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보장제도 전면 개정 위한 수급자 증언대회’ 개최

부양의무자기준으로 탈시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과 잘못된 소득조사로 삶이 불안정해진 수급자, 너무 낮은 최저생계비로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수급자 등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보장제도 전면 개정’을 위한 증언에 나섰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원석 의원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보장제도 전면 개정을 위한 수급자 증언대회’를 지난 21일 국회도서관에서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김선미 연구원(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책임간사)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집었다.

그는 “최근 경기불황과 더불어 심해지고 있는 빈부격차현상에도 기초생활보장수급자수는 제도 시행 이후 10년 동안 거의 변화 없이 3% 안팎을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 3% 이하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예산은 이명박 정부 임기 중 90조 원 규모의 감세에 따른 부담으로 올해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예산은 전년도 대비 3.4% 삭감됐다. 이는 2009년 대비 5.% 감소한 수치.”라며 “예산대비 기초수급자수를 비교해보면, 2007년 167만4,000인에서 출발해 2008년 7만8,0000인 축소, 2011년 2만7,000인 축소, 2012년 5만4,000인 축소 등 2007년 대비 12만4,000인이 축소됐다. 이는 소득양극화 추세나 빈곤층의 실업장기화 등을 고려하지 않고 예산에 맞춰 지속적으로 수급자를 걸러내 왔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광범위한 사각지대 해소의 과제’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도보완의 시급함도 촉구했다.

김 연구원은 “기근 기초보장제도의 시행 이후 줄곧 문제가 된 것은 최저생계비 계측상의 문제와 낮게 책정된 최저생계비를 공공부조의 급여기준으로 삼는 점.”이라며 “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된지 10여 년이 경과했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광범위한 사각지대 해소가 과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양의무자기준의 완화, 재산소득환산률의 조정 등이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김선미 연구원(왼쪽).
또한 “현재 정권의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두드러진 점은 공공부조 관리에 있어서 복지수급권의 보장보다는 행정력의 강화로 두드러지는 것 같다.”며 “전체적인 복지예산 중 기초보장예산을 지속적으로 삭감하고 있으며, 근로능력의 평가를 엄격하게 부여하려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제도의 사각지대를 메우고자 하는 노력으로서는 부양의무자기준 중 소득기준을 30%에서 180%로 완화했으나, 표면적인 흡수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괄적 소득이나 재산조사(부양의무자 포함) 후, 부양의 실제를 고려하지 않거나 소명 등 유예기간 없는 급여삭감·보장중지로 생계에 위협을 받게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있다. 가장 팍팍한 삶을 사는 빈곤계층의 사회복지수급권을 박탈하는 사례가 두드러지고 있다.”며 “소득격차의 심화, 고용불안정의 가속화 등의 추세 속에서 ‘최후안전망’으로 불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사회보험의 확충과 역할 기능이 더욱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탈시설 가로막는 기초법, 내게도 꿈이 있습니다’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탈시설이 어려워진 장애인 당사자 김현수 씨.
이어진 부양의무자기준으로 탈시설이 어려운 당사자 김현수 씨가 직접 증언에 나섰다.

김 씨는 “9살 때부터 시설에서 생활했다. 시설에서는 기숙사나 학교도 있지만, 병동에 들어가서 생활해야 했으며, 당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으나 시설에서는 ‘나이가 다 찼으니 나가라’해 집으로 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부모님이 다시 시설을 알아봤다. 시설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부모님의 ‘너 시설에 안가면 어디서 먹고 살거니?’라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시설에 가고 싶지 않아 가출해 노숙인에게 밥도 얻어먹고 길거리에서 자며 생활했다. 시간이 지나니 수동휠체어 바퀴에 있는 쇠가 닳아 손이 다 찢어지고 피가 나고……. 결국 사춘기 반항이 끝나고 시설에 다시 돌아갔다.”고 말했다.

시설에서 생활하던 김 씨는 자립생활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남들처럼 돈 벌어서 연애도 자유롭게 하고,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었다.

“8년 전 쯤, 처음 그룹홈이라는 걸 들었고 자립생활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어머니는 얌전히 살라고 했지만, 부모님도 동생들도 각자의 인생이 있든 나의 인생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일산에 있는 직업학교에 지원했는데 고등학교 졸업 이상만 입학할 수 있는 곳이었다.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아 사정을 이야기했다.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여기서 하는 일은 잘 할 수 있느니 지켜봐 달라’고 말해 시험을 볼 수 있었다. 땜질하는 테스트를 하고, 필기시험을 보는데, 중학교 이상이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왔다. 이런 문제를 못 푼다고 하니 ‘누가 중학교 안 다니라고 했냐’라고 했다. 내가 다니고 싶지 않아서 안 다닌 것도 아닌데, 배우지 못한게 죄도 아닌데. 못 배웠으니까 배우고 싶어서, 남들처럼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싶어서 갔는데…….”

그는 결국 다시 시설로 들어갈 수 밖에 없았다.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시설에서 비리를 저리른 운영자도 감옥에 보내고, 운영진들도 바꾸도록 만들면서 자립생활을 더 가까이 접하게 됐다. 하지만 시설에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수급권 문제 때문이다.

김 씨는 “자립홈을 거치지 않고 바로 집을 얻으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아파트를 신청했다. 계약금과 입주금이 없어 한편으로는 안됐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됐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된다면 계약금 260만 원과 입주금 1,045만 원에 대한 것이 문제가 돼 걱정했다.”며 “신청한지 보름이 지나 문자가 당첨 문자가 왔다. 너무 기뻤지만, 계약금과 입주금 압박에 떨렸다. 급한데로 계약금을 내기 위해 은행돠 주변 지인에게 말을 했지만 260만 원을 선뜻 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마음도 이해가 갔다.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닌데 누가 빌려주겠는가.”라고 설명했다.

다행히 계약금을 내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그 사람이 입주금은 어떻게 마련하겠냐고 했다. 너무 고마워 입주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입주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몰랐다. 은행 전세자금대출로 해결하려 했지만 800만 원까지 된다고 한다. 보증금이 1,045만 원인데 어떻게 나머지를 빌려야 할지 몰랐다. 전세자금대출조건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한 가지는 만 35세가 넘어야 하고 다른 한 가지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돼야 했다.”며 “그러나 두 가지 모두 해당이 안됐다. 지금은 시설안에서 수급자로 돼 있지만, 시설에서 나가면 부양의무자에 대한 재산을 다시 조사해 수급자에서 탈락하게 된다. 그래서 동생에게 부탁했지만 부모님의 반대와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나갔다 먹고 살아가야 할 일도 막막하고, 직장 구하니도 힘든데 다시 시설로 들어가자니 시설에서 받아줄지도 모르고 난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생각에 아파트를 포기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 중 반이 장애인었다면 휠체어를 타고 다녀도 요상하게 쳐다보지 않을 거라고. 혹 모두가 장애인이고 몇몇만 비장애인이었다면 오히려 비장애인이 창피를 당했을 거라고.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회는 장애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사회가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배우지도, 일하지도, 연애를 하지도, 평범하게 살지도 못하고 시설에 사는 거다. 나를 고쳐야 하나? 사회를 고쳐야 하나?”

이어 김 씨는 부양의무제 폐지 이유에 대해 “중증장애인이 시설에서 세상 밖으로 나가 살기 위해서는 시설생활수급자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연계가 될 수 있도록 기초법이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초법은 비장애인도 해당된다. 그러나 정부에선 아무런 대책없이 부양의무제 폐지 반대를 하고 있다. 노인이나 후천적 장애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너무 낮은 최저생계비로 인해 생활이 곤란합니다’

▲너무 낮은 최저생계비로인해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이대진 씨.
54세의 이대진 씨도 기초생활수급 최저생계비에 대해 당사자 증언에 나섰다.

그는 현재 45만 원 정도의 생계비를 받고 있다. 그 중 방세 25만 원, 전화비 및 공과금을 내고 나면 15만 원 정도 남는다. 그것으로 쌀과 부식, 생활용품을 사고 나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국거리가 없어 새벽같이 일어나 야채시장가서 버려진 채소를 주어와 된장국을 끓여먹곤 합니다. 새 옷을 사 입는다는 것은 꿈에도 못 꿀 일이지요. 물가상승률에 준해 수급인상이 돼야 하건만, 정책이 그러하지 못하니 참으로 암담할 뿐입니다. 관계자 여러분께서는 이 점 참고하시어 진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수급자분들께서는 노숙인 무료 급식소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공짜를 좋아해서 한참을 줄서서 기다려야지만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급식소를 찾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최저생계비로는 도저히 생활할 수 없기에 길거리로 나서는 것 아닐런지요. 그리고 한겨울이 되면 월동비로 몇 만 원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만, 택도 없는 월동준비금이 생색내기 위한 것이지 진정으로 소외계층의 따듯하진 않지만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낼 수 있단 말씀입니까?”

이 씨는 의료급여에 대해서도 말을 이었다.

그는 “수급자에게 의료보험 1종이 부여되는데, 수술을 하거나 중환자실에 가야 할 때 1회에 한해 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만 행여 재발하거나 했을 때는 다시 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비급여 항목에 대해서는 좀 더 완화시켜줄 것을 촉구한다. 한 달 이상 장기입원환자에 대해서는 생계비가 삭감되는데, 이 부분도 철회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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