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이하 노실사)은 서울지방경찰청 정문 앞 경찰들의 방어 속에서 ‘민중의 지팡이가 민중의 몽둥이로!’라는 팻말을 세워놓고 ‘노숙인 사망 방조 경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제공/ 노실사 ⓒ2008 welfarenews
▲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이하 노실사)은 서울지방경찰청 정문 앞 경찰들의 방어 속에서 ‘민중의 지팡이가 민중의 몽둥이로!’라는 팻말을 세워놓고 ‘노숙인 사망 방조 경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제공/ 노실사 ⓒ2008 welfarenews

사회적 약자로서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할 노숙인이 사회적 편견 속에서 또 한 번 신음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후 7시경 서울 광진구에서 30대 노숙인이 훔친 소주 한 병과 목숨을 맞바꾼 사건이 발생했다.

상점 주인이 냉장고에 넣기 위해 내놓은 소주를 30대 노숙인이 마시려하자, 이를 본 주인이 소주를 뺏는 과정에서 술이 엎질러졌다. 이에 대해 노숙인이 사과조차 하지 않고 뒤돌아가자 화가 난 주인은 소주병을 그의 허벅지를 향해 던졌다.

노숙인의 허벅지에 맞고 바닥에 떨어진 소주병이 깨지면서 입구 부분이 튀어 올랐고, 튀어 오른 소주병은 노숙인의 무릎 아랫부분에 부딪혀 동맥이 파열됐다.

노숙인의 무릎 부위에서 피가 솟자 이를 목격한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했고, 이 과정에서 자동으로 119에 사건이 접수됐다. 곧 경찰은 도착했지만, 생명이 위험한 노숙인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시간을 지체했다.

목격한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경찰은 노숙인이 ‘더럽고 냄새 난다’며 순찰차 좌석에 깔 것을 찾고, 현장사진을 찍는 등에 시간을 소요했다. 결국 경찰은 약 10분간 시간을 지체한 끝에 신문지와 비닐로 노숙인을 싸고 순찰차에 태워 병원으로 옮겼다.

그 후 뒤늦게 구급대가 도착, 구급대는 차량이 정체돼 늦었다고 말했다. 경찰측은 광진소방서 본서와 구의소방안전센터, 능동소방안전센터 등 119구급대 조직간 교신이 제대로 되지 않아 현장 도착이 지체됐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이 신고한 시간은 7시 2분. 그러나 노숙인은 7시 24분에 응급실에 도착, 7시 40분 의사로부터 사망 판정 받았다.

노실사는 노숙인 사망 사건과 더불어 노숙인들의 인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사진제공/ 노실사
 ⓒ2008 welfarenews
▲ 노실사는 노숙인 사망 사건과 더불어 노숙인들의 인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사진제공/ 노실사 ⓒ2008 welfarenews

'노숙인이라고 해서 생명까지 내던진 건 아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은 지난 2006년에도 일어났다.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이하 노실사)에 따르면, 한 노숙인이 지나가는 시민에 의해 신고됐다. ‘노숙인의 안색이 안 좋아 건강이 위험해 보인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경찰은 노숙인을 병원으로 옮기지 않았다. 경찰이 노숙인을 조사한 결과, 노숙인은 140여만원 벌금체납 중이었던 것. 경찰은 노숙인을 처벌하기 위해 이송했고, 노숙인은 그 과정에서 사망했다.

한편 지난 2월 10일 숭례문 방화사건의 범인이 추측과 터무니없는 근거에 의해 노숙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2005년 1월 지하철 7호선 방화사건과 수원역 영아살해사건 등에서도 노숙인이 범인으로 지목됐었다. 경찰은 노숙인 범행 가능성을 놓고 탐문수사를 강행했지만, 위 사건의 범인 모두 노숙인이 아니었다.

노실사는 숭례문 방화사건 보도내용과 관련해 “노숙인을 겨냥한 마녀사냥식 언론보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숭례문 방화사건을 목격한 누리꾼 이모씨는 “용의자 인상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노숙인’이라는 표현을 썼다”며 노실사 홈페이지에 공개 사과문을 올렸다.

그러나 아직도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노숙인은 충분히 목숨을 구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숨졌다. 노실사는 이에 대해 지난 4일 서울지방경찰청 정문 앞에서 ‘노숙인 사망 방조 경찰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경찰은 멈추지 않는 출혈로 점차 의식이 혼미해져갔을 노숙인을 즉각 후송하기는커녕, 현장사진을 찍고 차 좌석에 깔 비닐을 찾는데 촌각을 다퉈야할 시간을 다 허비하고 말았다”며 “고인의 죽음은 ‘과다출혈’이라는 사인 이전, 노숙인에 대한 온갖 편견으로 점철된 경찰의 직무유기에 의한 타살”이라고 사건당시 경찰의 태도를 비판했다.

노실사 이동현 상임활동가에 따르면 하루 10번 이상 불신검문 받는 노숙인이 있는가하면, 노숙인이 시민에게 폭행당해 신고하면 경찰측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상임활동가는 “이는 노숙인을 예비범죄자 취급하는 동시에 노숙인을 차별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노실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찰측을 상대로 ▲편견대응, 늑장대응 책임자 처벌 ▲노숙인 등 사회취약계층의 인권보호를 위한 업무지침 마련 ▲노숙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피해 해결과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노실사는 “경찰이 노숙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길 바란다”며 “제2의, 제3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계속해서 우리의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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