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인권연대 등 ‘2010년, 미신고장애인시설 인권실태 나눔-미신고시설, 끝나지 않은 이야기’ 개최

“처음 들어갔을 때 방바닥이 흙으로 돼 있었습니다. 장판도 없었죠. 방 하나 부엌 하나에 교회 하나 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루 종일 했던 일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예배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곳에서 밖에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중략)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하고 예배하는 것도, 먹을 것을 자유롭게 먹을 수 없는 것, 한 방에서 수십 명이 함께 생활하는 것도 참을 수 있었지만, 시설에 살면서 갑갑함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20년 동안 시설에 살면서 나는 단체로 나가는 것 외에 외출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미신고시설에 살면서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한 장애인시설에서 생활한 김남옥 씨의 이야기-

 

‘2010년, 미신고장애인시설 인권실태 나눔-미신고시설,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지난 3일 서울시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보건복지부와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 사회복지시설생활인인권확보를위한연대회의(이하 시설인권연대)와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등은 지난해 5월~11월 말까지 전국의 장애인 미신고생활시설 22개소를 대상으로 한 민간합동 인권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이날 보고대회는 지난 2월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 주관으로 열린 ‘장애인 미인가 시설 인권 점검단 활동 보고대회’에 이어 조사과정서 발생했던 문제점과 실태를 점검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 ⓒ최지희 기자
▲ ⓒ최지희 기자

종교시설 가장한 미신고장애인생활시설 문제 ‘심각’

시설인권연대는 “이번 인권실태조사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된 조사대상 시설은 소위 ‘종교시설’을 가장한 채 장애인을 상대로 사회복지사업을 영위한 시설이었다.”며 “시설장들의 저항이 극심해 조사 자체가 불가능한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이정선 의원실과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에 대한 청탁과 압력, 조사원에 대한 폭언과 폭력, 거주인에 대한 통제와 위협으로 조사 중단과 방해를 일삼았다.”고 전했다.

시설인권연대 조백기 사무국장은 지방자치단체와 복지부가 미신고시설의 실제 거주인원에 대한 현황도 확인하지 못하는 등 거주인의 소재 및 수가 명확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조 사무국장은 “지자체를 통해 복지부가 제시한 자료에서는 미신고시설의 수가 22개였으나, 조사 당시 2개의 시설이 개인운영신고시설로 전환했고 1개의 시설이 폐쇄된 상황이었다.”며 “복지부의 자료에 표기된 거주인의 수는 734명이었으나, 실제 지자체와 미신고시설을 통해 받은 명단의 거주인 수는 771명이었다. 이중 미신고시설에서 명단을 갖고 있지만 시설이나 병원에서도 확인되지 않은 사람은 166명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들의 소재는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이 외 167명은 미신고시설이 아닌 정신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미신고시설에서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추가로 확인된 거주인도 있었다.”고 밝혔다.

조 사무국장은 “경기도 고양시 모 시설의 경우 입원자가 10명이라고 밝혔지만, 병원을 통해 소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거주인이 수년 전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며 “미신고시설에서 인근 다른 시설에 임시 입소해 생활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으나 지자체는 이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점 등은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발생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암시하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인권침해 지적했더니 ‘지옥에 떨어진다’고?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여준민 상임활동가는 종교시설을 가장한 장애인시설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여 상임활동가는 “조사한 시설 대부분이 종교시설이라고 주장했는데, 이유는 복지부 관할이 아니며, 사회복지사업법에 적용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종교시설이니까 문화체육관광부의 관할과 해당 법에 의해 운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라’, ‘종교 공동체를 파괴하지 말라’고 담당공무원과 조사원들의 조사를 거부하고 방해했다.”고 전했다.

그는 “하루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아침·점심·저녁 예배로 짜인 것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종교시설이니까 예배 보는 것은 당연하다’, ‘예배가 치료다’, ‘찬송가를 부르며 박수 치는 게 얼마나 치료 효과가 큰지 아느냐’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며 “어이없어 하며 반박하자 ‘당신 이름이 뭐냐, 끝까지 기억할 거다’, ‘지옥에 떨어질 거다’, ‘회개하라’ 등 저주를 받기도 했다.”며 황당함을 표했다.

여 상임활동가는 “시설 관계자들은 ‘24시간 같이 있어봤느냐,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며 착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항변했지만, 시설 측이 거주인을 대하는 태도는 대상화, 어린아이 취급, 무시, 윽박, 억압, 폭력, 징벌, 장치, 정서적·물리적 학대였다.”고 비판했다.

그는 “인터뷰를 시도하는 조사원들에게 ‘바보에게 뭐 물어보느냐’며 반문하거나, ‘이불에다 똥이나 싸고, 개·돼지만도 못하다’고 비하하기도 했다. 이름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라고 부르는 것이 다반사였다. 손목이 계속 묶여있던 거주인이 있어 물어보니 ‘밤낮으로 자위를 계속하니 어떻게 하느냐. 다른 사람들 성기도 만진다, 묶어놓을 수밖에 없다’고 당연한 듯 대답했다. 조사원들이 들어갔는데도 전혀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결박이 얼마나 중대한 신체적 자유의 침해에 해당하는지 전혀 의식이 없었다.”고 말했다.

여 상임활동가에 따르면 시설 안에서의 폭력은 일상적이었다. 예배에 늦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일명 ‘정신봉’이라는 것으로 맞는다는 증언이 있었다는 것. 성추행 및 성폭력 또한 많은 진술 속에서 드러났으나, 사건 발생 당시 시설장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감금·약물 투여·다른 시설 혹은 정신병원으로 보내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전했다.

종교시설이라고 주장하는 곳 역시 운영비는 거주인들의 수급비로 채우기는 마찬가지였다.

여 상임활동가는 “시설장은 한 달에 한 번 거주인 명의로 들어오는 수급비를 일괄적으로 관리하고 있었는데, 입금되자마자 시설관리인 명의로 된 하나의 통장에 곧바로 입금해 관리하고 있었다.”며 “서류에 유급직원이라고 돼 있는 사람들은 가족이거나 친인척 혹은 교회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개탄했다.

그는 “한 시설은 티가 날 정도로 새 이불이었는데, 서류를 조사하며 영수증을 보니 조사 바로 전날 조사 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괄적으로 구입한 것이었다. 창고로 쓰이는 비닐하우스에는 낡고 냄새나는 이불이 나의 키 두 배 높이로 쌓여 비닐에 덮여있었다. 남녀 불문하고 모두 빡빡 깎은 머리모양에 매우 낡고 모두 똑같은 체육복차림이었는데, 더욱 난감했던 것은 조사당일 택배로 새 옷들이 배달된 것이다. 게다가 배달된 옷 모두 같은 색 같은 모양이었다.”고 당시 웃지 못 할 상황을 설명했다.

여 상임활동가는 “게다가 세제, 라면, 휴지, 심지어는 전동휠체어까지 후원물품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쓰이지 않고 창고에 잔뜩 쌓여있었다. 라면은 유통기한이 지난 것도 있었고, 전동휠체어는 쓸 사람이 있어도 주지 않고 방안을 기어 다니게 했다.”고 말했다.

여 상임활동가는 “어떤 시설은 현 원장의 어머니가 미신고시설을 운영하다 2002년 조건부 신고를 한 뒤 2007년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하면서 딸에게 시설을 물려줬다. 거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미신고시설, 개인운영신고시설, 법인시설, 뭐 하나 다를 게 없다. 시설은 그 자체로 격리와 다름없고, 집단의 이익이 우선되고, 관리의 입장에서 통제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게 시설이 가진 속성임을 재확인했다.”고 시설의 실태를 전했다.

▲ 모 미신고장애인생활시설 내부. 4명의 생활인이 10여년간 생활해온 공간이었으나 기본적인 생활집기는 물론 칫솔 등을 제외한 개인용품이 전혀없었다 ⓒ전진호 기자
▲ 모 미신고장애인생활시설 내부. 4명의 생활인이 10여년간 생활해온 공간이었으나 기본적인 생활집기는 물론 칫솔 등을 제외한 개인용품이 전혀없었다 ⓒ전진호 기자

여 상임활동가는 미신고시설에 존재하는 ‘중간관리자’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갔다. 중간관리자는 거주인 중 몸이 덜 불편한 사람으로 다른 거주인들을 통제하는 게 주된 역할이다.

여 상임활동가에 따르면 중간관리자는 용돈 몇 만 원을 받으며 술과 담배를 할 수 있는 특권 아닌 특권을 갖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결혼을 요구해 방을 따로 쓰는 경우도 있었다. 또 밖에서 잠금장치가 돼 있는 구조에서 유일하게 열쇠를 갖고 다닐 수 있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게는 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 폭언·폭행·감금하고 있었다.

여 상임활동가는 “중간관리자라고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처음에는 조사원들을 경계하며 거주인들에게 ‘아무 것도 말하지 마’라고 윽박지르다가도, 조사가 원활하게 진행되거나 조사원과 시설장의 마찰에서 조사원이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나도 다른 곳에 가고 싶다’고 고백하는 등 태도의 변화를 보였다.”며 씁쓸함을 표했다.

 

미신고장애인생활시설 문제, 지역사회가 바뀌어야 해결된다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부설 가족지원센터 박문희 센터장은 장애인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지역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센터장은 “인권실태조사에 참여해서 5~6곳의 시설을 조사했는데, 겉모습은 크고 좋은 시설과 작고 열악한 시설 등 다양했다. 그러나 시설 안으로 들어가면 모두 똑같았다.”고 확고하게 말했다.

이어 “나와 면담을 했던 김남옥 씨가 있었던 곳은 나지막한 교회 건물에 푸른 잔디가 깔려있는 앞마당을 갖고 있었다.”며 “내가 조사를 나가지 않았다면 ‘저 교회 참 예쁘다, 그래도 저기 있는 사람은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설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남옥 씨가 있었던 곳도 마찬가지였다.”고 주장했다.

박 센터장은 “남옥 씨에게 ‘바깥에 나오면 전동휠체어도 있고 중증장애인활동보조도 있기 때문에 충분히 자립해서 살 수 있다’고 말했지만 믿지 않았다. 전원조치 될 때도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땀을 흘리며 굉장히 불안해했다. 누군가가 남옥 씨에게 ‘자립생활’에 대해 말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설에서 사는 사람들이 바깥 환경들을 안다면 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싶어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시설에서는 지역과의 소통이 없기 때문에 자립생활이 무엇인지, 수급자가 무엇인지 몰라 그나마 시설이 먹고 잘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인 내 아이가 어렸을 때는 ‘내가 능력이 없어져서 보호해줄 수 없어지면 시설에라도 보내야지’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시설을 알고 난 뒤 내 아이가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무엇을 바꿔야 되는지 고민하고 있다. 어떤 사회적·정책적 지원이 이뤄져야 되는지, 국민들의 인식을 어떻게 개선해나가야 되는지 말이다.”라고 밝혔다.

 

시설과 정신병원의 관계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미신고시설의 ‘최종 목표’는 정신병원을 설립·운영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왜 하필 정신병원일까.

평화주민사랑방 문태성 활동가는 사회복지사 및 정신병원 원장으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미신고시설과 정신병원의 관계를 파헤쳤다.

문 활동가는 “20여 년 전 내가 근무했던 한 시설에서 여성장애인이 직원에게 담배 한 대를 줄 것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심하게 맞아 방치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그 시설 규모는 복지부에서 30억 원~50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았을 정도였는데, 시설장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동남아시아에서 이모작으로 재배한 쌀로 밥을 지어 먹었다. 알고 보니 그 쌀은 식용이 아니라 가축 및 공업용으로 수입되는 것이었다. 어쨌든 시설장은 세계인권상까지 받았고, 상금으로 정신병원을 차렸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시설에서 인권침해 및 비리가 드러나면 해당관청에서는 거주인들을 정신병원으로 입원시킨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관심이 없어지면 다시 시설로 복귀시키는 순환의 고리를 갖고 있다. 정신병원은 입원이 가장 편리한 곳이며, 정신과 의사가 법적으로 최고의 지위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소송을 제기해도 정신과 진단을 이길 수 있는 소송이 우리나라에는 없다.”고 덧붙였다.

문 활동가는 “한 남자의 부인이 다른 남자를 사귀어서 의도적으로 남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재산을 빼돌린 사례가 있다. 남편이 탈출해서 여러 병원에서 정신질환이 없다는 진단서를 받아 소송을 걸었지만, 대법원에서는 ‘입원시킨 의사의 진단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문 활동가는 “의사가 자신의 지분이나 자금 없이도 큰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은 ‘병상 수에 최소한의 수급자를 깔아 놓는 것’이다. 시설에서는 인권침해 및 비리가 드러났을 때 병원의 도움을 받고, 병원은 거주인의 입원기간동안 수가를 청구한다. 서로 좋은 관계를 갖기 위한 노력과 투자를 하고 있다.”며 “최근 정신병원들은 정신보건 분야의 사회복귀시설 설치 운영에 이어 내과, 외과, 치과 등 다른 진료과목을 늘리고 있다. 또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에 맞춰 대부분 노인장기요양기관 및 노인병동을 병설해 운영하는 추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정신질환이 없어도 입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문 활동가는 “모든 것은 결국 ‘재원의 문제’다. 사람들이 많이 입소해야 후원을 받고,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손을 벌릴 수 있고, 명예를 세우고 품위 유지를 할 수 있다. 결국 장애인을 비롯한 소외계층은 재원, 명예, 지위를 위해 이용하는 것뿐.”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 대부분의 미신고장애인생활시설들은 푸드뱅크 음식을 받아와 생활인들에게 먹이고 있었다. ⓒ전진호 기자
▲ 대부분의 미신고장애인생활시설들은 푸드뱅크 음식을 받아와 생활인들에게 먹이고 있었다. ⓒ전진호 기자

“국가가 떠민 당신의 ‘선행’, 너무 값싸다”

수유너머R 안티고네 연구원은 푸드뱅크와 자원봉사에 숨어있는 부정적인 이면을 들여다봤다.

1995년부터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된 쓰레기 종량제와 1997~8년 IMF로 인한 사회빈곤층 증가, 1997년 환경부의 음식물재활용 사업은 푸드뱅크 사업의 확장과 교묘하게 맞물려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안티고네 연구원은 “푸드뱅크의 도입과 실행에는 사회빈곤층 부양 외에 ‘자원절약 효과’와 ‘환경보호 효과’라는 다른 면모가 있다. 기탁자가 보유하고 있는 ‘잉여음식’을 푸드뱅크 이용자에게 전달함으로써 빈곤층을 구제함과 동시에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따라서 자원을 보호하며, 음식물 쓰레기가 줄어들기 때문에 자연스레 환경이 보호된다는 일석사조의 논리를 취하고 있다. 즉 푸드뱅크의 미사여구들을 빼고 보면, 음식물 처리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먹여 없애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안티고네 연구원은 “가난하고 영세한 시설에 사는 사람들이 배고프다면 푸드뱅크처럼 누군가가 나눠주는 음식을 선택권 없이 받아먹는 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 푸드뱅크가 ‘사회빈곤층·소외계층은 푸드뱅크와 같은 것을 먹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틀에 박힌 심상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배제의 폭력으로 작동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더욱이 푸드뱅크는 시설에서 거주인의 식비를 아껴주는 역할을 하는 등 악용되고 있다는 점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는 자원봉사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일깨울 것을 당부했다. 자원봉사자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는다는 시민적 덕성을 한껏 발휘하고 가슴 벅찬 보람을 안고 돌아가지만, 바로 이 때문에 시설에서 살고 있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나와 자신처럼 다양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한 사람임을 잊어버린다는 것.

이에 대해 안티고네 연구원은 ‘시설 거주인과 유대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단지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자원봉사’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어 “시설이 인건비 없이 잘 돌아갈 수 있는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는 거주인들이 상당히 많은 양의 가사노동을 분담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바로 자원봉사자다. 청소, 빨래, 목욕 등 일상적으로 이뤄져야할 일마저 자원봉사에 기대야 하는 것은 사실상 그 시설이 이미 시설로서의 기능조차 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며 “자원봉사자들이 ‘나는 진심으로 따뜻한 마음을 갖고 나의 작은 힘을 장애인을 위해 쓰려고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안타깝게도 당신의 선의로 인해 거대한 억압과 착취가 이뤄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아울러 안티고네 연구원은 “국가는 국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시민적 덕성, 호혜, 사회운동, 나눔 등과 같은 허울 좋은 이름에 떠맡기며 방치하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 A미신고장애인생활시설에서 하루종일 강박된 채 생활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모씨의 모습. ⓒ장애인미신고생활시설 인권실태 민관합동조사단
▲ A미신고장애인생활시설에서 하루종일 강박된 채 생활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모씨의 모습. ⓒ장애인미신고생활시설 인권실태 민관합동조사단

“다양한 상황과 각각의 자립생활 고민해야”

지적장애인거주시설 다솜 최용진 원장은 ‘현재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유일한 대안이 시설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시설에 입소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먼저 시설의 역량 강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돌아오는 5기 시설 평가에서는 시설이 지역사회에서 복지전달체계로서 얼마나 이바지했느냐를 평가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시설의 복지서비스를 강화시킨다는 점에 있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시설을 다양화해서 역량을 강화시키면, ‘시설은 시설로’ 강화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체험홈이 도입된 지 3년 정도 됐는데, 시설기능보강사업으로 진행되다 보니 대형시설 및 법인의 큰 시설에서 체험홈을 운영하는 형식이 됐다. 이는 ‘4명이 생활하는 시설’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몇 명이 사느냐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서비스가 지원되고 자기 결정권이 어떻게 이뤄지는가이다.”고 꼬집었다.

최 원장은 “법인 산하 거주시설을 만들고 직업재활시설을 만드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럴 때 거주인들은 출·퇴근의 개념 없이 같은 번지 수 안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 같은 문제는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고, 정책적으로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시설은 더욱 더 강화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최 원장에 따르면, 다솜이 위치한 충청남도 금산군과 같은 농·어촌 지역에는 장애인복지관도, 주간보호센터도, 단기보호센터도 없으며 미신고시설, 조건부 신고시설, 법인산하 거주시설만 있다. 즉,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시설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최 원장은 탈시설과 자립생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때 ‘case-by-case(케이스 바이 케이스, 개별적)’로 이야기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다솜에 있는 56세의 한 할머니는 남편이 죽은 뒤 돌봐줄 사람이 없어 긴급 입소했다. 할머니는 아침식사 뒤 밖으로 나가 산나물을 캐서 번 돈으로 머리도 하고 옷도 사 입는 등 볼일을 본 뒤 저녁 때 돌아온다. 이런 사람이 시설에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탈시설·자립생활 운동하는 사람의 경우처럼 대도시의 지원을 받기 위해 나와야 할까. 할머니는 평생을 농촌에서 생활했고 농촌문화에 적응된 사람이기 때문에 도시로 나간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점을 안겨줄 수 있다.”고 문제점을 제기했다.

그는 “할머니는 가사지원 정도만 이뤄지면 충분히 혼자서 옛날처럼 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가사지원을 운영하는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도시와 달리 농촌에서는 자립생활을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다솜에서 생활하고 있는 34명 중 15명은 갈 곳만 있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지 못하고 있다.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말할 때 ‘어떻게 운동해서 어떻게 하면 된다’고 하지만, 전체 장애인의 거주의 기능에서 바라봤을 때 선택되지 못하는 장애인들(농·어촌 지역 등)은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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