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장애인 방송접근권, 규제일몰제 적용 철회되어야 한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

어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규제일몰제 확대 도입'에 대한 방안이 논의되었다. 규제일몰제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법적 효력이 자동으로 상실되거나 규제를 지속해야 할지를 의무적으로 재검토하는 제도이다. 이날 회의에서 국민생활에 파급효과가 큰 1,500건 가운데 올해는 경제적 규제 1000여건, 내년에는 사회적 규제 500여건으로 정했다.

문제는 규제일몰 대상으로 보건복지가족부 소관 법령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가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규제일몰제에 포함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은 엄밀히 말하여 제21조 제3항으로 장애인의 방송접근을 위하여 방송사업자가 자막, 수화, 화면해설 등 제공을 의무화 하는 내용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2007년에 만들어져 지난해 4월부터 시행한 법률로 시행 1년이 채 안 된다. 그리고 법 제21조 제3항은 현실적인 법률의 시행을 위하여 현재 법 개정안이 국회 내에서 발의된 상태라 앞으로 많은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사항이다. 그럼에도 이 법률의 내용을 규제일몰로 몰고 가는 것은 방송사업자들의 등살에 떠밀려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방기하는 것은 아닌지, 방송사업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청각장애인의 방송 시청을 위한 지상파방송사의 자막방송 비율은 2007년 이후 급격히 늘어 이제는 평균 90%를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의 방송시청을 지원하기 위한 수화통역방송과 화면해설방송의 경우는 지상파 방송사 평균 6%내외에 불과하다. 지상파방송사의 자막방송이 평균 4~50% 내외에 머물러 있다가 90%대까지 급격히 늘어난 이유는 방송사의 자발적인 노력이라기보다는 방송발전기금(현 방송통신발전기금)의 지원 덕분이다. 장애인 방송서비스 확대를 위하여 방송사업자에게 지원되는 방송발전기금은 지난해만 해도 30억이다. 하지만 수화통역방송과 화면해설방송 실시 비율은 여전히 한 자리 숫자다.

지상파 방송의 경우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케이블이나 위성방송의 경우는 몇 개의 공익채널과 보도채널을 제외하면 장애인의 시청을 위한 서비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통신의 융합을 통해 경제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며 첫 단추를 끼운 IPTV에 마저 장애인들이 외면을 받고 있다. IPTV가 지난 해 실시되었지만 아직까지 장애인의 시청을 위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장애인들의 IPTV에 대한 접근은 방송물만이 아니라 데이터방송 등 부가서비스에 대한 접근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장애인의 방송접근권 지원을 축소 또는 폐지하여야 할 과도한 규제로 분류한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장애인의 방송접근권이 여기까지 온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 그동안 보건복지가족부(구 보건복지부)나 방송통신위원회(구 방송위원회)가 장애인의 방송접근 문제를 단기적인 대응 수준에 머물러 중장기 계획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화통역방송의 경우 1990년대 중반 KBS에서 시작되어 15여년이 되고 있다. 자막방송은 지난 1999년 2월 MBC를 시작으로 실시되어 10년째를 맞는다. 화면해설방송도 2001년에 정규프로그램에 편성되었으니 올해로 8년째다. 방송사의 장애인의 방송접근 근거는 지난 1999년과 2002년 방송법 개정 당시 이미 만들어졌다. 장애인복지법에서도 1999년 개정당시 관련 내용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구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장애인 방송접근에 대한 어떠한 정책도 내놓지 못했다. 방송정책을 관장하는 구 방송위원회도 장애인의 방송접근 정책마련에 미온적이었으며, 2005년을 기점으로 장애인들이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사회 여론화 되자 그때야 방송발전기금을 투여하는 등 단기적인 정책을 세웠다. 방송발전기금 지원도 지상파방송을 중심으로 지원하여 정책 지원이 필요한 민영방송에 대한 불만을 키웠다.

7여년 가까이 진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과정에 방송접근 문제가 대두되었지만 구 방송위원회는 이를 외면했다. 그러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고 시행령제정을 눈앞에 둔 2007년 연말에 와서야 방송협회 등 사업자들이 반발한다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아니 오히려 방송협회 등 방송사업자들을 옹호하는 태도까지 보였다.

둘째, 장애인의 방송접근 지원에 대한 평가와 개선의 노력이 부족했다. 앞서 거론한 방송발전기금의 경우는 지상파를 중심으로 지원되어 왔다. KBS나 EBS의 경우는 공영방송이다. MBC의 경우도 공영방송으로 분류를 하고 있어 장애인의 접근에 필요한 예산은 기본적으로 방송사들의 출연해야 한다. 정작 방송발전기금이 필요한 곳은 민영방송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방송위원회는 민영방송에 대한 지원이 미온적으로 대응해 방송사들이 장애인의 접근 문제를 과도한 규제로 인식하게 하는 원인으로 남게 되었다.

자막수신장치의 경우도 매우 안이한 대응만 해왔다. 미국으로 수출하는 우리나라의 텔레비전 수상기의 경우 자막을 출력할 수 있는 기능을 내장하였음에도 구 방송위원회는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막방송이 실시된 지 8여년이 넘게 이를 방치하였다. 그러면서 대안도 없이 뽑아먹기 쉬운 곶감처럼 방송발전기금을 매년 6억 원 이상 자막수신기를 보급하는데 사용해 왔다. 자막방송을 송출하는 속기시장 또한 독과점 구도를 묵인함으로써 기술개발이나 단가절감 등을 시도하지 않아 자막방송의 실수요자인 청각장애인들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간접적인 손해를 보고 있다.

어제 열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규제일몰제 확대에 대하여 ‘대한민국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논리라면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국민의 권리는, 소외계층의 인권쯤은 축소되거나 폐지가 되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된다. 하지만 돌이켜 보라. 국민들의 권리를 희생하면서 국가가 발전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장애인의 방송접근권은 국민이면 누구나 누릴 권리가 있는 기본권이다. 이것을 망각하면 안 된다.

청와대와 정부가 장애인을 거치적거리는 대상이 아닌 국민의 한사람으로 바라본다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를 즉각 규제일몰제에서 삭제하여야 한다. 그리고 방송업무는 소관이 아니라며 장애인의 권리를 도외시한 보건복지가족부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규제일몰정책에서 빼내지 못한 실책에 대하여 장애인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도 구 방송위원회의 구태의연한 자세 때문에 장애인들의 권리가 축소될 위기에 놓인 상황에 대해 반성을 하여야 하며, 장애인의 방송접근과 참여에 대한 중장기적인 정책마련과 방송과 정보통신의 융합 정책마련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건복지가족부가 현재 추진 중인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에 규제일몰제를 빌미로 장애인의 권리를 축소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시작된 지 1년도 안된 만큼 더 이상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과도란 규제라는 논리로 바라보거나 이러한 논리를 확대해 나가면 안 된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되었든, 장애인들이 7여년의 피땀 어린 투쟁의 과정을 만들어진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훼손하려 든다면 방송통신위원회가 되었든 장애인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2009년 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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