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welfar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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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며 환하게 웃음 짓던 최월화(66)씨.

“어머니께서 주변 사람들을 많이 도우셨어요. 아마 어려서부터 많이 봐서 봉사활동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지난 2007년과 2008년 사이 2,090시간의 봉사활동을 한 것을 인정받아 구청에서 주는 봉사활동 관련 금장을 받았다. 이 상은 1년에 1,000시간 이상 봉사활동을 해야만 받을 수 있는 상이다.

마포노인종합복지관(이하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한지 올해로 5년째라는 최씨는 처음 봉사활동을 했던 6·25 전쟁 직후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6·25전쟁 후 학교가 없어진 학생들을 위해 서울대, 해군장교, 약사 등 지식층이 모여 간이 학교를 차려 1년여간 수업을 했다”고 전했다. “그 당시는 도시락은커녕 제대로 된 신발도 없어 맨발로 다니는 학생들이 많았다”며 “돈이 생기면 학생들 신발을 사주는 것이 작은 행복”이었다고 떠올렸다. 당시 그의 나이 23세.

하지만 그는 계속 봉사활동을 이어올 수는 없었다. 남편의 병환으로 38세에 직업을 구해 병원비를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많은 회사에서 거절당해 취업하기가 힘들었지만 그 이후 21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고 운을 뗀 그는 최근 현대사회의 젊은이들을 향한 따끔한 일침을 잊지 않았다. “경제가 힘들어 젊은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 한다”며 “지금 사회는 옛날과 달리 여자도 당당히 나설 수 있으니 모두 힘을 합쳐 잘 극복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지금 누구보다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역사탐방동아리 활동과 복지관을 처음 찾는 노인들을 위한 상담, 봉사활동과 함께 라인댄스동아리에서 수차례 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어 오기도 했다. 그는 “아침이슬처럼 촉촉이 몸에 춤이 베여 잘 할 수 있는 거 같다”며 “4개월 연습으로 상을 많이 타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노인종합복지관에 편견을 가지고 다가오지 못하는 주변사람들에게 그는 “봉사활동을 통해 2배의 기쁨을 얻으면 내가 즐겁다”며 “그로 인해 내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고, 건강이 따라준다”고 전했다. 이어 “봉사활동은 운동이 되기 때문”라고 말했다.

“내가 살아있는 한 복지관에서의 봉사활동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노후는 인생을 마무리하는 단계가 아니라 제2의 인생이 시작되는 시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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