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5월 약물치사·성폭력 등의 혐의로 구속된 ‘김포사랑의집’ 정씨에게 실형 4년이 선고됐다. 성폭력 피해자 중 한 명을 며느리로 삼은 그는 “아들이 척수장애인이라, 내가 대신 며느리에게 해줬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지난 2005년 4월 20일 부산고등법원 형사1부(지대운 부장판사)는 정신지체 2급의 이양(사건당시13세·울산)을 5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폭력 및 임신과 낙태를 시킨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 김씨(54)에 대해 1심과 같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자신이 살던 집에 세 들어 사는 내연녀의 딸 이양을 지난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성폭행한 혐의로 2003년 10월에 기소됐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정신지체장애는 인정할 수 있지만, 범행당시 장애로 인해 항거불능의 상태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항거불능’이 뭐길래...

항거불능이란,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입증할 증거가 없으면 항거불능을 인정할 수 없다”며 항거불능을 지나치게 좁고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

정신지체 2급인 이양의 경우 IQ 35~49로 판단능력과 대처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지적장애인은 가해자가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느끼면 극도의 위축감으로 인해 무기력해지며, 위계관계인 가해자에게 절대 저항할 수 없다. 상습적으로 성폭력이 행사되면 인지능력이 더 떨어지게 된다.

위 판결은 정신지체장애특성에 대한 무지로 인해 빚어진 결과다.
성폭력특별법 제8조 ‘항거불능’ 조항은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생겼지만, 지적장애인일 경우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또한 재판부는 항거불능에 집착한 나머지 이양이 미성년자임을 간과했다.

대법원 원심 깨고 ‘항거불능’ 인정!

지난달 27일 대법원 2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정신지체 2급의 이양에게 지속적인 성폭력을 한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 김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울산 정신지체 청소년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2004년 4월 29일 결성됐다. 공대위는 피해자의 정신지체장애특성과 미성년자임을 고려한 대법원의 판결과 가해자 엄중처벌을 요구, 우리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여성장애인 성폭력 근절 및 인권회복을 위해 활동해왔다.

이번 대법원 재판부는 “성폭력범죄처벌법이 규정하고 있는 ‘신체 또는 정신장애로 인한 항거불능상태’는 장애자체로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경우뿐 아니라 장애가 주된 원인이 돼 심리적 또는 물리적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이른 경우도 포함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김씨가 평소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자주 폭력을 행사했고, 성행위를 거부하면 김씨가 때릴까봐 겁을 먹었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이와 같은 판결을 내렸다.
이는 장애 자체로 인해 반항이 어려운 경우뿐만 아니라, 장애로 인한 제반환경을 고려해 물리적 반항 및 심리적 반항이 불가능해진 경우도 항거불능 상태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폭행이나 협박을 했느냐, 안했느냐?”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신희원 팀장은 “성폭력사건발생 시 이와 같은 사항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며 “장애인의 경우 이에 마땅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입증하기 힘들다”고 했다.
또한 “입증이 불가능할 경우, 특별법에 의해 진행돼야 하지만 대부분이 형법에 의거해 판결을 내린다”고 문제점을 꼬집었다.
공대위는 가해자 김씨의 엄중처벌과 더불어 성폭력특별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은 성폭력예방을 위한 성교육 및 ‘여성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지원 가이드북’을 전국적으로 배포하고 있다.
내년에는 성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치료프로그램을 실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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