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기(57) 씨가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은 매일 다릅니다. 어느 날은 새벽, 또 다른 날은 아침, 오늘은 오전 11시가 돼서야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활동지원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이용자의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활동보조인입니다.

박 씨가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은행. 박 씨는 어디론가 움직일 때마다 그때그때 필요한 돈을 찾기 위해 은행을 들릅니다. 카드는커녕 여윳돈도 두지 않고 매번 은행을 들르는 불편함은 활동보조인 5년차인 박 씨의 생활습관입니다.

활동보조인의 급여는 시간당 8,000원. 중개기관의 수수료 25%를 제외하면 활동보조인에게 남는 것은 6,000원입니다. 최저임금에 비하면 높은 금액이지만, 직업 특성상 활동지원서비스 이용자 수와 이용 시간에 따라 수입은 천차만별입니다.

INT. 박윤기(57, 활동보조인)

제가 가장 많았을 때가 (한 달에) 140만 원 정도 됐고요. 1년에 따지면 2, 3개월 정도 그렇게 벌었나요? 가장 적은 게 30만 원선. 아주 심할 때는 1만2,000원까지 받아본 적 있어요.

2011년 대구지역 활동보조인 등을 대상으로 한 ‘장애인 활동보조인 노동 실태 및 건강 조사’에 따르면, 활동보조인의 월평균 급여는 최저 57만3,000원 최고 78만5,000원이었습니다.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기준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연장 근로, 휴일 근로, 야간 근로에 대해서는 통상 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해야 합니다. 하지만 활동보조인은 시간당 1,000원, 그것도 하루 네 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휴일·야간 근로 수당을 이용자의 바우처에서 주도록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INT. 활동보조인연대 고미숙 집행위원장

이거는 항상 (보건복지부에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용자의) 시간을 늘려줄까요? 아니면 (활동보조인의) 시간당 비용을 늘려줄까요?’

지금 이용자들 상태를 보면 이용 시간이 필요한 만큼 확보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용하시는 분들도 시간을 끊어서 쓰세요. 하루 종일 필요한 경우에도 몰아서 쓸 수 없으니까.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쓰신다거나

박 씨가 은행에서 나와 걸음을 옮긴 곳은 한의원, 박 씨는 한 달에 한두 번 침과 영양제를 맞습니다. 활동보조인 대부분이 그렇듯이 박 씨 역시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상태입니다.

근골격계 질환이란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반복적인 작업으로 발생하는 육체적 질환을 말합니다. 허리, 목, 어깨, 팔과 다리 등 만성적인 통증에서부터 감각 이상까지 다다를 수 있는 직업성 질환입니다.

지난 1년간 1주일 이상 지속되는 근골격계 증상을 신체 부위별로 분석한 결과, 허리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69.7%로 가장 많았으며, 어깨 63.2%, 다리 53.5%, 목 52.4%, 손목과 손 51.9%, 팔꿈치 36.2% 순이었습니다.

INT. 활동보조인연대 고미숙 집행위원장

고용노동부에 산재 신청을 하면 ‘퇴화현상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근골격계 갖고 활동보조인 중에 산재를 인정받은 경우는 아직 없고. 보험료는 딱딱 내는데 센터에서 의지를 가지면 사업주가 인정하는 산재는 그만큼 유리하게 판정이 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렇게 좀 신경을 써주면 좋겠는데 그런 면에서는 굉장히 많이 안타깝죠.

진료가 끝난 박 씨는 서둘러 점심 식사를 합니다. 주변 식당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아, 급한 대로 편의점 햄버거와 콜라로 끼니를 대신하고 이동합니다.

INT. 박윤기(57, 활동보조인)

항상 시계를 쳐다보면서 (이용자 시간에 맞춰) 모든 것을 다 해야 하잖아요. 급하면 뭐 밥도 거르는 때도 있고

오후 2시경 이용자의 집에 도착한 박 씨는 이용자의 재활치료를 위한 이동 등을 돕습니다. 차에 태우고 내리기, 안전 운전과 재활치료를 받기까지 남은 시간 동안의 산책, 재활치료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고 기다리는 것 또한 활동보조인인 박 씨의 몫입니다.

다섯 시가 넘어 이용자의 집에 도착한 뒤, 단말기를 통한 결제와 함께 오늘의 활동보조인 역할은 끝이 납니다. 이전에 박 씨는 두 명 이상에 대한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했지만, 부득이한 이유로 서비스 제공을 끊은 뒤 현재는 한 명의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INT. 박윤기(57, 활동보조인)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이용자가 사회생활·자립생활하기 위해서 서비스를 해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용자가 자립생활 개념이 아닌, 옛말로 하면 ‘자기 집 종’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고요.

INT. 활동보조인연대 고미숙 집행위원장

일하다보니까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이라고 하는데 ‘이게 파출부랑 뭐가 다르지’ 그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죠. 가족들이 있는 경우에는 문제가 좀 심각한 경우가 많은데, 가족이 많은 경우에 내가 이 장애인이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것만 챙기는 게 아니라 가족들의 식사를 전부 하는 거예요. 시골 같은 경우에는 밭농사 이런 것을 할 때도 있고.

활동보조인의 인권침해 문제도 심각합니다. 폭력 경험 현황을 보면 이용자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한 경험은 7.0%, 신체적 폭력은 3.8%, 성폭력은 3.2%였습니다. 이용자의 가족에 의한 언어폭력 경험은 2.7%, 신체적 폭력과 성폭력은 각각 1.1%였습니다.

아울러 여성활동보조인에 비해 남성활동보조인이 적어,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동성이 아닐 경우 겪는 문제도 있습니다.

INT. 활동보조인연대 고미숙 집행위원장

이용하시는 분이 남성인 경우에는 자신의 신변처리를 남성이 해주는 게 편하잖아요. 워낙 (남성)활동보조인이 적다보니까 여성을 파견하게 되면서 서로 당황하는 경우에요. 나이 많은 분들이 파견되는 경우에는 ‘그래 뭐 자식 같으니까’ 이러고 참고 간신히 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튼 이 문제는 지금 난망한 것이죠.

이처럼 활동보조인의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상태 등은 많은 활동보조인들이 ‘자립생활 실현’의 꿈을 접고 이직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활동보조인의 17.8%는 활동지원서비스 외 다른 근로 수입을 갖고 있었으며, 지난 1년간 실업을 경험한 사람은 29.2%, 향후 1년 안에 이직할 생각을 갖고 있는 활동보조인은 15.7%였습니다.

활동보조인의 이직은 이용자에게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박 씨와 3개월간 함께한 정초근 씨는 활동보조인은 이용자 삶의 일부라고 강조합니다.

INT. 정초근(50)

(활동보조인 이직하면) 힘들죠. 처음부터 제 장애에 대해서 설명해드려야 하고, 저를 어떻게 도와줘야한다 이런 것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야 하고. 제가 제 삶을 피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게 활동지원제도거든요. 제 삶의 유형을 알고 도와주는 것하고 새롭게 시작해서 도와주는 것하고는 천지차이라고 생각해요. 하시는 분들이 계속함으로서 활동보조인하고 이용자하고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거잖아요.

활동보조인계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과제로 활동보조인의 고용 형태를 꼽고 있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책임지는 문제인 만큼, ‘공공서비스’ 기능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INT. 활동보조인연대 고미숙 집행위원장

저희가 항상 요구안을 이야기할 때 1순위를 놓는 게 ‘정부가 직접 고용하라’는 것이에요. 보건복지부는 자기들이 직접 운영하지 않으니까 이 안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해도 해결에 대한 고민조차 없는 것이죠. 지자체 내 (서비스센터)를 통해서 전체적으로 관리하면 제공기관을 끼고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박 씨는 활동지원서비스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것인 만큼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마음가짐 또한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INT. 박윤기(57, 활동보조인)

세상 밖으로 나가자고 장애인들이 활동지원제도를 만들어놓은 것인데, 실제로 이용 못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 것은 활동보조인들이 대신 그 역할을 해줘야 할 것 같아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끔. ‘나는 장애인이니까 모든 특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해’ 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어요. 장애인분들도 그런 마음가짐을 버리고. 장애인 비장애인 이걸 떠나서 서로가 서로를 조금 양보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정말 장애인 비장애인이라는 단어 안 쓰고 서로 어울려 사는, 더불어 사는 그랬으면 좋겠어요.

영상촬영 김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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