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welfar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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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탕’ 총소리가 좋아 시작했어요”

김임연 선수가 30여년전 운동을 시작할때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의 노력조차 없던 시절. 장애인을 위한 운동시설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4살이 되던 해, 바이러스로 인한 소아마비가 찾아왔고 일어서는 것도, 앉아있는 것도, 그에게는 힘들기만 했다. 초등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앉아있는 것이 힘들어 할머니의 등에 업혀 겨우 입학식에 참여했고, 조금씩 운동을 시작하면서 목발을 짚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혼자 학교를 다닐 수 있었을 무렵, 한 복지관을 통해 수영·양궁·사격 등 각종 운동을 접하게 됐고 자신감이 생겼다. 주변의 추천으로 사격선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사실 그가 사격선수가 된다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였다. 5kg이 기본, 비장애인선수에게도 버거운 무게의 총을 들고 사격을 하는 것은, 어릴 적 팔을 드는 것도 어려웠던 김 선수에게는 피나는 노력이 뒤따랐다. 여기에는 꾸준한 수영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김 선수는 말했다.

장애인들은 대부분 비장애인들이 다니는 수영장에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보이지 않는다. 장애가 여실히 들어나기 때문. 김 선수 역시 수영장에 가는 것은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소아마비로 인해 다리에 흉터가 있는 김 선수. 수영장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무섭기 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를 낳기 전까지, 새벽반에 한번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모범생의 자세를 보였다.

취미로 하고 있는 수영이 그렇듯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사격에서도 김 선수는 운동의 힘듦보다 주변의 시선이 무겁게 느껴진다.

현재 KB국민은행에서 장애인 실업팀 1호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누구보다 독한 마음으로 운동을 한다.

“운동을 하러 사격장에 가면 다른 실업팀들과 함께 연습을 해요. 처음에는 휠체어에 앉아 조준하는 제 모습에 시선을 고정시키죠. 그럴 땐 ‘보여주기 위해’ 더욱 집중해요.”

이러한 노력과 굳은 마음이 실업팀에서의 비장애인선수들과 함께 운동량을 맞추며 선수활동을 할 수 있었던 그의 비결이다.

제13회 베이징장애인올림픽 여자 50m 소총 3자세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김 선수. 그에게 베이징장애인올림픽에 대한 이야기를 묻자 “눈물의 올림픽이었어요”라는 말로 입을 뗐다.

2005년 결혼한 김 선수에게는 20개월 된 아들이 있다. 올림픽을 위해 6개월간 전지훈련을 다녔던 그는 돌도 되지 않은 아들과 떨어져 생활해야 했다. 면역력이 약해 자주 아픈 아이를 보면 자신의 어린시절이 생각나 두려움이 앞서지만, 아들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기 위해 김 선수는 눈물로 합숙에 임했다. 그 결과 조금은 아쉽지만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지금은 운동을 하며 아들을 웃는 얼굴로 마주할 수 있다.

“올림픽이 다섯 번째 도전인데, 후배들을 위해서는 이제 물러나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더 많은 기록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 더 욕심내려고요.”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매 경기에서 메달행진을 기록하고 있으며, 아시아장애인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장을 맡고 있는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장애인올림픽위원회에도 도전 할 것이라고 한다.

자신을 넘어 많은 장애인선수들의 내일을 위해, 운동과 위원회 활동에 노력을 멈추지 않는 아름다운 모습을 더 넓은 세상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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