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 한국에서 14년을 일하며 가장의 역할을 다했던 30대 필리핀 근로자가 화재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한 줌 재로 남아서도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안타까운 사연을 박고운 아나운서가 전합니다.

뿌연 연기가 쉴 새 없이 솟아오릅니다.

지난 7일 서울 종암동의 한 상가 건물에서 화재가 났습니다.

당시 불은 5분 만에 꺼졌지만, 원룸에 살던 필리핀인 근로자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자수 공장에서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하며, 150만 원 안팎의 월급을 받았던 37살 베르나르도 노날드 씨.

14년간 홀로 한국에서 일하며 아내와 두 아이는 물론, 부모와 다섯 동생까지 부양했습니다.

1년짜리 비자가 만료된 이후 13년을 불법 체류자 신세로 살아야 했지만, 가족을 떠올리며 코리안 드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INT 인근 봉제공장 사장(음성 변조)

"힘들다는 얘기는 안하고 보고 싶다는 얘기는 하더라고. 매일 컴퓨터로 자기 가족들 보는 게 일상이라고... 돈을 조금 더 벌어서 가려고 했었던 것 같아. 애는 착해 진짜로."

노날드 씨의 동료들 역시 대부분 불법체류자 신분이어서 화재를 목격하고도 신고할 수 없었습니다.

뒤늦게 인근 봉제공장의 사장과 편의점 직원의 신고로 119가 출동했지만, 노날드 씨는 숨진 뒤였습니다.

한국에 연고가 없는 고인은 빈소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한 줌의 재가 됐습니다.

하지만, 비싼 항공료 때문에 언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지 현재로선 기약이 없습니다.

<영상취재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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