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당사자 및 가족 ‘발달장애인법 내용 및 국회 제출 사실 몰라’
‘시작을 알리기 위한 결정일 뿐… 의견 수렴 및 목소리 담을 예정’

19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이하 발달장애인법)’으로 제출돼 관심이 쏠리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이해당사자 및 단체와의 합의과정을 뒤로한 채 법안 제출에 급급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30일 오전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법안을 1호 법안으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정록 의원을 비롯해 심재철, 정두언, 이주영 의원 등 13명이 공동발의한 발달장애인법안은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한국장애인부모회·전국장애인부모연대·한국자폐인사랑협회 등 발달장애인 관련 주요 단체들이 뜻을 모아 공동입법을 추진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며, 이들 단체들은 지난 2월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이하 발제련)를 출범했다.

당초 발제련은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길게 보고 계획했으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공약으로 가시화됐으며, 특히 새누리당의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초안 마련 작업이 가속화됐다.

발제련 회원들도 모르는 발달장애인법안?…내용 공유 없이 진행돼 아쉬워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 소속 회원인 ㄱ 씨는 “오늘 발달장애인법안이 발의된다는 사실은커녕 발달장애인법 초안이 정확히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조차 모른다.”며 “아무리 필요성이 강조된다고는 하지만,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 소속 단체 회원조차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소수에 의해 국회에 먼저 갖다 내는 것은 순서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ㄱ 씨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정의’만 보더라도 각 나라 및 단체별 주장하는 영역이 다르다. 그만큼 상당한 합의와 섬세한 과정이 필요한데, 그런 과정도 없었고 어떤 내용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른다.”며 “우리 손으로 우리 자녀와 가족을 지켜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와는 달리, 무엇이 그리 급해서 앞으로 4년간 열리는 19대 국회에 1호 법안으로 제출했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4개 단체가 모여 내용이 만들어졌으면 최소한 각 단체 내부별로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있었어야 한다. 필요한 내용을 어느 정도 담아 초안을 만들어 국회에 냈으니 일단 지지하고 힘을 모으라는 것은 회원을 도구화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발달장애인연구소 ‘알기 쉬운 장애인권리협약 제작위원회’ 역시 지난 30일 성명서를 내고 ‘발달장애인 당사자 없는 발달장애인법안 발의를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우리한테 물어보지 않고 발달장애인법안을 만든다는 것은 불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발달장애인법은 의원님들의 법이 아니라 우리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법을 우리하고 이야기도 안 하고 의원님들끼리 만든다는 게 너무 이상합니다.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법을 만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들의 법인데 정작 우리들은 발달장애인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뭐가 그리 급하십니까. 우리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거나 토론해보고 만드는 것도 늦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라며 제19대 국회의원들에게 ‘소통의 자리’를 강조했다.

‘알기 쉬운 장애인권리협약 제작위원회’는 ▲발달장애인법안 발의를 늦춰줄 것 ▲발달장애인법 내용을 발달장애인이 알기 쉽도록 알려줄 것 ▲발달장애인법에 대한 발달장애인의 생각을 물어봐줄 것 ▲발달장애인법을 만들 때 발달장애인도 참여하게 해줄 것 ▲발달장애인법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줄 것 등을 요구했다.

‘여론화 위한 정치적 전략…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

이에 대해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기룡 사무처장은 “갑자기 ‘정치적 움직임’이 일어났고, 4개 단체가 연대한 만큼 발제련에게 추진을 위임해 진행해 왔다.”며 “발달장애인법안이 제출된 것은 제정됐음을 의미하는 게 아닌 ‘이제부터 싸움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앞으로 수정 및 완성시켜나가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사무처장에 따르면, 앞으로 발제련은 발달장애인법 심의까지 남은 6여 개월 동안 지역별 발달장애인 관련 모임과 함께 발달장애인법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ㄱ 씨는 “분명히 정치적으로 풀어야할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1순위가 돼서는 안 된다. 다양한 구성원의 이야기가 담기도록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진행하면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정치적 상황을 전면에 내세우며 당사자 및 그 가족을 뒤로 놓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꼬집었다.

발제련의 이러한 과정에 대해 장애계 한 관계자는 ‘발달장애인법을 빨리 여론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전략’으로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장애인특수교육등에관한법률의 경우 현장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많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여론화’를 이끌어내기 쉬웠으나, 발달장애인법 같은 경우 특성상 현장에서 여론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어떤 형태로든 드러내자’는 발제련의 생각과 새누리당의 움직임이 맞물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얼마나 책임감 있게 껴안고 갈 것인지가 ‘미지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논쟁 또한 ‘발달장애인법 제정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 관계자는 “분명한 것은 발달장애인법의 주체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이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며 “발제련 또한 발달장애인법을 ‘뚝딱’ 만든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만큼, 한국발달장애인연구소 ‘알기 쉬운 장애인권리협약 제작위원회’의 성명서를 조언 삼아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목소리를 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