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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청산면 공용버스터미널 앞에서 40년째 박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약사 박명식(지체장애 3급,67)씨.

박씨는 14살 때 급성 화농성 관절염으로 지체장애 3급의 판정을 받았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그는 왼팔과 두 다리를 쓸 수 없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부모님까지 일찍 여의는 아픔을 겪었다. “앞이 캄캄했죠.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억울하기도 하고 그때는 모든 게 다 화가 나고 억울하다는 생각뿐이었어요.”

하지만 박씨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긍정적으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 혹은 후배들을 가르쳐 생활할 수 있었다. “다행히 공부를 잘해서 친구들이나 후배들을 가르칠 실력이 됐어요. 공부를 가르치면서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많이 도움이 됐고 힘든 시기에 저에게 큰 용기와 힘을 준 것 같아요. 아마 이 친구들이 없었다면 제가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자신과 같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이나 가난한 이웃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충북대 약대를 입학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꼭 약사가 되리라’ 자신과 약속한 그는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에 충실했다.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물론 장학금을 받기는 했지만 생활비며 기타 부수적으로 써야하는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두 가지 일을 병행해야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우선 몸도 피곤하고...”

1970년, 노력의 결실이 이뤄졌다. 바로 자신의 이름으로 고향인 청산면에서 약국을 개업한 것. 그는 시내버스 주차장 앞에 있는 약국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주민들로부터 동네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들을 수 있었다. “약국에 오는 주민들로부터 어려운 환경에 있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편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쌀 등의 생필품을 몰래 전해주기도 하고, 그 때부터 본격적인 선행을 베풀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또한 박씨는 1978년 ‘충효장학회’를 설립해,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 부모에게 효도하며 성실하게 맡은 바를 충실히 하는 중·고등학생을 뽑아 매년 10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으며, 옥천군장애인연합회 청명장학회 회장으로 장애인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 외에도 그는 2003년 장애어린이들을 위해 매일 만원씩 32년을 모은 1억을 청명장학회에 내놓아 주위를 감동하게 만들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변변한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영구 장애가 된 처지가 한이 됐어요. 그래서 장애어린이들을 돕고 싶었을 뿐, 비록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불우 장애어린들에게 희망을 주는 불시가 되길 바라요.”

이런 노력과 수고로 박씨는 지난 2004년에는 청룡봉사상, 2006년에는 장애인의 날 유공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부끄럽다”며 “아이들에게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외에는 바랄 게 없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미래의 주춧돌인 아이들이 걱정 없이 공부하는 게 소원이라며 장애·비장애어린이들 또한 사회의 편견에서 벗어나 동등하게 제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장애인이라고 해서 노력해서 안 될 것은 없다”며 “장애는 남들 보다 조금 불편한 것 뿐 어떤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많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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