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welfar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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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장애인 교육권 확보를 위해 서울특별시교육청 농성에 돌입하면서, 함께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가 창립됐다.

최석윤 회장(46)에게는 머리칼을 기른 12살의 아들이 있다. 최 회장의 아들은 발작증세로 머리를 여러 번 꿰맨 경험이 있어, 충격을 덜기 위해 머리칼을 길렀다.
최 회장의 아들은 지적장애어린이로 생후 3개월 때 세균성 뇌수막염 판정을 받았다.
당시 의사는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9가지 장애를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 부부는 여느 부모가 그렇듯이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 됐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러한 마음으로 아들을 키우고 있다.

최석윤 회장(46)에게 장애인교육법 제정 후 장애계단체의 분위기를 묻자, ‘아직도 70년대 사회 운동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 분야는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 했다.

장애인관련법, 뿌리 내리기도 전에 뽑아내겠다니...

“물론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 장애인교육법 등이 제정되면서 달라진 점은 있습니다. 제정 전에 각 기관은 장애계단체가 뭔가 요구할 때, 타당성은 있지만 근거가 없다며 도망가기 일쑤였어요. 이제는 도망갈 길이 없어진 거죠. 하지만 현장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함께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는 ‘집 앞에 있는 학교가 최우선이다’라는 생각으로 활동한다고 했다.
실제로 한 장애학생이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려고 하자, 학교측은 장애학생을 뒷받침할만한 시설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함께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는 지역교육청을 방문해 ‘학교측이 주장하는 점이 사실로 확인되면 그 입장을 수렴하겠으니 부모단체, 지역청, 지역시민단체와 함께 실태조사를 하게 해달라’라고 요청했다. 실태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 초등학교에 특수학급이 만들어졌다.

최 회장은 법에 따라 일하는 공무원이 장애인관련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공무원을 찾아가 이야기해보면, 공무원 대부분이 장애인관련법에 대해 무지합니다. 장애인관련법을 하나하나 설명해줘야 ‘잘 알았으니 검토한 후 다시 만나자’라고 대답합니다. 그 뒤에 다시 만나면 또 설명해야 되는 부분이 생깁니다.”

그는 이러한 문제점의 원인으로 중앙정부의 적극성을 꼽았다. 중앙정부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은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반면, 불리한 법은 생색내기에만 그친다는 것.

“한 번은 안내책자만 만들어서 배포하면 기업·지역사회·학교는 모른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가 직접 공무원들에게 장애인관련법을 알릴 테니 교육일정을 잡아달라고 해봤지만, 반응이 없었습니다. 알리면 불리하니 알리지 말라는 이야기밖에 더 됩니까.”

최 회장은 지난 2004년과 2006년 서울시교육감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또한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사회적 약자가 소외되는 일이 없게끔 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현재 국제중학교와 영어몰입교육 등을 내세워 서울시 장애인교육예산은 삭감되고, 장애인은 정책에서 배제되고 있다.

장애인에게 교육은 ‘더 중요하다’

장애인 교육권 확보는 국가의 책임이자 몫이다. 그러나 국가가 이를 수행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장애학생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어디로 가야할까? 장애계는 집과 시설, 둘 중에 한 곳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교육이 중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성인이 되기 전 어린 시절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뜻으로, 그만큼 교육의 중요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최 회장은 장애인 교육권은 단순히 장애학생의 교육 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비리시설에 입소한 장애성인, 한글조차 배우지 못한 장애성인, 집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장애성인 등. 최 회장은 이 문제는 모두 교육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다.

“교육은 곧 취업과 연결되고, 취업은 생계수단과 연결됩니다. 장애계 해결돼야 할 많은 문제들 중에 ‘장애인 교육권’이라는 문제를 하나 잡아당기면 장애인 이동·편의시설, 장애인 고용, 장애인 생존권 등 다른 문제들이 줄줄이 달려있어요.”

교육은 기본적인 권리로서 국민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학교 곳곳에서 통합교육이 진행되고 있지만, 단순히 ‘통합’일뿐이라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최 회장은 현재의 통합교육으로는 평등한 교육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장애유형과 그 정도가 다른데 수업방식은 똑같다는 것. 그는 장애학생에게 특수학급은 ‘놀이반’이고, 일반학급은 혼자 멀뚱멀뚱 앉아있는 ‘고립된 섬’이라고 표현했다.

“시대와 환경은 변화하고, 그에 따라 사람의 욕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반교육은 부모들이 요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런저런 정책들이 쏟아집니다. 특수교육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게 저희 목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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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문제점은 관심과 의지 결여

특수교사 증원, 치료사 및 보조원 배치, 이동·편의시설 설치, 장애인평생학습관 신설 등. 장애인 교육권 확보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는 지난달 29일부터 서울특별시교육청 앞에서 장애인교육예산 확보를 촉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최 회장은 이 문제를 예산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편집과 디자인 관련 업무에 휠체어 장애인분들이 참석한 적이 있어요. 뇌병변의 경우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고, 명함 하나를 만드는 데도 비장애인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죠. 그러나 상대방이 주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속도가 빠르고, 최대한 주문에 맞게 제작해 성과물을 보였습니다.”

최 회장은 정부가 ‘장애인에게 서비스만 해주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전했다. 장애인 직업교육에 대한 수많은 외국 사례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복지국가는 이뤄진다는 것.

“지적·발달장애의 경우 제과제빵을 많이들 선호하는데, 이를 공장형태로 운영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기초, 중간, 숙련 총 3단계로 반을 만들어서 최종에는 판매까지 할 수 있도록 말이죠. 판매는 노동부의 지원을 받고, 관리·감독은 지자체, 공간 확보 및 판매대상은 교회. 이렇게 하면 수익이 높지는 않아도 안정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정부가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생각이 나오지 않을까요?”

데모만능주의, 사회가 바라보는 시각

지난달 29일 제24회 전국장애인부모대회에서 대회가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개최됐다.
이날 한국장애인부모회 이만영 회장은 ‘데모 만능주의를 불식시키자’라고 발언해 장애인교육권연대의 비난을 사고 있다.

이 회장은 “공공기관을 상대로 일할 때 ‘데모를 하면 안 될 일도 되고, 데모를 안 하면 될 일도 안 된다’라고 하는 믿음이 보편화됐다”며 “‘데모 만능주의’를 불식시키기 위해 앞장서겠다. 그러나 정상적인 절차를 통한 우리의 합리적 주장이 불리하게 무시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과 행정부, 사법부의 공직자들이 적극적으로 노력해 줄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최석윤 회장은 이 회장의 발언이 바로 사회가 장애계단체를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이야기했다.
사회는 아직도 장애계에 무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계단체가 왜 목소리를 높이는지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시위하는 겉모습만 보고 ‘또 데모해’라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

장애인교육법이 제정을 위해 그동안 싸워온 장애인교육권연대 역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상태. 약속문서만 받았을 뿐 실제로 시행되는 것이 없어, 장애인교육권연대 내에서도 포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했다.

최 회장은 일관된 정신은 좋지만, 표현 방식은 시대가 시대인 만큼 좀 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했다.

“장애인교육법을 위해 싸웠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어느 한 분이 시위 할 때 도우미와 춤추는 풍선인형을 배치시키자고 그러시더라고요. 웃자고 한 말이지만요. 이 같은 발상의 전환이 투쟁을 즐겁게 하고, 상대방에게 신선한 충격과 메시지를 줄 수 있죠.”

최 회장은 역사 속 학생운동 및 민중운동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대중의 힘을 얻지 못하면 장애계단체의 목소리는 고립된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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