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개념 축소 및 일정한 국가기관의 판정절차 필요”

▲ ⓒ안서연 기자
▲ '정신장애인 인권증진을 위한 토론회'1부. ⓒ안서연 기자
정신장애를 이유로 권리가 부정되고, 사회참여 기회마저 배제돼왔던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한정신건강재단과 공동으로 지난 11일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정신장애인 인권증진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정신장애인의 ‘법적 제한에 대한 개선방안’과 ‘사회참여를 위한 개선 방향’으로 나눠 진행됐으며, 정신재활센터 종사자와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도 들어볼 수 있었다.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신권철 교수는 “정신장애인들은 ‘무능력’과 ‘위험성’이라는 잘못된 편견 속에서 면허나 지위 취득을 제한받고 있다.”면서 “이러한 자격제한은 정신보건법 제3조 제1호 ‘정신병·인격장애·알코올 및 약물중독, 기타 비정신병적 정신장애를 가진 자’에 기준을 두고 있어 대상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대규모의 사람들이 자격제한을 받는 불합리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정신장애인 개념을 축소하고, 일정한 국가기관의 판정절차가 필요하다. 또한 질병 자체만으로 자격제한을 절대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정신장애와 업무 사이의 연관성이나 수행가능성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단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강석훈 교수는 “정신장애인이 사회생활에 제한을 받는 것을 최소한으로 구체화해야 한다.”면서 “정신장애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제한되는 것이 아니고, 정신장애인이라는 용어와 별개로 그 정신상태가 사회생활 및 현실 검증 기능에 있어 어려울 경우에만 제한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제언했다.

더불어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방화범을 ‘정신장애인’이라고 보도했으나 실제로는 뇌병변장애만 갖고 있었으며, 2004년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당시 ‘정신병자’로 간주돼 언론에 오르내렸으나 실제 감정에서는 어떠한 정신과적 장애를 갖추지 못했고, 2008년 숭례문 화재 당시 ‘정신장애인’의 범행으로 간주됐으나, 정상인으로 평가됐다.”며 “사회에서 범죄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정신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섣불리 사용함으로써 다수의 안정된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빚어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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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정환 교수. ⓒ안서연 기자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정환 교수는 정신장애인의 위험성이 비정신장애인의 위험성보다 높은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일어난 강력범죄는 모두 37만5,000여 건으로 이 중 정신장애인이 저지른 강력 범죄는 1,650건(0.4%)에 불과했다.”며 “정신장애인의 위험성이 지나치게 과장돼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염형국 변호사는 지난 2009년 6월 경기도 한 아파트에 살던 정신장애 2급인 A(남, 30)씨와 가족이 아파트 입주민들로부터 집단따돌림을 받은 일화를 설명하며 “모든 사람들이 정신장애인의 인권도 소중하다고 하지만, 자기와는 무관한 사람, 자기 주변에서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손사래를 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날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을 밝히기 위해 토론회에 참석한 김(여) 씨는 “치료를 받고 싶어도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다.”며 “사람들이 정신장애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 데는 미디어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미디어를 역이용해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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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샘정신재활센터 종사자 최은혜 씨. ⓒ안서연 기자
한편, 마음샘정신재활센터에서 근무하는 최은혜 씨는 “정신장애인은 ‘깨어진 거울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정신과적 증상으로 인해 현실을 인지하고 판단하는데 왜곡이 발생하는 것일 뿐이므로 능력의 결함이나 신체적인 활동상의 제약과는 다른 관점에서 평가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을 통해 취업하게 된 정신 장애인에게 2년에 1회씩 실시되는 장애등급재심사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최 씨는 “사회적 편견과 현실적응능력의 제한으로 취업의 기회가 제한적인 정신장애인이 지지취업을 통해 취업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장애인 복지카드에서 탈락하게 되면,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로인해 직업재활활동에 참여하며 증상을 관리하고 삶의 희망을 가졌던 정신장애인이 좌절하고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장애인 복지카드에서 탈락되더라도 다시 채용해 지속적으로 근로를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토론을 경청하던 정신장애인 당사자 조(남) 씨가 토론자들에게 ‘무력감을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에 대해 묻자, 사회복귀훈련시설 사랑밭 용효중 원장은 “문제에 집중하기 보단 꿈과 목표를 구체화하고, 이루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하길 바란다. 그리하면 변화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날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정신장애인의 정의와 개념은 무엇보다 정신보건법에서 가장 먼저 논의되고 바뀌어야 한다.”며 “용어 개념이 좀 더 구체화하고 명확해진다면, 타 자격제한의 법령들에 있어서도 정신장애인의 인권이 원칙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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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등급재심사로 인해 직장을 잃게 된 정신장애인당사자의 일화. ⓒ안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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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정신장애인 인권증진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안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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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장애인 인권증진을 위한 토론회'2부. ⓒ안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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