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공사, 보금자리 주택 내 엘리베이터 시설 미비...장애인 접근권 침해 논란

장애인 저소득층을 위해 국민임대아파트를 제공하고 있는 국토해양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공사)가 아파트 단지 내 지하주차장과 아파트 내부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아 장애인 접근권을 침해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장애와 여성 인권연대 마실 김광이 대표는 지난 2월 국토해양부와 LH공사가 제공하는 국민임대주택인 ‘보금자리주택’에 신청 서류를 접수하러 갔다가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에게 “지하주차장과 엘리베이터가 분리돼 있어 휠체어로는 이용하기 어렵고 계단을 이용해 지상으로 올라와 아파트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당황한 김광이 대표가 LH공사 관계자에게 다시 문의를 했으나 “보금자리주택은 예산이 적기 때문에 전체 주차장마다 연결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없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는 답변을 들어야했다고.

이에 대해 ‘아파트건물과 지하주차장이 떨어져있으면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경우 어떻게 하냐’고 묻자 LH공사 관계자는 “지상에 야외주차장에 장애인주차장이 마련돼 있지 않나. 그곳을 이용하면 된다.”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주차장과 아파트 건물이 분리돼 있으면 장애인들은 비나 눈이 올 때 다 맞으며 이동해야 하고 지하주차장을 이용할 경우 자동차가 다니는 위험하고 가파른 경사로를 이용해 이동할 수밖에 없다.”며 “장애인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임대주택이라면 당연히 몸이 불편하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다른 일반 아파트단지보다 많은 게 당연한데 일반 기업도 아니고 국토해양부에서 관리하는 LH공사가 이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비용을 운운하며 ‘그러니 싼 것 아니냐’라고 말하는 행태는 이해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LH공사 기술기준처 관계자는 “분양형 주택의 경우 단지 하나 밑에 한 공간으로 이뤄진 통합형 지하주차장이 있어 엘리베이터 설치가 돼 있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통합형 주차장은 단가가 비싸기 때문에 임대주택지구의 경우 주로 지상주차장으로 짓고 있다.”며 “장애인이나 노인층의 경우 지상주차장을 선호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에 지하주차장을 이용하고 싶다는 진정인의 이야기는 개인의 견해차로 봐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비용 문제를 가장 크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데다 불특정다수를 위한 사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불편하더라도 더 많은 아파트를 지어 공급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나 눈이 오는 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점에 대해 “그 부분은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런 이야기가 몇 번씩 나올 때마다 회의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내부 지침에 따라 할 뿐이라서 어쩔 수 없다. 지침보다 위에 있는 법을 개정하면 우리도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이야기한 ‘보금자리주택 업무처리 지침’은 국토해양부가 제정한 것으로, 이 지침 안에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내용은 아파트 내부의 편의시설에 한해서만 명시돼 있다. 특히 이 지침 제32조(주차장)을 보면 “③장기공공임대주택건설시 제2항에 따라 지하에 설치하는 주차장은 주동과 지하주차장이 분리되어 있는 형태를 원칙으로 하되, 주차배분, 주차규모 등을 감안하여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만 명시하고 있어 장애인의 이동편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김광이 대표가 만난 LH공사 관계자도 ‘아파트와 엘리베이터의 분리가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애인이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과 관련한 내용은 장애인편의증진법에서 ‘전체주차장의 일정 부분을 장애인주차장으로 제공해야 한다’고만 명시하고 있어 이번과 같이 아파트와 주차장 간의 이동편의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것.

김 대표는 “편의증진법을 개정할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분명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제공’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 명백한 차별로 인정하고 있다. 결국 이것은 장애인 이용자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은 인식의 문제.”라며 서울시과 관리하는 SH공사의 예를 들었다.

김 대표에 따르면, SH공사의 경우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는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의 환경을 동등하게 하고, 입주민의 편의를 우선한다는 가치로 7개 지구(구로구 천왕, 서초구 우면, 강남 세곡, 중랑 신내, 송파 마천, 강동 강일)의 임대아파트에 지하주차장과 주동으로 가는 승강기를 연결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2월 22일 LH공사 사장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현장을 점검해 직권조사를 할 것을 요구했다. 또 장애계단체와 함께 ‘차별없는 주거권을 위한 LH공사 대응 공동대책위원회’(이하 LH공대위)를 꾸려 국토해양부와 LH공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LH공대위는 5일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LH공사와 국토해양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국토해양부 장관을 상대로 다시 한 번 진정을 제기했다.

이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는 “장애인은 비나 눈이 오면 더욱 지하주차장을 이용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이용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장애인의 지하주차장 이용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은 명백한 차별인 만큼 인권위가 이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빠르게 국토해양부에 권고하고 개선토록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박 대표는 “이번 사례를 통해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얼마나 살아가기 힘든지를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됐다. 찾아보면 겉으로는 장애인을 위하는 척 하면서 숨은 곳에서는 돈의 논리를 들어 차별하는 경우가 훨씬 많이 드러날 것.”이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만들면 뭐하냐. 실효성 없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질타했다.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배융호 사무총장은 “LH공사는 보금자리주택에 대해 예산 문제를 내세우면서 이용자들이 불편하지 않은 주택을 짓기보다는 불편한 주택을 많이 만들어 보급하는데 힘쓰고 있다.”고 지적하고 “우리가 몇 년 동안 힘들게 이동권 투쟁을 해온 이유는 장애인이 차별과 억압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고 이에 국가에서 배리어프리 인증제도가 생겨났다. 국토해양부는 ‘장애물없는생활환경인증제도’의 주무 정부부처이고, LH공사는 ‘장애인물없는생활환경인증제도’ 인증기관인데도 불구하고 남들은 엄격한 잣대로 인증하고 있으면서 정작 자신들은 지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불편을 겪어야 하나?”라고 반문하고 “지하주차장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없도록 설계한 것은 7년 동안 힘들게 만든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무시한 처사.”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번 일 외에도 주거지에서의 갈등과 관련된 상담 전화가 많이 들어오는데 오늘 진정을 하고 나면 다시 이런 상담이 들어오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이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 국가인권위원회에 국토해양부 장관을 대상으로 진정서를 제출하고 ▲LH공사에는 당장 설계 변경이 가능한 지구에 지하주차장 출입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장애인의 이용과 접근을 보장할 것 ▲국토해양부에는 장애차별적인 ‘보금자리주택 업무처리지침’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는 국토해양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대한 진정사건을 조속히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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