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신문 오재호 경기지사장은 끝없는 노력 끝에 자립생활에 성공하고, 현재 장애인신문 지사 중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2008 welfarenews
▲ 장애인신문 오재호 경기지사장은 끝없는 노력 끝에 자립생활에 성공하고, 현재 장애인신문 지사 중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2008 welfarenews

장애인신문 경기지사를 맡고 있는 오재호(57, 지체장애 1급) 지사장.
그는 16세 때까지 전남에서 아버지의 농사 일을 돕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심각한 가뭄으로 인해 더 이상 농사를 할 수 없게 됐고,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무작정 상경했다.

오 지사장은 서울로 먼저 올라온 선배들을 따라 건설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1971년 여름 어느 날, 서울 신당동 한 건축현장에서 철근을 운반하다가 감전사고로 양팔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그동안 일했던 회사는 규모가 작은 곳이어서 보상은커녕 병원비도 받지 못했다. 그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재판에 승소했지만 끝내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퇴원한 그는 사고를 당하기 전에 저축한 돈과, 부모 형제들이 모아준 돈 12만원을 가지고 영등포구 대림동에 구멍가게를 열었다.

“사고를 당한 뒤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아내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시장에서 과일 한 박스와 야채거리를 사서 짊어지고 가게로 오는 일 밖에 없었어요. 손님이 오면 물건을 싸주고 돈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손님이 오면 아내를 불렀죠. 그러면 빨래를 하다말고 와서 물건을 팔고, 다시 빨래를 하러 가고 그랬어요”

오 지사장은 병원에서 만난 현재의 부인과 결혼도 했고, 예쁜 손녀를 둔 할아버지가 됐다.

장애인신문 오재호 경기지사장은
▲ 장애인신문 오재호 경기지사장은 "장애는 새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된다"며, "장애를 받아들이고 다시 살아가는 용기를 키워야 한다"고 전했다. ⓒ2008 welfarenews

그는 1987년도에 장사를 접고, 1995년 장애인단체에 가입해 안양시 지체장애인협회에 부지회장으로 들어갔다.
장애인신문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도 그때였다. 장애인신문을 읽게 된 오 지사장은 장애인신문이 장애인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라고 생각했다.
그는 협회에 장애인신문을 장애인에게 보내주자고 제안했지만, 당시 재정관계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부딪쳤다.

오 지사장은 장애인들에게 장애인신문을 제공하고자, 1996년 10월경에 부회장직을 사직했다.
서울로 올라와서 장애인신문 최규옥 회장을 만나고, 현재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의 김동범 사무총장을 만나 경기지사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경기지사의 신문부수가 100부였습니다. 배달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신문 더미를 덜미에 얹고 당산동에서 경기지사까지 갔죠. 1년 이상 그렇게 다니다 보니, 구독자 수가 점점 늘어나더라고요. 500~600부까지는 나르는데 문제가 없는데, 그 이상이 되다보니 무거워서 직접 못 나르게 됐습니다”

그는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택시도 타야하는 불편함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장애인신문 지사 중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제가 밥을 먹어야 한다면, 제가 먹는 걸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먹여주는 걸까요?”

오 지사장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자기만의 식사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화장실은 물론, 운전도 남의 도움 없이 혼자 한다.
오 지사장은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지면, 자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스스로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대부분이 후천적 장애인입니다. 장애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니 장애를 빨리 인정하고 재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다보면 자립생활은 자연히 따라오거든요. 이미 장애를 입었으니 그 상태에서 다시 살아가야 하는 용기를 키워야 해요.”

현재 경기지역에는 장애인신문과 비슷한 이름의 신문 20여 종류가 생겨났다.

“장애인신문이라는 이름과 위상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 질 좋은 장애인신문을 만들어야죠.”

오 지사장은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줄 수 있도록 하는 게, 본인의 꿈이자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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