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유형별 맞춤 편의제공 부족… 사전투표 어려움 겪어

4·13 총선을 앞두고 8일~오는 9일까지 이틀간의 사전투표가 시작됐다.

사전투표는 선거 당일 투표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사전투표일이 지정됐고, 전국 사전투표소 어디서나 신고 없이 투표가 가능하다.

하지만, ‘국민의 편의를 위한다’는 사전투표에서도 장애인은 배제되고 있다.

사전투표 첫 날인 8일, 승강기가 설치되지 않은 사전투표소에 접근하지 못한 유권자, 그리고 장애유형을 고려하지 못한 편의시설과 투표보조용구 제공으로 불편을 겪은 유권자 등 ‘유권자의 권리’를 잃은 장애인들의 원성이 빗발치고 있다.

후보 이름 없이 숫자 점자만 표기된 투표용지… “내가 찍는 후보 이름은 무엇인가요?”

8일 오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준형 활동가는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주민센터를 찾았다.

본 선거일에 일정이 바빠 미리 사전투표에 나선 김 활동가의 투표 과정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점자 블록을 따라 사전투표소로 들어가던 그의 앞에 아무런 예고 없이 계단이 나타난 것.

적잖이 당황했던 김 활동가는 ‘늘 있는 일’이라는 듯 동행 한 지인의 도움을 받아 계단을 올랐다.

신분증을 제출하고 본인의 선거구를 확인받은 뒤 그의 손에는 점자투표용지가 올려졌다.

▲ 점자표기된 스티커를 붙이는 선관위.
▲ 점자표기된 스티커를 붙이는 선관위.

그런데 지역구 국회의원 투표용지에는 후보의 이름과 정당명이 없었다. 단지 점자로 ‘1’과 ‘2’ 등 숫자만 표기돼 있었던 것.

선관위는 지난달 모의사전투표에서 시각장애인의 편의를 위해 후보자의 기호·정당명·성명 등 모두 점자로 표기된 점자투표용지를 공개했다. 그러나 사전투표소의 경우 다른 지역구의 시각장애유권자가 찾아올 경우, 지역구 출마 후보의 번호만을 점자 스티커로 표기했던 것.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은 “전국 모든 지역의 후보 이름을 점자로 만들어 사전투표소에 비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또한 투표소 마다 점자기계를 마련하는 것은 기술력·인력 등을 고려하면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이에 사전투표에서는 기호가 표기된 점자스티커를 국회의원선거 용지에 붙여 유권자에게 제공한다.”고 답했다.

시각장애유권자의 불편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점자투표용지의 칸이 작아 투표가 정확히 됐는지 확인이 어렵기 때문.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 김 활동가 역시 아쉽고 불안한 표정이었다.

김 활동가는 “내가 도장을 잘 찍었는지 모르겠다.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칸이 너무 작아 선을 넘지 않았을 까, 도장이 번져서 제대로 안 찍혔을 까 걱정된다.”며 “과학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왜 투표만 아날로그 식으로 하는지 모르겠다. 내 표가 무효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투표를 하고나서도 찜찜한 마음이 든다.”고 토로했다.

더불어 그는 투표소 관계자들의 인식교육에도 문제를 제기하며 “유권자 중에는 여자와 남자, 젊은이와 노인이 있는 것처럼, 장애인도 자신의 권리 행사를 위해 투표소를 찾는다.”며 “장애인이 투표소에 가면 우왕좌왕하는 선거사무원들이 느껴진다. 최소한 장애인과 노인 등 도움이 필요한 유권자를 안내하기 위한 교육은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날 김 활동가가 투표는 투표소에 도착해 투표를 마치고 나오기 까지 약 50분이 걸렸다. 비장애인은 5분이면 할 수 있는 투표를, 그는 편의제공의 부족으로 10배나 되는 대기시간을 버텨야 했다.

승강기 없는 투표소…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찾아간 사전투표소에 승강기가 없거나 입구에 턱이 있다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현 동료상담가는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신길동의 한 주민센터를 찾았다.

▲ 승강기가 없는 2층 사전투표소.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박현 상담가.
▲ 승강기가 없는 2층 사전투표소.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박현 상담가.

그러나 사전투표소는 2층에 마련돼 있었고, 계단이 그의 휠체어 앞을 가로 막았다. 이에 해당 투표소 관계자는 박 상담가에게 1층에 마련된 임시 기표대 이용을 권했다.

하지만 박 상담가는 “나도 비장애인과 같이 투표소에 들어가 투표하고, 직접 투표함에 내 표를 넣고 싶다.”며 “왜 나는 임시 기표대에서 해야 하는가. 이건 분명히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강하게 거절했다.

이에 해당 투표소 관계자는 “주민센터 대부분이 90년대 만들어진 건물로, 그땐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지금에서 다시 건물을 지을 수 없지 않느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할 뿐이었다.

20분 가량 이어진 실랑이 끝에 관계자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장애인전용차량을 이용해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다른 사전투표소로의 이동을 제안해왔다.

박 상담가는 “내가 투표하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다.”고 거절했지만, 이내 어쩔 방법이 없어서 다른 사전투표소로 발길을 돌려 20여 분을 이동해 1층에 마련된 다른 사전투표소로 향했다.

▲ 활동보조인과 함께 들어가기엔 턱없이 비좁은 기표소.
▲ 활동보조인과 함께 들어가기엔 턱없이 비좁은 기표소.

투표소 접근은 가능해 졌지만 그의 앞에는 또다른 불편이 나타났다.

박 상담가는 손에 근력이 없어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을 수 없는 상황. 이에 비좁은 기표대에 활동보조인이 함께 들어와 몸을 구부린 채 겨우 기표를 마쳤다.

그리고 다시 그에게 ‘기다림’의 시간이 찾아왔다. 선관위에서 제공한 차량이 박 상담가를 내려주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

처음 박 상담가가 투표를 하기 위해 사전투표소를 찾은 시간은 10시 40분. 그리고 그는 2시간 20분, 무려 140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야 ‘소중한 한 표’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참정권 행사는 어렵기만 하다. 장애유형에 맞는 맞춤형 편의제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상임대표 “매 번 선거 때마다 장애인의 참정권 확보를 위한 정책을 요구하지만 개선된 점은 미비하고 이는 명백한 차별행위.”라며 “장애유형과 특성에 상관없이 모두가 차별 없는 참정권을 실현할 수 있는 선거환경을 요구한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