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약과 사회포럼'이라는 단체에서 우리나라 성인 1,041명을 대상으로 약 복용에 대한 실태조사를 했다. 결과를 보니, 조사대상자의 30%가 ‘영양제와 한약을 제외하고도 최근 2주 동안 약을 먹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 중 41%는 1년 이상, 27.5%는 3년 이상 약을 장기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나이가 든 분일수록 많은 종류의 약을 장기간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혈압 진단을 받아 혈압약을 먹다가 얼마 후에 고지혈증과 당뇨병이 생겨 당뇨약과 고지혈증약도 함께 먹게 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릎관절도 아프기 시작해서 글루코사민까지 먹게 되었네요. 여기에다 최근에는 너무 피곤하고 몸이 허한 것 같아 비타민제와 한약도 복용하고 있어요.”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 환자를 만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노인층의 80%이상은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다. 또한 노인병의 특징은 이러한 질환의 증상이 모호하고 뚜렷하지 않아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으로 만성적인 질환의 치료를 받는 노인들은 의사의 치료를 불신하게 되는 경향이 생긴다.

그래서 스스로 판단하여 약을 사게 되거나, 주변에서 떠도는 검증 안 된 민간의료속설에 의탁해 금전적, 정신적, 육체적 손상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와 같은 약물의 오용이나 남용으로 인해 부작용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이 약과 상관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부작용 증상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약을 사용하기도 한다.

노인들은 약을 많이 복용하게 되면 간과 신장의 기능저하로 불편한 증상을 겪게 된다. 심하면 간 독성이나 신장 독성이 나타날 수도 있다. 보통 우리가 먹는 약들은 간과 신장을 통해 해독되고 배설되게 되는데, 나이가 들수록 간과 신장의 기능을 포함한 신체대사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복용하는 약이 또 다른 병을 만드는 것이다.

약물의 오남용문제는 노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우리나라 국민의 의약품 사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1,000명중 33명이 매일 항생제를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OECD회원국가의 평균치 복용자 수 21명보다 월등히 높은 비율로, 약물남용이 우려될만한 수준이다.

우리 주변에는 항생제뿐 아니라 피부연고제, 안약, 소화제 심지어 각성제까지 자가 처방하여 남용하고 있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 사람들의 대부분이 약에 대한 잘못된 정보나 상식을 믿고 있고, 혹은 맹신하기까지 한다는 점에 있다.

약은 제대로 사용하면 건강과 생명 유지에 큰 도움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치명적인 독성이 생겨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 어떤 약이든 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무리 좋은 보약(補藥)이라도 적절히 사용하지 않는다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보통 보약(補藥) 처방에 들어가는 약재는 인체의 기운을 북돋우는 작용을 한다. 기운을 올리기 위해서는 기운을 만들 수 있는 근본이 튼튼해야 하는데, 이것을 한의학에서는 정(精)이라 표현한다. 이 정(精)을 보충해주고 튼튼하게 하는 약재는 대체로 속이 심하게 차거나, 비위장이 약해서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소화불량을 유발하고, 설사가 나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그래서 약을 쓸 경우에는 증상과 체질에 맞춰 쓰는 것이 원칙이다. 속이 차거나, 비위장이 약하거나, 기운이 잘 순환이 안 되는 사람이 단순히 피곤하다고 해서 한의사의 진단 없이 보약이라고 알려진 약재를 임의처방해서 복용하여, 그 부작용으로 다시 한의원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약물의 오남용은 이로 인한 사회 경제적 손실 측면을 논외로 하더라도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약물의 오남용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약은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처방에 따라 약사의 검증을 거쳐 조제된 약을 복약 지도대로 복용하면 크게 걱정할 것 없다. 그렇지 않고 의사나 약사의 지도 없이 마음대로 이 약, 저 약 혼합해 복용하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해 치명적 일수 있다.

또, 약을 처방받을 땐 반드시 의사나 약사에게 자신이 먹고 있는 약이나 지병 등을 얘기한 뒤 약을 처방·조제 받아야 한다. 더불어 많은 약을 복용해야 할 상황이라면 항상 자신의 약력(藥歷)을 한눈에 관리할 수 있도록 스스로 관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향한의원 돈암점 박정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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