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없어 피하고 돌아가야 하는 지하철역… “우리의 이동권 무시 말라”

▲ 22일 아침 출근길, 서울시내 지하철역 가운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11곳에서 휠체어리프트에 몸을 맡긴 장애인들의 ‘외침’이 외롭게 울려 퍼졌다.
▲ 22일 아침 출근길, 서울시내 지하철역 가운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11곳에서 휠체어리프트에 몸을 맡긴 장애인들의 ‘외침’이 외롭게 울려 퍼졌다.
“난간에 의지해 계단 위 공중에 뜬 채로 내려가는 휠체어리프트는 언제나 ‘아찔’하고, 고장으로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고도 있다. 불편하다고 또는 신기하다고 쳐다보는 시선은 표현 알 수 없이 따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기계음과 함께 펼쳐져 난간에 의지한 채 위태롭게 올라오는 휠체어리프트, 그 위에 몸을 맡긴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아찔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휠체어리프트는 작동과 동시에 둔탁한 기계음과 ‘띠리리리’ 요란한 안내음을 낸다. 이내 따가운 시선들이 향하고 고개를 떨 군 채 위험한 여정을 시작한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에 잠시 투덜대는 ‘순간’이지만, 공중에 떠 느리고 느리게 움직이는 기계에 몸을 맡겨야하는 장애인에게는 ‘위험’한 일상이다.

그 현실을 바꾸기 위해 22일 아침 출근길, 서울시내 지하철역 가운데 승강기가 설치되지 않은 11곳에서 휠체어리프트에 몸을 맡긴 장애인들의 ‘외침’이 외롭게 울려 퍼졌다.

종종 발생하는 고장 “이럴 땐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다른 역사 찾아나서야”

출근인파가 몰려드는 월요일 아침 7시 30분 광화문역사.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김명학 씨가 휠체어리프트 앞에 ‘우두커니’ 멈춰섰다.

▲ 광화문역을 이용하기 위한 김명학 씨는 휠체어리프트가 고장나 1시간여를 기다려야 했다.
▲ 광화문역을 이용하기 위한 김명학 씨는 휠체어리프트가 고장나 1시간여를 기다려야 했다.
그는 이른 아침 출근시간을 피하지도 않았고, 승강기가 설치된 역을 찾아 나서지도, 바쁜 시간을 허비해 가며 돌아가지도 않았다. 누구나 그렇듯, 가까운 지하철 역사를 통해 승강장으로 향했다.

다만, 김 씨는 계단에 멈춰서 역무원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이어 소리를 내며 펼쳐지는 휠체어리프트를 다시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계단 아래 멈춰선 휠체어리프트는 올라올 기미가 없었다. 고장이 났다. 7시 40분부터 기다리기 시작해 9시가 돼서야 수리가 끝났고, 원인은 안전바 전원 고장이었다.

김 씨는 “비장애인이라면 바로 옆 승강기를 이용하거나 간단이 걸어서 오르내릴 거리지만,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휠체어리프트를 기다리고 타고 내려가는 데 두 배에서 세 배이상의 시간을 허비한다.”며 “오늘처럼 고장이라도 난다면 오지도 가지도 못한 채 꼼짝 없이 기다려야 하거나 다른 역을 찾아 다시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고, 안전을 위해서는 승강기가 필요하다.”며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곳곳에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해야 하는 구간이 있고, 승강기가 있다 하더라도 가까운 출구가 아닌 한참 멀리 떨어진 출구를 통해 돌고 돌아 들어가야 한다.”고 질타했다.

실제로 광화문역에도 승강기가 있기는 하지만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어 비장애인은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는 목적지를,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돌고 돌아 지상으로 올라와야 한다. 목적지에 따라 다시 몇 번의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반대방향으로 돌아가야하는 불편을 겪는다. 그 사이 소중한 시간은 길가에 버려진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 “승강기면 되는데……”

고장이 난 휠체어리프트 앞에 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는 들려서라도 내려가겠다고 선언했다. 그것이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위험한 일상이었고, 어떻게든 시민들을 만나 승강기의 필요성을 알려야 한다는 뜻에서였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가 휠체어리프트에 올라 엘리베이터의 필요성을 외치고 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가 휠체어리프트에 올라 엘리베이터의 필요성을 외치고 있다.
박 대표는 첫 번째 구간에 고장난 휠체어리프트 대신 인력에 의지한 채 가파른 계단을 내려왔고, 승강장으로 내려가기 위한 두 번째 구간 휠체어리프트에 몸을 실었다.

“누구나 안전하게 이용해야 하는 대중교통 지하철에서 장애인들은 승강기가 없어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면서 고장이 나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멈춰 있거나, 사고로 다치거나 떨어져 죽기합니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이웃의 이야기입니다. 승강기가 있으면 장애인 뿐 아니라 노인이나 임산부, 유모차를 이용하는 부모들 모두에게 편리합니다. 출근길 바쁘겠지만, 관심 갖고 동참해 주십시오.”

박 대표는 휠체어리프트에 아슬아슬하게 앉아 목소리를 높였다. 휠체어리프트가 얼마나 위험한지, 자유로울 수 없는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을 알려야 했다.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공감하고 동참해주길 바랐다.

박 대표는 “구조적 문제 때문에 승강기 설치가 불가능하다고 답하지만, 결국 의지의 문제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예산의 가치에서 밀려버린 것.”이라며 “위험하고 느린 휠체어리프트에 장애인들은 목숨을 걸고 올라 따가운 시선을 방아야 한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피하지도 돌아가지도 않고 이 자리에 섰다.”고 외쳤다.

출근길 피해 꼭두새벽에 나오기도… 아찔한 경험은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장애인 이동권 확보 및 승강기 설치를 촉구하는 움직임은 종로 3가역에서도 이어졌다.

1·3·5호선이 모이는 종로3가역은 승강장이 깊은 곳에 있고, 일부 호선에만 승강기가 설치돼 있어 불편이 상당하다. 이 때문에 환승을 하려면 몇 번의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해야만 가능하다.

이날 종로3가역을 이용해 1호선과 3호선 환승구간을 지나게 된 이라나 씨 역시 ‘아슬아슬’하게 휠체어리프트에 몸을 맡겼다.

휠체어리프트가 펼쳐지자 좁은 통로를 지나는 시민들이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했고, ‘띠리리리’ 들려오는 안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 종로 3가역에서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한 이라나씨.
▲ 종로 3가역에서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한 이라나씨.

이 씨는 “이렇게 출근길에 이용해 본 것은 처음이다. 시민들도 불편해 하고 나 역시 좁은 통로에서 사람들이 휠체어리프트를 치고 지나가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위험할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며 “전에는 출근시간을 피해 새벽 6시에 움직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휠체어리프트가 난간 하나에 의지해서 내려가는 것도 위험하지만, 그 높이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부담은 상당하다.”며 “어쩔 수 없이 휠체어리프트가 없는 곳으로 피하고 돌아서 다닐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한 위험의 정도는 휠체어리프트 위에서 보여준 불안함 가득한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느껴졌다.

이 씨는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중간에 멈춘 적이 있었다. 역무원들이 나와 내 몸은 들어 내리고 휠체어는 다시 들어 옮겼다.”고 당시의 아찔했던 상황을 설명하며 “방법은 하나, 장애인 뿐 아니라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 할 수 있는 승강기가 설치되는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날 서울시내 지하철역에서는 승강기 설치를 촉구하는 ‘진격의 리프트’ 퍼포먼스. 사실상 이름이 ‘퍼포먼스’일 뿐, 장애인들은 집밖을 나오면 늘 겪어야 하는 위험한 일상이었다.

장애인의 이동편의는 법상 의무… “예산 운운하며 승강기 설치 미루지 마라”

서울시는 지하철역 이동편의시설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에 따라 연차적으로 지하철역 승강편의시설 설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하철 5·6·7·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는 ‘1동선 미확보역사 승강편의시설 설치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용역’을 발주·시행, 최근 그 결과가 나왔음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서울장차연)가 공식 확인했다.

1동선이란, 모든 지하철역에서 장애인이나 노인 등이 지상에서 대합실을 거쳐 지하철 승강장까지 하나의 동선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체계를 말한다. 실제로는 주로 승강기를 통해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을 의미한다.

서울장차연에 따르면, 기본계획 용역 결과로 1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역사는 27곳. 현재 설치 중인 3개역(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지로4가·약수역)을 제외하고는 불과 6개 역(마장·보문·복정·상수·수진·효창공원역)만 승강기가 설치 가능할 뿐, 나머지 18개 역에는 승강기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승강기 설치가 어려운 역은 광화문·까치산·강동·상일동·마천·종로3가·구산·새절·대흥·상월곡·봉화산·건대입구·고속터미널·남구로·광명사거리·수락산·청담·남한산성역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장차연과 광화문역 엘리베이터 설치 시민모임(이하 광엘모)는 “용역 결과에 대해 깊은 유감과 분노를 표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유는 승강기 설치가 불가하다는 이유로 구조적 문제와 지상의 인도 폭 등 상황을 들고 있지만, 결국 예산 문제와 다름없다는 것.

이들의 주장은 이유가 있다. 서울장차연과 광엘모가 ‘예산이 얼마가 들더라도 설치 가능하다는 결과를 달라’고 수차례 서울도시철도공사 측에 이야기 한 결과, 실제로 구조적 문제로 불가능하다고 답해왔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지난달부터 승강기 설치 공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

서울장차연과 광엘모는 “결국 서울도시철도공사의 ‘1동선 미확보역사 승강편의시설 설치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용역’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를 위해 예산을 쓰지 않겠다는 것을, 구조적 핑계로 합리화하려는 일종의 면피용 용역에 불과하다.”고 질타했다.

이어 “1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역을 이용해야 하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인근에 있는 다른 지하쳘역을 이용하거나, ‘위험천만’, ‘불안불안’, ‘아슬아슬’, ‘무시무시한’ 이동수단인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해야만 한다.”며 “그나마 다른 시민들에게 불편 아닌 불편을 줄까봐 출·퇴근 시간은 일부러 피하기도 한다.”고 개탄했다.

또 “우리는 더 이상 피하지도 돌아가지도 않고, 시민들과 함께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당당하게 출근길에 오를 것.”이라며 “좁은 계단 위 휠체어리프트가 펴진다면 출근시간 다소 혼잡을 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교통약자로서의 권리를 우리 방식대로 호소하고 주장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향해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명시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수립을 명시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을 근거로 제시하며 “지하철 승강기 설치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해도 되는 권리인지 답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같은 날 오전 10시 서울시청 앞에서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 설치 촉구, 박원순 서울시장 면담 요청 기자회견’을 열고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그리고 서울시 측으로부터 서울장차연과 광엘모에게 오는 30일 오전 11시 30분에 박 시장과 면담이 잡혔다는 연락이 도착했다.

▲ 휠체어리프트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
▲ 휠체어리프트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
▲ 종로3가역은 특히 통로가 좁고 경사가 커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 위험함과 계단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불편을 동시에 주고 있다.
▲ 종로3가역은 특히 통로가 좁고 경사가 커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 위험함과 계단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불편을 동시에 주고 있다.
▲ 김명학씨에게 휠체어리프트 고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역무원.
▲ 김명학씨에게 휠체어리프트 고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역무원.
▲ 광화문역 휠체어리프트는 22일 오전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았고, 1시간여가 지나서야 수리가 끝났다.
▲ 광화문역 휠체어리프트는 22일 오전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았고, 1시간여가 지나서야 수리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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