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뇌협, 장애를 보편적 건강의 측면에서 해석… 지가진단개발서 등 통해 개인 욕구 반영 가능

지난 한 해 동안 장애계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장애등급제’다.

장애등급제는 활동보조지원제도, 장애인연금 등의 복지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있어서 장애재판정으로 오히려 등급이 하락하는 등의 문제점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한국의 장애인복지전달체계에 있어 의료적 기준 중심의 장애판정과 장애판정 등급이 복지서비스 수급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이하 한뇌협)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복지전달체계 연구 결과 발표 토론회’를 10일 진행했다.

이번 연구는 현재의 복지서비스의 기준이 되고 있는 장애판정기준(의료적 기준)을 대체할 수 있는 국제기능장애건강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 이하 ICF)에 대해 진행됐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김태현 공동연구원(한뇌협 사무처장)은 장애판정기준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ICF’를 제안했다.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서비스는 장애인연금과 같은 공적급여와 활동보조지원과 같은 사회서비스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수급자격은 의학적 판단기준에 의해 15개 장애유형을 1~6등급으로 나누는 장애등급에 의해 결정된다.

▲ 김태현 공동연구원(한뇌협 사무처장).
▲ 김태현 공동연구원(한뇌협 사무처장).
김 공동연구원은 “현재처럼 의학적 측면에 치우친 장애등급을 공적급여와 사회서비스 수급 기준으로 적용한다면 장애인복지지원의 ‘사각지대’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며 “활동상의 제한이나 소득과 주변 환경과 같은 사회경제적인 요인들에 대한 고려 없이 의학적 손상의 정도에 따라 매긴 장애등급으로 서비스를 지원하면, 정작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을 배제시키거나 필요한 서비스를 적절히 제공하지 못하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애인복지지원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장애인 개별 욕구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진입단계인 ‘장애판정단계’부터 포괄적인 욕구사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의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장애인복지서비스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장애판정단계에서부터 전적으로 의료적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장애등급이 아닌 신체적 손상, 개인의 활동정도, 사회적 참여정도, 환경 등에 대한 포괄적 욕구사정에 기반을 둔 서비스 제공이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는 ICF에 대해 “장애를 보편적 건강의 측면에서 해석하고 있다. 즉, 장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 건강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ICF는 보편적으로 건강한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신체·개인·사회환경적 요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며 “의료·개인기능·사회환경적으로 각 요인들을 제시할 뿐 아니라, 각 요인마다 평가치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장애인의 욕구를 포괄적으로 사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설명했다.

김 공동연구원은 IFC 활용의 장점으로 ▲장애인 복지 사각지대 해소 ▲장애인복지 행정의 준거 틀 제공(사례관리의 준거 제공, 개별화된 복지지원 준거 제공) ▲효율적인 장애인복지(지원에 근거한 평가, 예측가능한 복지예산, 효율적인 복지지원 ▲긍정적인 장애수용 등을 내세웠다.

‘ICF를 어떻게 도구화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자기진단개발서’가 필요성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는 지방자치단체에 장애등급 신청서를 제출하고, 전문가에 의해 장애등급이 매기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ICF를 사정도구하려면 가장 먼저 장애인 당사자가 자기가 필요한 것이나 욕구되는 것을 사전에 검증이 필요하다. ‘자기진단개발서’가 필요하다. 이를 지자체에 제출하면 담당공무원이 직접 실사한 보고서와 함께 ‘장애판정위원회’에 제출해 이를 바탕으로 복지서비스의 양과 질 등을 결정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ICF를 그대로 받아들여 ‘장애인권리보장법’을 만든 대만을 예시로 들었다.

김 공동연구원은 “대만은 지난해부터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시행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제수준과 문화, 복지전달체계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대만에서 ICF를 적용한 점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나라도 이제는 정부에서도 장애등급제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고, 사회복지전달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연구용역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루빨리 ICF를 기반으로 하는 체계·법안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결론지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이들도 대부분 ICF 활용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의정부성모병원 재활의학과 김윤태 교수는 “장애등급제도가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면이 아닌, ‘1등급 아니면 전부 탈락’의 방식으로 접근하다보니까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 결국 의학적 장애판정기준은 보편·객관성을 확보하는 데 미흡한 기준이다. 그래서 이 연구가 중요한 결과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며 “의료적 기준이란 치료대상유무, 돌봄의 대상유무를 판단하는 것이다. 권리확보측면에서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을 위해서는 전면적인 개편이 있어야 하며, 그 중심에 장애등급제 폐지와 대안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판정사정도구로서 ICF의 활용은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를 시작으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입장을 보였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치훈 정책연구실장은 “ICF를 보면서 기능과 장애, 건강으로 분류했다. ‘분류 체계’로, 이해하기 쉽게 나누려는 것이다. 이걸 과연 사정도구로 활용할 수 있을까. 또 장애등급제 폐지와 맞물려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를 주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ICF를 개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사회적인 모델과 기존의 의료적인 모델을 합친 것이라고 한다. 적절하게 합친 것으로 보인다.”며 “코드를 메기도록 돼 있는데 환경, 신체기능, 구조, 활동참여 등 따로 돼 있다. 초점이 장애보다는 건강에 맞춰졌다. 그래서 ICF가 장애를 판정하는 데 거리가 있지만,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장애를 구분하는 선이 묽어진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뿐만 아니라 아동, 노인 등 사회복지서비스가 필요한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 그렇게 잠재적 가능성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ICF가 갖는 국제적인 힘’도 강조했다.

김 정책연구실장은 “ICF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국제적인 공통언어’다. 사정도구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용 될 수 있는 도구로서의 가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ICF가 유용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의견을 제기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은 “장애계에서 직접 제기된 연구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ICF라는 국제적인 도구를 우리나라에도 도입해야 한다.”며 “ICF가 긍정적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긍정적인 평가를 확인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코드들에 대해서 구체적인 모델에 대한 논의는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러나 발제에서 장애인 복지법 시행령에서 ICF를 명시하고 복지서비스에 연결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현행 장애등급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상태에서 ICF 도입은 부분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왜곡될 우려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신대학교 재활학과 이미정 외래강사는 “ICF자체는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보편성을 갖고 있고,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ICF를 구체적으로 도입하면 장애유형은 없어질 수밖에 없다.”며 “ICF가 중요한 부분이면서도 혼돈되는 것이 현 장애유형은 유지하면서 어떻게 잘 평가할까. 이것을 고민한다면 ICF는 쉽지 않다. 결국 장애등급제와 똑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ICF를 통해서 한 사람에 대한 신체구조, 기능적·활동적인 부분 등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서비스를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다. ICF를 통해 나온 코드가 구체적인 장애유형과 특성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연관성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동일하게 점수가 나왔다고 동일한 서비스를 받는다면, 기존의 장애등급제와 똑같은 형태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구체적인 서비스 상황이 나오지 않으면 ICF는 장애등급과 크게 진전되기 어렵다. 이 부분이 가장 고민되는 부분 중 하나다. 또한 ICF의 1,400개나 되는 코드를 현실적으로 장애복지서비스가 있는 상황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다시 수치화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장애유형별로 나오는 항목과 대상자 선정 등을 매치시키는 항목도 필요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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