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국수집 서영남 대표

민들레 국수집은 배고픈 사람이면 누구든지 와서 식사할 수 있는 곳입니다.
 
민들레 국수집에는 노숙하는 사람, 쪽방에 사는 사람, 주변 어르신들이 주로 찾아옵니다.
2003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겨우 식탁 하나를 놓고 시작했고, 지금은 조금 커져서 여섯 개의 식탁이 놓여있습니다. 스물 네 명이 만원인 작은 식당입니다.
 
민들레 국수집을 시작할 때부터 봉사자 조직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하고 가게끔 하고 있습니다.
정말 희한하게도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부족했던 적은 없습니다. 자원봉사자가 많이 없을 때는 손이 덜 가는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정말 손이 부족할 때는 손님들이 직접 거들어주고 합니다.

처음에는 국수라도 한 그릇 대접하고자 시작했는데, 국수만으로는 도저히 배고픈 배를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국수집을 밥집으로 바꾸고 식사를 대접했는데, 그것도 역시 부족했습니다.

노숙하는 사람들이 낮 동안 이용할 수 있는 민들레희망지원센터를 만들었습니다.
 
1층에는 문을 열고 들어오면 가장 먼저 물로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洗足)실이 있습니다. 대부분 어디를 들어가고 싶어도 발 냄새가 날까봐 상당히 고민하기 때문에,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도록 하고 새 양말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컴퓨터, 독서, 영화 감상,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함께 있습니다.
 
2층에는 목욕과 빨래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날씨가 안 좋은 날은 낮잠이라도 잘 수 있도록 잠자리 및 텔레비전이 마련돼 있습니다.

주로 노숙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기 힘들어합니다. 조금이나마 해결책을 찾고자 독후감을 발표하면 장려금을 3,000원씩 드리는 작업을 했는데 의외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돈 욕심에 책을 읽었지만, 스스로 말하고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변화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건강문제 또한 중요한데, 우연히 인하대학병원 조순구 교수가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고 싶다며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민들레진료소가 열렸고, 종합병원 수준으로 한 달에 두 번 진료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2008년에는 민들레꿈공부방을 열었습니다. 동네공부방에도 가지 못하는 어려운 어린이들을 위해 무상으로 공부방을 만들었는데, 공부방 어린이들만 어려운 게 아니라 동네 어린이들이 전부 다 애처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주변에 초등학교가 두 개 있는데, 장사가 안 된다는 이유로 가게가 없어져서 군것질이라도 할 수 있는 가게가 거의 없습니다. 아빠 엄마가 일하러 나가면 끼니도 제때 못 챙기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동네 어린이들이면 누구든지 와서 밥과 간식을 먹을 수 있도록 민들레어린이밥집을 차렸습니다. 2층에는 어린이도서관을 만들어서 동네 어린이들 누구든지 책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에는 민들레옷가게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노숙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옷들을 창고에 모았다가 나눠줬는데, 별 도움이 안 됐습니다. 옷 구경과 더불어 선택할 수 있게끔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작은 매장을 꾸몄고, 더불어 필리핀의 빈곤한 어린이들에게 여름옷을 보내는 작업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제가 수도원에서 25년을 살고 2000년도에 환속하게 됐습니다. 수사로 살다 환속해서 처음 한 것은 교도소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 출소해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밥해주고 돕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동인천역을 지나게 됐는데 거리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을 보게 됐고, 이후 단순히 밥 한 그릇만이 아닌 다른 중요한 것들도 챙기고자 식당을 시작하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300여 만 원의 전 재산을 털어 민들레 국수집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밥’보다 ‘대접’입니다. 사람으로서의 대접, 그것이 살게 하는 힘이기 때문에, 국수라도 나누면서 실천해보고자 시작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87세의 한 어르신입니다. 혼자 식사하러 오셨는데, 30년 전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6명의 자녀를 키워 결혼시켰습니다. 이제 혼자 사는데 집에 쌀이 없어 밥을 해먹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쌀을 드리면 들고 가실 수 있겠느냐’ 했더니, ‘들고 갈 수 있다’고 해서 쉬는 날은 직접 해 드실 수 있게 쌀과 반찬을 함께 챙겨드렸습니다.

우리사회가 너무 경쟁하면서 ‘나만 잘 살아야겠다’는, 자기중심이 돼 버린 것 같습니다. 이웃이 아니라,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래서 자녀가 많아도 외롭고, 없어도 외롭고,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마흔 일곱 살에 수도원에서 나와 재산 한 푼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는데, 아내가 결혼해 달라고 청혼해서 횡재했습니다. 아내가 지하상가에서 옷 가게를 하면서 부지런히 벌고, 그렇게 함께 살았습니다.
 
결혼할 때 아내에게 약속한 게 ‘항상 가족을 우선으로 하겠다’였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민들레 국수집 운영하는 것을 싫어하면 군소리하지 않고 문을 닫겠다고 했는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민들레꿈공부방과 민들레어린이밥집을 시작할 때, 스물다섯 살의 딸에게 ‘그 꽃다운 청춘을 월급 몇 푼에 팔아먹고 살 것이냐, 아니면 좀 보람 있는 일을 할 것이냐’고 제안했습니다. 딸이 깊이 생각하더니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방을 맡아서 어린이들과 재밌게 살고 있습니다.
 
아내는 세 식구가 먹고 살기 위한 돈을 버는데, 오전에는 민들레옷가게를 봐줍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게로 갔다가, 오후 3시 반쯤에는 민들레희망지원센터에서 사람들의 독후감을 듣곤 합니다.

지난 해 국민훈장을 받았는데, 얼떨떨하면서도 색다르고 행복하고 의미 있었습니다. 훈장을 받으면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탄원서를 쓸 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실제로 그런 쪽으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교도소에서 오래 살다가 감호 받은 사람이 있었는데, 아들이 많이 아파서 탄원서를 써줬습니다. 다행이도 가석방돼 아들을 돌보며, 아파트 경비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해에는 필리핀의 어린이들을 좀 더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고, 우리 손님들이 배부르고 행복하게 살게 되면 좋겠습니다.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친구가 된다면, 아주 쉽게 어려움을 넘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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