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대법원장 이용훈)이 교통시고나 산재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 판정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는 ‘맥브라이드의 후유장해에 대한 종합평가표(이하 맥브라이드 평가표)’를 대체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한다고 한다. 대법원이 손질을 하려고 하고 있는 이 평가표는 1936년경 미국의 의과대학 교수였던 맥브라이드가 만든 것으로, 그동안 산재 등 사고로 노동력을 상실한 정도를 판단하고 이를 손해배상의 근거로 사용되어져 왔다.

하지만 맥브라이드 평가표는 피해자가 입은 신체상의 장해만을 기계적으로 평가한다는 점, 손해보상액수가 너무 적다는 점, 평가표가 만들어진지 70년이 넘었지만 변화된 환경에 맞게 수정을 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점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평가표라는 논란이 있어왔다. 이러한 논란에 대하여 대법원은 지난 2004년 2월, ‘산재 등으로 장애를 입은 자의 노동능력상실률에 대한 평가는 피해자의 후유증이나 정신·육체적 활동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가지고 피해자의 성별, 연령, 교육 정도, 직업의 성질과 직업경력 및 기능숙련 정도 등을 모두 포괄하여 평가하여야 한다.’라고 판결(선고 2003다6873)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교통사고나 산재의 판정을 통한 손해배상을 시행함에 있어서는 맥브라이드 평가표를 근거로 신체 장해 정도를 그대로 노동능력 상실률로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 장애인정보문화누리(회장 안세준)는 대법원이 추진하고 있는 맥브라이드 평가표를 대체할 수 있는 기준마련 작업에 적극적인 지지의 의사를 밝힌다. 그동안 청각장애인의 경우 교통사고나 산재로 인하여 장애를 입었을 경우 맥브라이드 평가표에 의한 장해정도만 인정받아 불이익을 받아왔다. 청각장애인은 비장애인의 언어인 음성언어와 다른 시각언어인 수화(手話)를 사용한다. 하지만 맥브라이드 평가표에서는 청각장애인이 손이나 손가락, 팔, 얼굴 등에 장애를 입은 경우 언어소통 장애와 이로 인한 노동력 상실 등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광주에 사는 청각장애인 김ㅇㅇ씨가 산재로 인하여 오른 손가락 3, 4지가 절단되었다. 이로 인하여 김ㅇㅇ씨는 수화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등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화를 할 때마다 장애를 입은 손을 타인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장애판정의 기준이 되는 맥브라이드 평가표가 단순히 손가락 절단만 인정하다보니 언어를 만들고 발화(發話)하는 ‘혀’의 기능을 하는 ‘청각장애인의 손가락’의 특수성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장애를 입은 당사자도 그렇지만 이 사건을 지켜보던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실의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장애인단체에서는 몇 년 동안 해결책을 만들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였다. 다행히 지난 해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장애인의 요구를 받아드려 산재보상판정에 있어서 손가락 절단만이 아닌 언어의 장애를 수반한 것까지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이러한 의견은 청각장애인이 입는 장해를 판정하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의견이 현실적으로 손해보상에 적극적인 적용이 쉽지 않고, 수화는 손이나 몸, 얼굴표정 등의 종합적인 움직임을 통하여 구사되는 언어이기 때문에 장해판정에서 손가락의 문제만을 논할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맥브라이드 평가표를 대체하기 위한 연구에 우리 단체는 환영의 의사를 다시 한 번 밝히며, 이 연구과정에서 ‘사무노동/육체노동’ 등 겉으로 유추할 수 있는 노동과의 상관성만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다른 방식의 언어를 구사하는 청각장애인들의 장해판정기준도 특성에 맞게 개발하여 주길 법무부에 주문한다. 그리고 법무부의 작업을 계기로 수화가 특정한 집단이 사용하는 특수한 언어가 아닌 많은 언어중의 하나인 일반적인 언어로서 수화언어 정책이 시행될 수 있는 방안도 만들기를 정부부처에 주문한다.

2008. 12. 16.

장애인정보문화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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