 사업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원사업들도 대부분 시행시기나 구체적인 시행계획을 전혀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이번 지원계획은 발달장애인을 시혜와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기존의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정부가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며, 장애등급과 가족의 부양의무에 기초한 기존의 장애인복지체계를 정부가 여전히 개선할 의지도 전망도 갖고 있지 않음을 확인시키고 있다. 정부는 단지 지능검사점수에서 몇 점이 차이난다는 이유로 발달장애인을 1, 2, 3급의 세 무리로 구분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이번 지원계획에서 강조하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마련”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사실을 정녕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또한 성인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본적인 소득보장정책이 마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부양의 책임을 여전히 부모와 가족에게 돌리면서, 부모가 강요받는 부양의무의 제도적 올가미를 벗겨주기보다는 그 올가미로 인해 발생하는 우울증을 전문심리상담으로 치료해주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이야 말로 핵심을 빗나가는 변죽 때리기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진정으로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참여와 자연스러운 통합을 실현해내고자 한다면 이번에 발표한 발달장애인지원계획을 전면 수정해서 새로운 종합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지원계획에는 백인백색의 개성을 가진 발달장애인의 특성이 반영될 수 있는 복지욕구 사정체계를 비롯하여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 최대한 보장되는 서비스 결정 및 연계체계, 기본소득과 고용, 주거, 돌봄, 여가 등 종합적인 생활설계를 바탕으로 한 지역사회 서비스 지원, 인권침해 예방과 권리옹호를 위한 별도의 체계구축, 발달장애인 자조그룹에 대한 지원, 발달장애인의 서비스를 담당할 전문인력의 양성 그리고 발달장애인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기 위한 서비스 모니터링과 사례관리제도 등이 빠짐없이 제시되어야 한다.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이 이미 제19대 국회의 제1호 법안으로 제출되어 있다. 정부는 발달장애인법안에 담겨진 발달장애인들과 그 가족의 애끓는 호소에 지금이라도 귀 기울여야 한다. 또한 제출된 발달장애인법안이 규정하고 있는 소득보장과 고용, 주거, 사회서비스, 인권옹호 및 서비스 전달체계 등의 핵심내용들이 최대한 원안대로 제정될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입법대책을 조속히 마련하여야 한다. 만일 정부가 이번의 지원계획처럼 또다시 알맹이 없는 발달장애인법안을 만들려고 시도한다면 이 땅의 모든 발달장애인과 부모는 결단코 막아낼 것이다.

학교를 졸업한 발달장애인이 갈 곳이 없어 집안에 틀어박혀 살거나 생활시설에서 나머지 생을 보내야 하는 현실을 우리는 더 이상 참고 볼 수 없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발달장애인에게도 지역사회에서 서로 부딪치며 함께 웃고, 울며, 일하고, 즐기는 자기 삶을 가질 권리가 있다. 그러한 발달장애인의 권리가 우리 사회에서 온전히 구현되는 그 날까지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알맹이 없는 발달장애인지원계획에 머무르지 말고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권리에 기초한 종합지원계획을 재수립하라!

2012년 7월 13일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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