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김성곤 기자 ⓒ2006 welfarenews
▲ 사진/ 김성곤 기자 ⓒ2006 welfarenews

우리 모두는 늘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배심원 석에 앉혀 놓고, 피고석에 앉아 우리의 행위를 변명하고자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 안셀름 그륀

인간은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간다. 따라서 인간은 항상 남의 시선에 좋은 것은 무엇이든 쉽게 드러낼 수 있지만 반대로 나쁜 것은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억압되는 모순적 상황 속에 놓이게 된다.

자본주의와 매스컴의 발달로 도래한 대중문화. 대중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란 존재는 이 모순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다.
다수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만 갖춰야 하는, 못나고 부족한 것을 드러내면 대중의 비난과 질타의 화살을 언제 맞을지 모를 불안감에 떨게 되는 스타.

하지만 이 모든 불안과 고통을 뒤로 하고 숨겨왔던 자신의 아픔을 꺼내든 한 사람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배우 임은경 씨. 지난 3월 출간된 ‘붕어빵의 꿈’은 임 씨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한 동화다. 동화에는 농아인인 부모와 삼촌 사이에서 겪었던 어린 시절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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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김성곤 기자 ⓒ2006 welfarenews

“가슴 속에 간직한 나의 비밀을 내보이는 것은 정말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해요.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진실한 나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기뻐요.”

그랬다. 그녀는 용기를 내야 했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기 때문에.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세상에 대한 작은 변화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책을 냈지만 상업적이다, 부모 이용해 돈 벌려는 수작이라는 등 견디기 어려운 비난들이 쏟아질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결심했다.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부모와 삼촌이 모두 농아인인 가정에서 태어난 임 씨는 장애인에 대한 시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버스에 장애인이 오르면 그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들은 메아리치듯 퍼져나간다.
하지만 그 눈길은 결코 따스한 눈빛이 아니다.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차가운 시선들. 그 시선의 아픔을 임 씨는 몸소 겪었다.

임은경 씨는 “나도 배우라는 직업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곤 하지만 그 시선과 장애인에 대한 시선은 다르다고 본다”며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꼭 집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직까지도 부정적인 시선이 훨씬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의 느낌을 좀 더 따스하게, 아름답게 바꿀 수는 없을까? 고민하던 그녀에게 고정욱 작가가 손을 내밀었고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세상의 시선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작은 소망을 품게 됐다.
임 씨는 “이 책은 그동안 침묵했던 나에 대한 반성문이기도 하다”며 “솔직해지니 한결 편해졌다.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변화를 일궈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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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김성곤 기자 ⓒ2006 welfarenews

“장애인을 위한 영화, 장애인을 위한 방송… 조금씩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너무나 부족해요.”

지난 2002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두 번에 걸쳐 장애인영화제 홍보대사를 역임한 임은경 씨. 장애인영화제를 통해 장애인을 주제로, 혹은 장애인이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조금씩 생겨난다는 점에 잠시나마 위안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장애인에게 그 흔한 영화 조차 먼 나라 이야기라는 현실을 접해야만 했기에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임 씨의 어머니는 방송을 볼 때마다 “자막이 나와도 방송을 보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며 화면과 자막을 함께 보는 것이 힘들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자막을 좇아가기도 힘들다”고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고.
임 씨는 “장애인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와 진정한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며 “방송과 영화가 장애인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함께 관심을 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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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김성곤 기자 ⓒ2006 welfarenews

“아버지가 20년 넘게 목수 일을 하고 계세요. 딸로서 불안한 마음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에요.”

농아인인 부모와 삼촌을 보면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장애인의 취업’이라고 생각했다는 임 씨.
공사판에서 위험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해 목숨을 잃은 삼촌.
삼촌의 죽음을 경험하고서도 스무살 때부터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다는 아버지. 장애인이기 때문에 직업 선택의 범위가 너무나 좁고, 그 안에서 적응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목도한 임은경 씨는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임 씨는 “비장애인과 동등한 교육을 받았더라면 부모의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며 “교육을 통해 취업문을 넓히고 직업 선택의 폭을 확대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실이 담기지 않은 역할이라면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장애인 관련 역할에 대한 제의가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잘 할 수 없을 것 같다. 진정성이 없는, 재미나 흥행을 위한 역할이라면 마다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장애인의 자녀로서 누구보다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의 삶을 이해하고 있는 임은경 씨기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임은경 씨는 “진실을 담아 연기하고 싶다. 내 삶을 통해 조금이나마 세상이 변화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며 “아직 장애인으로 살아가기에 너무 힘든 현실이지만 모두다 조금씩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를 만나면서 ‘아름답다’는 말이 떠올랐다. 인형 같은 외모를 넘어 그녀 안에 숨겨진 진실된 내면에서 느껴지는 향기가 내 가슴을 울렸다. 슬프도록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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