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마다 다르겠지만 전직 국가원수는 퇴임이후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통해 사회통합과 외교력강화에 헌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들의 은퇴 후 모습은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다.

미국의 지미카터 대통령은 해비타트를 통해 지구촌의 집없는 사람들을 위해 집짓기 사업에 투신하고 있고, 빌 클링턴 대통령은 지난해 대북특사로 북한에 파견돼 억류되었던 미국 여기자 2명을 가족의 품으로 인도하는 등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국익과 자국민을 위한 왕성한 활동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존경심을 유지하고 있다.

참으로 부럽다.

그러나 군사독재나 권위주의 국가의 행정수반들의 은퇴 후 모습은 딴 판이다. 각종 부정부패와 인권유린 등의 혐의로 투옥과 연금생활을 하거나, 국외로 도피하여 도망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그들의 폭정은 존경받지 못하는 대통령상을 만들어 위대한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해 나라와 민족의 발전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악순환 그 자체임을 많이 보아왔다.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미국 전직대통령들의 사회참여와 달리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딴 판이다. 총과 군화발로 정권을 잡았던 전두환 전대통령은 복역 후 백담사에서 유배생활까지 해야 했고, 민주화운동으로 피해본 가족들과 시민들의 비난으로 인해 마음편이 대로를 활보하지도 못하고 있다. 또 노무현 전대통령은 자살로서 생을 마감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그런데 2일 국립현충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에 누군가 불을 질러 사법당국이 수사에 나섰고, 유가족에게는 당혹감과 슬픔을 다시 안겨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가 지도자의 묘역을 지키지 못해 일부가 불에 탔다는 것은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싸지른 것과 다름없다.

물론 김전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 국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를 대표했던 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하는 만행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분노를 감출 도리가 없다. 이번 사건이 단순 실화가 아닌 방화사건이라면 묘역관리를 담당하는 정부도 당혹스러울 뿐 아니라 지역감정이 재현되지 않을 지 우려된다.

우리에게는 조상의 은덕을 높이 받드는 정서가 뿌리깊다. 그래서 음택인 조상 묘에 대한 집착이 국토를 공동묘지화 될 만큼 문제도 안고 있다. 그러나 이번 방화사건은 단순히 묘지의 양적 문제가 아니라 국민정서에 방화해 충격이 크다. 관련자 색출과 엄중한 책임으로도 전직대통령에 대한 예우심은 이미 깨진 것이다.

최근 모 재벌가의 조상묘가 도굴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재벌가마다 관리인을 배치하거나, CCTV를 설치하는 등 조상묘지키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한다. 또 고 최진실씨의 유해가 도난당해 국민적 안타까움과 범행자에 대한 지탄이 아직도 우리기억에 생생한데, 이제는 전직 대통령의 묘역훼손을 걱정할 만큼 우리는 흉흉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 같은 테러가 재발되지 않도록 관계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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