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덕윤 감독은 현재 영화 '킬러'라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2007 welfarenews
▲ 임덕윤 감독은 현재 영화 '킬러'라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2007 welfarenews

장애인 대부분이 후천적 장애인이고, 그들은 삶에 대한 회의로 좌절과 많은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슈퍼맨’이 있다. 수많은 어려움과 장애를 극복하고 힘차게 웃는 슈퍼맨.
또 한 명의 슈퍼맨을 만났다.

어렸을 때 동네에 이동극장 차량이 보여준 스크린과 영사기의 모터소리가 기억에 남는다는 임덕윤 감독(39·시각장애 1급).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중고 8미리 필름카메라와 영사기를 구입해 영화인을 향한 첫 발을 내딛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단역배우로 활동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촬영현장에서 보냈다.
단역으로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다가 고등학교 동창의 소개로 당시 유명했던 이두용 감독을 만났다. 그때부터 임씨는 연출부로 활동했다.

‘삼토스와 댕기똘이’, ‘청상계’, ‘돈아 돈아 돈아’ 등 많은 작품에서 연출부로 일하다가, 1989년 임씨는 ‘형’이라는 단편영화를 제작하면서 감독의 길을 걷게 된다. 연출은 물론이고 촬영, 편집까지 임 감독이 직접 만들었다.
임 감독은 그 밖의 여러 작품들을 비롯해 각 기관의 홍보물 등을 제작했다. 그는 ‘씨네서울 단편영화전’에서 준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그렇게 영화인으로서 힘찬 걸음을 내딛고 있을 때쯤, 2003년 말에 임 감독은 만성신부전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초자체 출혈 및 망막박리로 시력을 잃는다. 오른쪽 눈을 잃고, 머지않아 왼쪽 눈도 제 기능을 거의 잃게 됐다. 마약성분의 진통제를 써도 몸부림칠 만큼 고통스러운 병원생활을 보냈다.

“새벽에 자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깼어요. 간이침대에서 주무시고 계신 어머니를 불러도 일어나실 기미가 안 보이고... 화가 나서 발로 흔들어 깨우려는데, 어머니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어요. 깨울 수가 없더라고요. 결국 혼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걷고 걸어도 손에 아무것도 안 잡히는 거에요. 알고 보니 옷깃이 누군가의 침대에 걸려있었어요. 정신이 아득해져서 화장실이고 뭐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누웠죠”

퇴원 후, 임 감독은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열 걸음도 걸을 수가 없었다. 시골의 절에 들어가 회복기간을 마치자마자 서울로 올라가 영화 속에 뛰어들었다.
건강은 더 악화됐고, 영화인으로서의 삶은 끝날 듯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복지관을 통해 배우게 된 컴퓨터가 희망을 실어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묻자, 임 감독은 1993년도에 제작한 ‘빵아빵아빵아’를 꼽았다.
그의 초기작 ‘형’에 비해 수준은 떨어지지만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제작한 영화기에 의미가 컸다.

임 감독은 옛 기분을 내기 위해 예전처럼 ‘우리끼리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하려고 시도 해봤지만, 예전 같지 않은 그에게는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은 금이라고 생각해서 최대한 대화를 아꼈어요. 당연히 결과물이 좋을 리가 없죠.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너는 앞이 보이는 사람도 안 보이게 만들고 있다’고요”

이렇듯 시행착오를 겪은 임 감독은 현재 인형을 갖고 콘티를 짠다.
배우들과 시나리오를 직접 맞춰보기도 하지만, 서로 시간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인형을 가지고 짠 콘티를 사진으로 찍어 시나리오와 맞춰보고 최종적으로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임 감독에게 현재 힘든 점을 묻자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다만 “현재 ‘킬러’라는 작품을 제작 중인데, 소요된 비용만큼 진행된 게 없어 걱정이에요. 앞으로 최선을 다해야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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