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길로 꾸준히, 열심히, 그리고 도전하길!
한 길로 꾸준히, 열심히, 그리고 도전하길!
  • 최지희
  • 승인 2010.10.2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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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welfarenews
▲ ⓒ2010 welfarenews

장애인 복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보니까, 장애인들이 시혜의 대상이기보다는, 그들의 자립을 위한 일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한 뜻이 있는 장애인 120여명을 회원으로 조직해, 서울특별시로부터 사단법인단체 한국장애인문화인쇄협회를 설립했습니다.
한국장애인문화인쇄협회에서는 1·2급 장애인들을 규합해 인쇄기술을 양성하는데, 중증장애인생산품우선구매특별법에 근거해 인쇄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시골에 화롯불을 놔두었습니다. 제가 걸음마를 배우는 무렵, 화롯불에 걸려 넘어지면서 왼손을 짚었습니다.
당시 의료시설이 빈약해서, 왼손손가락이 결손 됐죠.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 당시에는 또래들의 놀림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었고, 월요일 전교생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서 용의 검사를 받을 때 손톱을 깎았는지 보는데 손을 내밀어 보이기 싫었습니다. 중학교 다닐 적에는 체력 검사할 때 ‘턱걸이’같은 것을 할 수 없는 것이 마음의 상처가 됐었습니다.

옛날에는 다들 생활이 어려웠고, 저 역시 팔남매로 학교를 다 못 다녀 중학교가 최종 학력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마을에 있는 서당에 가서 한문 공부를 1년 정도 한 뒤, 17살에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체력이 되지 않아 서울에서 뭔가를 찾아보려고 무작정 올라간 것이죠.
외사촌이 길음동에서 인쇄 사업을 하고 있는데, 외사촌에게 가서 일을 도와주다가 취직했습니다. 그곳에서 인쇄 기술을 배울 때 학업의 연장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는 무보수로 일하는 인쇄소가 많았습니다. 저도 가정형편과 장래를 생각해서 외사촌과 합의했습니다. 낮에는 일을 해주고, 저녁에는 무보수니까 개인 시간을 달라고 했죠.

1967년도부터 1969년도까지 청계천에서 책장사를 했습니다. 야간 노점상이라고 해서 손수레에 책을 놓고 대여해주는 일을 했습니다.
중국의 무협영화가 한창 인기 있을 때라, 다행히 관련 책으로 약간의 자본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인쇄소를 이뤘죠. 제 나이 스무 살 때 지금의 오류동에서 점포를 얻어 인쇄 기계를 사고, 자영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주로 명함, 청첩장, 계산서, 책자, 신문 등을 만들었습니다. 현대에서는 이 모든 것들을 ‘전자식’으로 하지만, 그때는 직접 종이에 작업하기 때문에 인쇄물의 인기가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직원 30여명을 둘 수 있을 정도로 재미가 있었죠.

제 생활 철학은 ‘이 세상에 죽었다 태어난 사람 같지만, 다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인쇄업을 하자’입니다. 40년간 다른 길을 가지 않고 한 가지만 열심히 하자는 신념으로 임했고, 그 결과 좋은 인쇄물이 나와서 이 일로 40년을 잘 살아 온 것 같습니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인쇄 제품을 만드는 데 지장은 없지 않습니까. 똑같은 종이에 똑같은 잉크로 하기 때문에 저는 그런 극기 재활을 주변의 장애인에게 이야기합니다.

한국장애인문화인쇄협회에서도 6명의 장애인이 일하고 있고, 제가 하는 개인 인쇄소에서는 서체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좀 남다른 사업을 해야지만 생존경쟁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누구나 할 것입니다. 제가 회사의 상호, 로고, 마크 등 서체를 개발하는데 컴퓨터로 하는 글씨체를 벗어나 특수하게 제작하기 때문에 ‘보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하는 긍지도 있습니다.

원래 가난한 곳에서 태어났고, 인쇄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학업의 연장으로 놓치지 않고 열심히 배웠고, 청계천에서 책장사를 할 때도 어려운 고난을 견뎠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라’는 속담이 있듯이 실제 경험해봤는데, 어려울 때마다 과거를 되짚어보고 참고 견뎌내다 보니까 오늘에 이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가 가야할 길은 끝이 없지만, 직업재활 만큼은 잘해서 장애인이 갈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싶습니다. 1·2급 장애인들이 월급을 갖고 가정을 꾸릴 때 보람을 느낍니다.

중증장애인생산품우선구매특별법으로 관공서 일을 주로 하고 있는데, 저희들이 실사를 받아 허가를 얻었기 때문에 관공서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규모가 커지면 ‘인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DM 발송 같은 일을 하게 되면, 더 많은 장애인을 채용할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서체를 개발할 것입니다.

인쇄 사업이 잘 되다가도 자칫 잘못하면 하루아침에 잘못될 수도 있는 사업이라고도 합니다. 저는 인쇄 사업을 천직으로 삼고 열심히 한다면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연구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