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정희선씨와 그의 활동보조인이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2009 welfarenews
▲ 지난 2월, 정희선씨와 그의 활동보조인이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2009 welfarenews

서울 성북구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정희선(사진왼쪽·31·뇌병변장애 1급)씨. 그는 지난해 사회복지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정씨의 실제나이는 32살, 5살 때 ‘놀러가자’는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어느 강아지 집 앞에 혼자 남게 된 이후부터 26여년간 무려 31개소의 시설을 돌며 생활했다.

그는 그 어떤 시설도 좋은 곳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시설 내에서의 폭력과 성폭력, 장애수당 횡령 및 그밖에 인권침해가 그 이유다.

정씨가 대전에 있는 ㄱ시설에서 생활할 때였다.
정씨가 화장실 갈 때마다 시설직원이 바가지로 정씨의 머리를 때렸다. 이유는 정씨가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간다는 것.
그때부터 30살 때까지 정씨는 다른 시설에서도 크고 작은 폭력에 시달렸다.

“23살 때 ㄴ시설에서 50대 남자가 가까이 오더니 허벅지를 만지는 거예요. 하지 말라고 했지만 계속됐고... 성폭력을 당했어요. 10번씩이나... 임신을 했거든요. 시설측에서 막아야 되는데 안 막더라고요. 네가 잘못했으니까 부모님한테는 이야기 하지 말라고... 그래서 저는 이야기해서 법으로 갈 거라고 말했는데, 각목으로 맞았어요. 이야기하지 말라고.”

ㄴ시설측은 낙태수술 동의에 필요한 보호자 서명을 받기 위해, 정씨 어머니에게 ‘생리 때문에 힘드니까 수술하게 된다’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수술 후, 정씨는 실밥을 채 풀기도 전에 또 다시 성폭력을 당했다. 그때도 ㄴ시설측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ㄴ시설장은 정씨에게 ‘그 오빠(가해자)에게 시집가면 너는 팔자가 편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정씨는 우울증을 앓았다. 시설측이 개인 휴대폰 소지를 금하고 있어, 외부로 연락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달에 한 번뿐. 정씨는 어머니에게 연락해 시설 내에서 당한 일들을 말했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쉽게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죽으려고 몇 번을 시도했는지 몰라요. 아세톤도 마실 뻔 했고... 한 번은 수면제를 먹은 적이 있어요. 병원에 갔는데, 시설측에서 입원비가 아깝다고 나오라는 거예요. 의사가 안 된다고 하는데도, ‘놔두면 깨어난다’면서요.”

성폭력 사건이 있은 후, 정씨는 아버지의 뜻에 의해 ㄴ시설에서 나와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게 됐다. 정씨가 있으면 가정불화로 집을 떠난 어머니가 돌아올 것이라는 정씨 아버지의 기대 때문이었다. 정씨는 “그렇지 않았다면 시설에서 도망가지도 못한다. 그런 아버지의 행동도 고맙다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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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감도 잠시, 정씨는 서울에 있는 ㄷ시설에 들어가게 됐다. ㄷ시설장인 목사는 정씨에게 1만원씩 ‘빌려 달라’며 정씨가 입소하기 전에 받은 세뱃돈 20만원을 조금씩 갈취해갔다.
목사가 정씨의 배위에 눕고, 목사의 부인이 정씨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폭력과 인권침해도 있었다.

정씨는 31번째이자 마지막인 인천의 ㄹ시설 역시 ‘끔찍했다’고 표현했다. 당시 정씨의 나이는 26살. 공부가 하고 싶었던 정씨는 ‘공부하게 해주면 입도 뻥긋 안 하겠다’는 조건 하에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보고 시설에 돌아갔어요. 전동휠체어에서 방바닥으로 내려야 되잖아요. 시설직원 한 명은 다리를 잡고, 다른 한 명은 상체를 잡고 내리는데... 상체를 잡고 있던 직원이 가슴에 손을 댄 채 들어 올리는 거예요. 시설장인 목사에게 ‘무서워서 못 나가겠다’고 이야기했더니, ‘그거 갖고 뭘 그래! 그럼 나갈 생각도 하지 말고 집에만 있어! 알았어?’하면서 나갔어요. 저도 분명히 여자거든요. 그거는 아니거든요. 입장 바꿔서 생각해도 기분 나쁘잖아요.”

그런 와중에도 정씨의 간절한 소망은 빛을 발했다. 검정고시에 합격한 것. 그리고 동시에 정씨에게 더 큰 슬픔이 닥쳤다. 정씨의 아버지는 자살로 눈을 감았고, 시설측의 태도는 더 뻔뻔해졌다.

정씨는 계속해서 ㄹ시설측에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설장은 ‘학교 다니면 옷 입고 해야 되는데 누가하느냐, 너는 학교가면 안 된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정씨는 공부에 대한 꿈을 접지 않았다. 그는 민들레장애인야간학교(이하 민들레야학)를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됐고, 민들레야학 박길연 교장으로부터 ‘시설에서 나올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정씨의 대답은 당연히 ‘네’였다.

정씨는 박 교장이 일러준 대로 몰래 짐을 싸기 시작했다. 시설직원 외에도 시설 내에서 장애인을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 정씨가 어떤 행동을 하던 시설장에게 보고하기 때문에 쉽지 않았지만, 그는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를 나오는 한 여자에게 도움을 청해 짐을 싸는 데 성공했다. 어느 날 밤, 박 교장은 정씨를 데리고 시설을 떠났다. 시설장의 이별 선물은 ‘사람 한 명 채우면 된다’며 던지고 간 정씨의 통장이었다.

정씨는 사회복지시설 관리·감독체계에 대한 문제점을 꼬집었다.

“정기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감독을 나오긴 해요. 시설장이 관리·감독하는 사람들이 오기 전에 장애인들에게 입단속을 시켜요. 무조건 ‘네, 준다’고 대답하라고 그래요. 관리·감독하는 사람이 와서 ‘줘요?’하고 묻고, 장애인들이 ‘네, 줘요’하면 끝이에요. 장애인이 무슨 힘이 있겠어요? 관리·감독 나와서 1대1 상담을 하던가... 시설장 있는 데서 주냐고 물으면 누가 아니라고 해요. 그랬다가는 당장 시설장에게 찍혀서 협박 받는데. 관리·감독하러 오면서 시설측에 온다고 연락은 왜 줘요? 저는 이해가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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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지긋지긋한 시설에서의 삶을 마치고, 민들레야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박길연 교장선생님이 갑자기 자립생활을 하라는 거예요. 저는 공부도 하고 내 마음대로 하니까 민들레야학이 좋아서 안 간다고 그랬어요. 교장선생님이 시설에서 꺼내줬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하하... 사실 그때 공부만 하고 싶었지, 자립생활이 무엇인지 몰랐거든요. 시설에 있을 때 인권도 무엇인지 몰랐어요.”

정씨는 자립생활을 이해하고 나서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2007년 11월경 약 1년의 체험홈 생활을 거쳐, 지난 1월 드디어 정씨만의 보금자리가 생겼다.

대부분의 주택이 높은 턱과 많은 계단이 있어, 장애인의 이동 및 접근성이 떨어진다. 정씨는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므로, 이동과 접근이 용이한 집을 찾기란 더더욱 쉽지 않았다.

정씨는 교회 후원금과 어머니가 보태준 돈으로 현재 성북구에 위치한 턱없고 계단 없는 집을 마련했다.

“너무 좋아요. 나 혼자 다니잖아요. 나 혼자 가고 싶은 데 가고, 놀고 싶을 때 놀고.”

정씨는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동안의 고통은 모두 잊었다는 듯이 너무나도 밝은 표정이었다.

“예전에는 술을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던 아빠 때문에 판사가 꿈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꿈이 바뀌었어요. 사회복지사. 사회복지사가 되면 복지관, 시설에 가서 공부를 가르쳐주고 싶어요. 한글, 영어... 무조건 찾아가서 공부가 돼 있던 안 됐던 내가 판단한다고... 뭐든 가르쳐주고 싶어요.”

현재 정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들장애인야간학교를 다니면서 공부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서 월·금요일 근육을 풀어주는 물리치료도 받고 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시설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당해야 했던 정희선씨.
이제 막 자립생활로 ‘인간다운 삶’을 시작하려고 하지만, 아직 미비한 정부의 지원과 정책 등은 정씨를 또 다시 차별과 맞닥뜨리게 한다.

정씨의 월 정부보조금은 57만원. 관리비와 방값을 합한 37만원을 내고 나면, 실제로 정씨의 생활비는 20만원이다. 여기에 정부에서 제공하고 있는 활동보조서비스 초과금까지 지출대상이다.
정씨는 월 평균 230시간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살지 않아 주말에도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한 정씨에게, 정부에서 제공하고 있는 월 180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2월경 정씨와 동행했다. 그날은 비가 세차게 내렸다.
정씨는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오고 가는 과정에서 ‘장애인콜택시가 좀처럼 오지 않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먼저 장애인콜택시를 예약한 사람이 있었다. 정씨는 취소하고 버스를 타야할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장애인콜택시를 기다리기로 했다. 교통약자를 위한 특별교통수단 대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30여분이 지나 장애인콜택시가 도착했다. 치료를 목적으로 이용해서인지 생각보다 기다리는 시간은 짧은 편이었다.

정씨는 저녁식사거리를 사기 위해 대형마트로 향했다. 보통 정씨는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 때문에 직접 대형마트를 찾는 일은 흔치 않다.
여기저기 코너를 둘러보고 꼼꼼하게 필요한 것들을 고르기 2시간. 장보기를 마치고 나오자,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정씨는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궂은 날씨와 통증을 동반하는 물리치료로 지쳤을 법도한데, 정씨의 표정은 즐거워보였다.
정씨는 “방에만 있으면 갑갑한데, 이렇게 나오니 너무 좋다”고 말했다.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온 한 사람의 이야기. 시설확충만으로 장애인복지정책을 일관해서는 안 되며, 보다 더 구체적인 자립생활 지원이 고려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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