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송전원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유정선 씨 인터뷰

지난해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이었던 그날. 한국 장애계는 ‘탈시설’ 역사에 있어서 또하나의 의미있는 일이 있었다.

오랫동안 장애인에 대한 폭행와 학대, 성폭력, 사후피임약 강제복용 등 혐의로 기소됐던 인강재단 산하 장애인거주시설 송전원이 문을 닫은 것이다.

이에 송전원 시설 거주인 47인 중 16인은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고,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한 3인은 타기관에 전원, 28인은 인강원재단에서 탈시설을 준비중에 있다.

웰페어뉴스에서는 송전원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유정선 씨(36)를 만났다. 유정선 씨는 지난해 9월 지역사회로 나와 서울시 노원구에 위치한 체험홈에 둥지를 틀었다. 그가 만드는 ‘일상’의 자유를 들어보자.

 유정선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월이다. 아직 지역사회에서 생활한 지 3개월 여 밖에 되지 않아서 인지, 내성적인 성격탓인지, 처음 만남은 다소 서먹하고 어색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인터뷰 하는 사람의 기초 정보. 이름밖에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제일 먼저 유정선 씨의 나이를 물었다.

‘아마 제가 더 나이가 많을 걸요.’ 선뜻 나이를 대답해 주지 않아 조금 당황했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풀기 위해 가벼운 대화로 인터뷰 물꼬를 텄다.

“어? 저도 보기보다 나이가 좀 있는걸요. 유정선씨 되게 어려보이시는데, 아닌가요?”

“전 82년에 태어났어요. 36살이에요. 내가 나이가 더 많죠?”

“너무 젊어 보이시는 거 아니에요? 저보다 많네요”

“거봐요. 내가 나이가 많아요. 그러니깐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그럼 인터뷰할 때 호칭은 언니라고 할게요! 언니!”

“헤헤. 나는 언니라는 소리 좋아요”

어색한 분위기는 금새 풀리고, 본격적인 인터뷰(인터뷰라기 보다는 수다가 더 맞는 표현일 듯 하다)가 시작됐다.

“송전원에서 나와서 두달 동안은 사람들과 말을 잘 하지 않았다. 특히 남자들과는 말을 거의 섞지 않았다. 주위사람들의 눈치를 자주 봤고, 그저 조용히 우리가 말하는 것만 들었다. 그러다 차츰차츰 우리와 생활하면서 얼굴을 익히고,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함께 하다 보니깐, 이제는 조금씩 웃어주고, 이야기도 많이 한다.”

유정선 씨가 있는 노원중증장애인독립생활센터 임형찬 사무국장은 처음 유 씨를 본 소감을 위와같이 전했다. 낯을 많이 가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했던 유 씨. 아마 오랫동안 송전원 생활로 말을 하는 것에 위축됐을 것이란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다.

본인이 언제 처음 송전원에 들어갔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유 씨. 그러나 시설에 누구와 함께 들어갔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예전에 엄마가 나를 데리고 어디를 갔어요. 어디인지 몰라 이리저리 둘러봤는데,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너는 이제부터 여기서 생활할거야. 엄마는 이제 여기 안올거야. 여기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있어’라고 이야기했어요.

엄마의 말 이후, 나는 어느 건물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리고 지금까지(지난해 9월) 그곳에서 있었죠.

저는 엄마가 날 여기로 데려온 날을 똑똑히 기억해요. 그때 내 손을 놓은 걸 잊을 수가 없어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송전원에 온 유 씨. 그렇게 길고 긴 송전원 생활을 시작한 유 씨는 송전원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송전원 친구들은 참 좋았어요. 같이 이야기도 많이 하고, 밥도 먹고 그랬죠. 가끔 친구들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송전원에서 나온 16인은 체험홈 거주가 가능한 각 지역구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황). 그래서 송전원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그러나 선생님은 정말 나빴어요. 나는 똑똑히 기억해요. 선생님은 나에게 그렇게 나쁜 말(유 씨의 말을 그대로 옮김)을 많이 했으면 안됐어요. 나를 그렇게 대하면 안됐어요.

친구들이 보고 싶지만, 선생님은 만나고 싶지 않아요.

송전원 생활은.... 음..... 잘 기억나지 않아요. 다만,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밥 먹는게 조금 힘들었어요.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선생님이 6시에 밥을 먹지 않으면 배고파도 밥을 먹을 수 없다 그래서 겨우겨우 먹었어요.”

인터뷰 내내 수줍어 했던 유 씨였지만, 가족과 송전원 이야기가 나오면 긴장하고, 이리저리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굳이 다시 꺼내지 않기로 했다.

밥을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자유

▲ ‘사진 한장 찍을게요’란 말에 해맑은 표정으로 자세를 취하고 있는 탈시설 당사자 유정선 씨.
▲ ‘사진 한장 찍을게요’란 말에 해맑은 표정으로 자세를 취하고 있는 탈시설 당사자 유정선 씨.

유 씨는 송전원에서 나온 직후, 추석을 맞아 주변 사람들(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는)과 함께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송전원과 달리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차례를 지내고, 함께 송편을 나눠먹는 모습에 신기해하면서 함께 첫 명절을 보냈다.

그리고 두번째 명절인 설날에도 그는 자신의 선택으로 일상을 보냈을 것이다. 당연하고도 당연한 모습이 시설에서 나온 그에게는 ‘신기’했다. 원하는 것을 하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게으름’도 선택할 수 있는 일상. 유정선 씨는 그렇게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송전원에서 나온 이후 유 씨는 본인의 일상을 뭉뚱그려(?)설명했다. 그만큼 무슨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한편 그동안 누려보지 못한 게으름을 맘껏 즐겼다는 이야기 일수도 있다.

“집에서 별 것 안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000(체험홈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탈시설 당사자)와 밥을 먹어요. 내가 밥을 차릴 때도 있고, 내가 늦게 일어나면 000가 밥을 차려요. 그러면 제가 설거지를 하죠. 귀찮으면 설거지도 그냥 미뤄둬요.

그리고 센터(노원중증장애인독립생활센터)에 놀러가요. 거기에는 늘 사람들이 있거든요. 센터가서 센터 대표님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사람들과 다 같이 먹어요.

그리고 제가 커피를 직접 타주기도 해요. 제가 탄 커피를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고 그래요.

오후시간에는 별다른 일을 안해요. 센터에 있고 싶으면 센터에 있고, 집에 가서 텔레비전보고 싶으면 그냥 집에가요.

누가 저한테 ‘뭐해야한다’라는 말을 안하니, 혼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어요.”

센터에 의하면 유 씨는 아직 자립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직업훈련과 같은 특별한 센터 프로그램을 하고 있지는 않다(여러 복지관이나 센터내 기관에서 유 씨가 할만한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있는 중). 다만, 영화보기, 지하철타기, 여행가기 등 일상생활 적응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본인의 몸 상태 대로, 생각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 유 씨. 우리는 그것을 ‘자유의지’라 부른다.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유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 자칫 그것의 소중함도 잊고 지낼때가 많지만, 시설거주인에게는 꿈같은 단어다.

먹기 싫을 때 먹지 않고, 자고 싶을 때 잠을 자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동안 꿈꿔왔던 것이 현실이 된 유 씨는 아직 서툴지만, 천천히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것을 누리고 있었다.

‘커피와 빵을 만들고 싶어요’

어느 누구라도 그러하듯 자유의지만으로는 생활(더 자세히 말하면 생계)을 이어갈 수가 없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어떤 일을 해야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유정선 씨 역시 미래에 대한 고민을 꽤 하고 있다.

현재 유 씨는 체험홈에서 살고, 장애인연금 20만 원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하고 싶은 것 많고 ‘더 큰 집’으로 이사도 가고 싶은 그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비용이다.

이에 유 씨는 송전원에서 나온 뒤 지역사회에 살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내가 무엇을 잘할까’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해왔다.

그런 그가 선택한 진로는 바리스타.

‘앞으로 뭐하고 싶어요?’란 질문에 그는 막힘 없이 ‘빵 만들고, 커피 만드는 것 하고 싶어요’라고 답한다. 미래에 대한 장황한 목표나 구체화 된 계획은 없다. 다만 시설에서는 상항하지 못한 ‘꿈’이 생겼다. 꿈을 꾸는 것 또한 시설에서는 없었던 선택의 자유다.

“사람들에게 커피를 타주고, 내가 탄 커피를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그리고 그냥 내가 빵을 좋아해요.

커피와 빵을 만드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몰라요. 그래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그걸로 사람들에게 맛잇는 커피와 빵도 주고, 돈도 벌어서 지금보다 좀 더 큰 집으로 옮기고 싶어요. 그것이 꿈이에요.”

현재 센터는 유 씨의 꿈을 위해 바리스타 과정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고 있다. 아직 교육 프로그램이 많지 않고, 교육 인원도 제한되서, 당장 프로그램을 배울 수는 없지만, 센터와 유 씨는 차근차근 준비중이다.

“송전원에서는 새해 첫날인 1월1일 아침에 평상시처럼 밥을 먹고, 선생님들한테 세배를 해요.

송전원을 나오고 나서, 2017년 1월 1일. 나는 의정부에서 친구들 4명(탈시설 한)을 만났어요. 맛집을 이리저리 찾아보고 갔지만, 생각보다 맛이 없었어요.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았어요. 그리고 친구들이랑 맥주를 마셨어요. 맥주를 많이 마시진 못하지만,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면서 맥주 마시는 것을 좋아해요.

앞으로 쭉 이렇게 지내고 싶어요. 친구가 보고 싶을 때 연락해서 만나고, 함께 맛집 찾아다니며 술도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럴려면 돈도 벌어야 할 것 같아요. 당장 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열심히 찾아보고 배울거에요.”

유정선 씨가 설명하는‘일상’

지역사회 삶을 시작한 유정선 씨는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일상을 지내고 잇다. 그 중에서도 강촌여행을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로 꼽는다. 노원중증장애인독립생활센터에서 지역사회 적응을 위해 진행했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유정선 씨. 그가 설명하는 사진에는 일상의 행복이 담겼다.

▲ “여기가 강촌인데요. 이 여행은 내가 가고 싶었다고 그랬었거든요. 이때 가서 맛있는 것도 많이 찾아 먹고요, 밥도 먹었죠.  여러 사람과 식구들이(함께) 있으니깐요. 선생님이랑 재밌게 놀았거든요. 과일도 먹었어요. 내가 먹고 싶은거 먹었어요. 먹구요. 쌈도 싸서 먹었어요. 그래서 이때는  편하게 지냈을 것 같아요.” ⓒ노원중증장애인독립생활센터
▲ “여기가 강촌인데요. 이 여행은 내가 가고 싶었다고 그랬었거든요. 이때 가서 맛있는 것도 많이 찾아 먹고요, 밥도 먹었죠. 여러 사람과 식구들이(함께) 있으니깐요. 선생님이랑 재밌게 놀았거든요. 과일도 먹었어요. 내가 먹고 싶은거 먹었어요. 먹구요. 쌈도 싸서 먹었어요. 그래서 이때는 편하게 지냈을 것 같아요.” ⓒ노원중증장애인독립생활센터
▲ “사람들이랑 지하철을 탔어요. 오이도를 가려고 했었는데, 너무 추웠어요.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사람들이랑 함께 다니는 것 좋아요. 앞으로 자주 놀러 다닐거에요.”
▲ “사람들이랑 지하철을 탔어요. 오이도를 가려고 했었는데, 너무 추웠어요.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사람들이랑 함께 다니는 것 좋아요. 앞으로 자주 놀러 다닐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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