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welfar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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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겨우내 황폐해진 땅에서 만물이 소생하고 새 생명이 움트는 봄이 찾아왔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딱딱한 땅 가운데 생명이 피어나는 것은 T.S 엘리엇의 말처럼 가장 잔인해 보일 수 있지만 또한 가장 희망적인 일이기도 하다.

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으로 단단히 굳은 땅을 딛고 일어나, 희망을 품고 새 텃밭을 가꾸는 한 사람이 있다. 세종사이버대학교 오윤진(39ㆍ시각장애1급) 사회복지학부장이 그 주인공이다.

잘못된 두 번의 비류관 수술로 시신경을 다쳐 4세 때 한쪽 시력을 잃고, 12세 때 나머지 한쪽의 시력마저 잃어버린 오 학부장. 전맹인 상태로 초등학교를 마친 그는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대전맹학교와 서울국립맹학교에서 수학한 후 마침내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 무사히 졸업해 유학길에 올랐다. 94년 도미한 그는 10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귀국, 세종사이버대 교수로 임용됐으며 올해 학부장까지 맡게 됐다.

어찌 보면 순탄해 보이는 젊은 날을 지나온 것 같다. 하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대학입학거부를 당하는 뼈아픈 일과 상대 집안의 반대로 첫사랑과 헤어지는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입학거부로 좌절감에 빠져있던 그를 인정해 준 사람은 모교의 교무처장이었다. 미국에서 시각장애인과 공부한 경험이 있던 교무처장은 “시각장애인도 충분히 수학할 수 있다”며 “이 정도의 성적이면 장학금도 받고 다닐 수 있겠다”고 오 학부장을 격려했다.

오 학부장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 교사로 재직 중이던 그의 아버지는 대학 교재를 전부 녹음하는 헌신을 보였다. 대학 실습 때 만난 부인은 기나긴 유학생활을 함께 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인생의 동반자로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현실은 냉정했지만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다시 한 번 일어서고, 성장할 수 있었다.

“사회복지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도움을 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소망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벽을 허물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막연한 이론과 냉엄한 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자신의 소명을 잊지 않고 묵묵히 걸어갔다. 장애에 대한 편견을 몸소 체험한 그였기에 장벽을 허무는데 스스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강한 신념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오 학부장은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고 한다. 환경만 갖춰진다면 장애인이라고 해서 못할 것은 없다는 것과 같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공정한 실력과 경쟁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기회의 평등은 요구하되 실력과 경쟁은 장애인의 몫이라는 점이다.

그는 “교육, 환경, 인식 개선을 위해 권리를 외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합리적 대화와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 학부장은 현재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환경 개선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대학 측에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요구해 세종사이버대 입학생 중 시각장애인 등록금 50% 면제, 일반장애인 20% 면제, 음성스크린리더 등 자료의 음성데이터화를 이끌어냈다. 현재 입학생의 15% 이상이 장애인일 정도로 그의 노력은 작지만 큰 성과를 거뒀다.

장애인도 마음껏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실력으로 정정당당히 인정받는 학생들을 배출하고 싶다는 오 학부장. 황폐한 땅을 새로이 가꿔나가는 그의 모습 속에서 4월의 잔인함을 거두는 따사로운 봄햇살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해맑은 미소 한가득 희망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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