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의무 기준’ 위헌성 검토하고 개선방안 논의하는 자리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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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의 위헌성을 검토하기 위한 토론회가 진행됐다. ⓒ안서연 기자
가족이나 스스로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에게 국가가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급여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 하지만 기초법 조항 중 하나인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저소득층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개인의 소득과 재산이 아무리 최저생계비보다 낮아도,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이 최저생계비의 130% 이상인 경우, 기초법 적용 대상에서 탈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탈락자 중 절반 이상이 부양의무자로부터 실질적으로 부양을 받지 못해 ‘죽음’에까지 이르고 있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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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이언주 의원. ⓒ안서연 기자
이같은 문제를 양산하고 있는 ‘부양의무자 기준’의 위헌성을 검토하기 위해 민주통합당 이언주 의원과 민주통합당 김용익 의원, 진보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과 함께 지난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진행했다.

토론에 앞서 이언주 의원은 “지난 달, 촛불 화재로 할머니와 손자가 목숨을 잃었다. 할머니의 건강이 나빠져 수입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딸이 3명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에서 제외된 이들은 전기세 15만 원을 내지 못해 촛불을 켜고 자다 죽게 됐다.”며 “이러한 부양의무자 기준이 오히려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것인지를 반드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실질적으로 부양 능력 없는 자들이 부양의무를 지고 있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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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결 이지선 변호사 ⓒ안서연 기자
법무법인 한결 이지선 변호사에 따르면 기초법은 수급권자 선정에 있어 ‘부양의무자 기준’을 설정함으로 인해 ‘사적부양 우선의 원칙’을 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적부양’이란 민법에 의한 부양을 의미한다.

민법에 의한 사적부양은 ▲부양의무자의 생활수준과 동일한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생활유지의 부양(제1차 부양)과 ▲부양의무자의 생활수준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생활에 필요한 부양의무만을 다하는 생활부조의 부양(제2차 부양)으로 나뉘게 되는데, 통상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는 제1차 부양으로, 성년자의 직계존속에 대한 부양의무는 제2차 부양으로 해석하고 있다.

기초법의 ‘부양의무자 기준’의 경우 성년자에 대한 부양의무이므로 제2차 부양에 해당하는데, 제2차 부양의무자가 최소한의 부양의무를 지려면 중간소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완전한 부양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상위 40% 이상의 소득계층에 속한 가구여야 한다.

따라서 사회의 다수가 인정할 수 있는 부양능력 판정 소득 기준의 목표선은 최소 기준의 경우 현 최저생계비의 250%, 최대 기준의 경우 350%인 자들이어야 하는데, 현행법상 ‘부양의무자 기준’에 따르면 최저생계비의 130% 이상이면 부양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실질적으로 제2차 부양의무를 다 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이 부양의무를 지고 있는 꼴.”이라며 “국가의 의무를 일탈해서 실질적으로 능력이 없는 부양의무자에게 부양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질타했다.

더불어 “이로인해 아무런 생계 보장을 받지 못하는 빈곤 ‘사각지대’가 약 103만 인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지나치게 엄격한 부양의무자 기준 설정으로 인해 부양의무자 가구의 생활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차상위계층과 중하위계층의 빈곤이 재생산되고, 소득역전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인간다운 생활할 권리’ 침해, ‘기본권보호의무’ 위반, ‘포괄위임 금지 원칙’ 위배

이어 기초법 제46조 ‘부양능력을 가진 부양의무자 있음이 확인된 경우,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에 대한 오류도 지적했다.

민법 제979조상 부양양청구권은 일신전속권으로 부양을 받을 권리는 이를 처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부양청구권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으며, 이를 담보로 제공하거나 부양청구권을 압류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기초법상에서는 부양청구권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 보장기관이 부양의무자로부터 구상하기 위해 부양청구권을 양도하거나 승계 받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며, 생활보장위원회의 심의·의결만을 거친 후 징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비용 징수 규정에 대해 이 변호사는 “실질적 부양능력이 없는 부양의무자를 둔 수급 대상자에 대한 최소한의 공적부양마저 제공하지 않는 현행 기준 아래서는 부양의무자에게 사적부양을 기대할 수 없어 공적부양에 기댈 수밖에 없는 자들에게까지 간접적으로 사적부양을 강제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초법은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라고만 정한 채 나머지 구체적인 대통령령인 기초법 시행령 제4조 및 제5조에서 정하게 하고 있어 국민들로서는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어떤 경우인지 쉽게 알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같은 문제점을 토대로 이 변호사는 ‘기초법이 헌법적으로 어떤 부분을 위반할 수 있는가’에 대해 살펴본 결과 “그 내용이 현저히 국가의 재량을 일탈해 실질적 부양능력이 없는 국민들 및 부양의무자가 있어 수급권자가 될 수 없는 국민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가 국민의 법익보호를 위해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기본권보호조치를 취했다고 보기 어려워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를 위반하고 있고, 수급권자와 신청탈락자들 및 차상위계층을 합리적 이유없이 차별하고 있으며, 부양의무자 판단에 관한 중요한 기준을 하위법규에 위임하여 포괄위임 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통합전산망 도입 ‘가족관계 단절에 대한 입증 요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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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김윤영 집행위원. ⓒ안서연 기자
이 변호사의 지적에 대해 공동행동 김윤영 집행위원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사적부양우선의 원칙’을 강조하고,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발생시키고, 이로인해 빈곤의 재생산까지 끌고 가고 있다 데 크게 공감한다. 특히 구상권청구에 대한 일신전속권으로서의 민법과의 충돌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강력한 근거를 제공하고, 중요한 제기점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어 “시행령 제5조 제4호에는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 수급권을 가질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긍정적·적극적으로 집행되지 않아 매우 제한적.”이라고 지적하며 “특히 올해에는 통합전산망의 도입으로 인해 수급권 탈락자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김 집행위원에 따르면, 올 초 수급 신청시 부양의무자의 소득파악을 위한 금융정보 등 공개동의서를 미제출할 경우 6개월간의 유·무선 통화기록을 제출하도록 했으며, 통화기록이 남아 있는 경우 수급권에서 탈락시켰다. 추후 추가 자료(소명을 위해 수급자가 선택할 시 제출가능한 자료)로 변경이 되긴 했지만, 일선상에서는 여전히 통화기록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판정 기준에 대해 김 집행위원은 “이는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거부하거나 기피하고 있음을 넘어서 가족관계 단절에 대한 입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처럼 행정기관의 지나친 제한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기초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자살까지 이르게 한 ‘선조정 후통보’…기초법·행정절차법 위배

이어 “수급을 받던 50대 남자의 80대 노부모에게 구상권청구가 통지된 후, 노부모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밭을 팔아 이를 갚은 사례가 있었다.”며 “대부분의 수급(신청)자의 경우, 구상권청구를 권유받을 시 수급신청이나 이의신청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가족관계가 단절된 경우라도 할지라도 구상권청구는 선택하기 어려운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현행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기준은 매우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에서 탈락한 수급자수는 2011년에는 1만9,978인, 2012년 1월~7월 사이에는 1만3,117인에 이르지만, 이들의 부양의무자가구 평균 월 소득액은 2011년 243만890원, 2012년 232만8,445원으로 전국가구 평균소득인 345만 원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것.

이를 토대로 김 집행위원은 ‘소득역전현상’의 발생을 우려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올해 3/4분기에 국민신문고로 접수된 기초생활수급자 관련 민원을 분석한 결과 부양의무자 기준 탈락으로 인한 이의신청이 가장 많았다. 빈곤층은 정보접근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이 정돈데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많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 지난 8월 백수였던 사위가 취직했다는 이유로 수급자격을 박탈당한 70대 노인이 거제시청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언급하며 ‘선조정 후통보’의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김 집행위원은 “당시 할머니는 수급내용 조정만 통보받고 시청에 찾아가 탈락 사유를 물었지만 ‘법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만 들었다고 한다.”며 “이는 기초법 34조 ‘급여는 정당한 사유없이 수급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될 수 없다’는 내용에 위배되며, 행정절차법 제21조 제1항의 ‘행정청은 당사자에게 의무를 과하거나 권익을 제하는 처분을 하는 경우에는 미리 처분의 원인사실, 처분의 내용 및 법적 근거, 처리방법 등을 당사자에게 통지해야 한다’는 내용에도 위배된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현재 행정에 과도하게 위임된 수급자 선정과정은 법의 정비를 통해 변화해야 한다.”며 “부양의무자 기준 조항의 삭제 등을 기초법 내에서 규제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가 강력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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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허선 교수. ⓒ안서연 기자
‘선 선정 후 보장비용 징수’ 계체로 변경 제안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주장에 대해 순천향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허선 교수는 “상위법인 민법에 부양의무규정이 존재하고 있는 한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한 폐지는 불가능하다.”며 “현 상황에서는 국민의식의 변화를 고려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간주부양비 제도를 철폐하고, 부양능력판정기준이 합리적인 선에서 결정된다는 전제 하에 ‘선 선정 후 보장비용 징수’ 체계로 변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가 보장하든 부양의무자가 보장하든 어쨌든 부양의무자와 국가가 결판을 내고, 그 비용만큼을 수급권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져야 문제가 해결된다.”면서 “지금의 부양능력 판정기준을 대폭 높이고, 현실화해야만 행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부양의무제 폐지, ‘위헌성 검토’보다는 ‘최적으로 실현해야 할 의무 강조’에 초점 맞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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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종철 교수. ⓒ안서연 기자
한편,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종철 교수는 “헌재는 법률이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최저생활보장에 관한 입법을 전혀 하지 아니했다든가 그 내용이 현저히 불합리해 헌법상 용인될 수 있는 재량의 범위를 명백히 일탈한 경우에 한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고 설명하며 “부양의무자 기준을 엄격히 설정해 최저생계비를 보장받지 못하는 국민이 존재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면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법률조항의 위헌성만이 법률개정의 사유일 수 없다.”며 “헌재의 법률에 대한 위헌 판단은 입법형성의 최적조건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헌법이 설정한 입법권의 범위에 대한 일탈여부에 대한 판단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위헌 주장은 헌법재판적 의의가 주안점인 것이고, 국민최저생활보장을 위한 입법론을 위해서는 입법권의 최적 행사를 위한 입법권자의 헌법적 의무를 지적해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헌재가 설정한 엄격한 기준에 근거해 입법론을 주장하기 보다는 헌법상 복지국가원리의 제1차적 수범자로서의 국회의 의무를 강조함으로써 부양의무자 기준의 합리적 개선을 추구하는 것이 최우선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한 국민 공감대 끌어내야”

이에 대해 이언주 의원은 “‘위헌성’을 중요안으로 제기한 이유는 부양의무제 폐지를 마치 떼를 쓰는 듯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 안타까워서였다. 또한 ‘국가의 의무가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헌법적 차원에서 접근해보고, 모든 국민이 보장받아야 할 평등권과 관련해 ‘부양의무자 기준이 과연 합리적 차별인지’ 의견을 나누고 싶었다.”며 “무엇보다 국민들의 공감을 끌어내면 개선의 희망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국민들은 사회 소외계층의 죽음을 접하면 눈물을 흘리고,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일시적인 ‘기부’보다는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걸 알려야 한다.”며 “알려지지 않은 사례를 발굴해서 대중에게 ‘부양의무자 기준’의 문제점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의원은 다른 측면에서도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해 논하는 자리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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