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계 ‘폐지’ 방향에 한목소리, 복지부 ‘등급제는 불가피’ 입장 고수

그동안 한국의 장애등급판정 기준은 지나치게 의료적 기준으로만 편향돼, 의료적으로는 합의될 수 없는 장애 간 형평성 문제, 현실적이지 못한 판정기준 등 지적 받아 왔다.

이에 따라 전 장애계가 모여 장애등급제의 대안을 모색하고, 대선 공약사항인 ‘장애등급제 폐지’의 실효성 있는 이행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한 ‘장애인계 장애등급제 대토론회’가 지난 15일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장애등급제’란 지난 1988년 장애등록제의 도입과 함께 시행된 장애인의 신체적 기능손상 및 정도에 따라 1~6급으로 구분해 등록하는 제도로, 장애인에 대한 거의 모든 복지서비스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 당사자에게 ‘장애등급’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하지만 지나친 의료적 기준 편향, 의료적으로 합의될 수 없는 장애 간 형평성 문제, 현실적이지 못한 판정기준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 받고 있다.

▲ 전 장애계가 모여 장애등급제의 대안을 모색하고, 대선 공약사항인 ‘장애등급제 폐지’가 실효성 있게 이행되도록 하기 위한 대응방안을 논의한 ‘장애인계 장애등급제 대토론회’가 지난 15일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최지희 기자
▲ 전 장애계가 모여 장애등급제의 대안을 모색하고, 대선 공약사항인 ‘장애등급제 폐지’가 실효성 있게 이행되도록 하기 위한 대응방안을 논의한 ‘장애인계 장애등급제 대토론회’가 지난 15일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최지희 기자

이날 토론회에서는 장애등급제를 둘러싼 7가지 쟁점인 ▲장애등급제의 문제점 ▲장애등급제 개선인가 완전 폐지인가 ▲1~6등급이 아닌 중증과 경증으로 개편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 ▲등긎제 개선 혹은 폐지를 위한 선결과제는? ▲직접적 소득보장 및 간접적 소득보장(감면·할인제도) 대안은? ▲등급제 개선 혹은 폐지를 위한 과정 ▲장애인등록제, 장애 유형구분에 대한 의견으로 나눠 논의했다.

먼저 ‘장애등급제의 문제점’에 대해 AP-DPO United 서인환 의장은 “오랜 시간이 걸려 새로운 것을 다시 만드는 것이 아닌, 현재 있는 서비스의 전달체계를 개편해 잘 연결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 의장은 “평가도구 하나면 감면혜택을 많이 받고 있는지, 아닌지가 나온다.”며 “시각장애인에게 물리치료 받으라고 안하지 않나. 대부분의 서비스는 복지관에서 하고 있으니 서비스가 더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만 알아서 연결만 해주면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하 장총) 김동범 사무총장은 “장애인등록제가 실시되면서 빠르게 정책제도가 정착됐다고 볼 수 있지만, 지금은 시대변화와 맞지 않는다.”며 “등급제는 신뢰·과학성이 없다. 별도의 적격성을 갖고 심사를 할 것이라면 새로운 적격성 판단여부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장애인의 사회적 욕구가 달라졌다. 등급제를 통해 정책을 시행하기는 쉬웠지만, 사회 전 영역에서 일어나는 욕구를 단순히 등급으로만 판정할 수 없다.”며 “현행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는 오래전부터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도입하는 데 있어서 판정체제의 혼란 때문에 도입만 못하고 있는 것으로, 이미 등급제 한계는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박경석 상임대표도 “등급제는 예산과 권력에 맞춰진 것.”이라며 “말로는 폐지한다고 하지만 대안이 무엇인지 모른다. 등급제 폐지의 방향은 혁명.”이라고 꼬집었다.

▲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정충현 과장. ⓒ최지희 기자
▲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정충현 과장. ⓒ최지희 기자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정충현 과장은 “한 나라를 이끌어 가려면 정부가 필요하다. 정부를 꾸리는 데 세금으로 걷어진 돈이 필요한데, 이를 꼭 필요한 기능에 써야 한다.”며 “급한 사람에게 먼저 써야 하지 않나.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예산 제도다. 정해진 예산에서 연금제도나 활동지원제도 등 중요한 서비스가 늘어났을 때 모두에게 지원 할 수 없기 때문에 등급제로 나눠 서비스를 필요성이 가장 큰 사람부터 지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기준이 없었다면 ‘선착순 제도’가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등급제도가 기능을 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등급제 폐지, 완전폐지와 개편으로 의견 나뉘어

장애등급제 폐지와 관련해서는 ‘완전 폐지’와 ‘개편’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장총 김 사무총장은 ‘개인의 적격성 판단하고, 선별조건은 전달체계 개편’의 의견을 내세웠다.

그는 “지금까지 장애정도 유무를 공급자 중심에서 판단하고, 대상자를 선정해 왔다. 이를 소비자 중심으로 바꾸자는 것.”이라며 “개인적 상황과 가지 입장 환경을 고려하는 개별화된 서비스를 줘야 한다. 장애를 등급만 보지 않도록 등급제를 없애고, 새로운 적격성 판단을 한다면 중증장애와 경증장애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소득수준, 욕구와 특수한 경우의 서비스를 고려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전장연 박 상임대표는 ‘등급제폐지를 원칙으로 하되, 과정을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

박 상임대표는 “지금의 6등급을 2등급 또는 3등급으로 개편한다면, 지금의 체계와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비장애인에 비해 ‘-100’에서 살고 있다. 국가는 이것을 ‘0’으로 올려놓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예산의 증가율만 따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 AP-DPO United 서인환 의장. ⓒ최지희 기자
▲ AP-DPO United 서인환 의장. ⓒ최지희 기자
AP-DPO United 서 의장도 ‘장애등급제를 욕구에 맞는 서비스 등급으로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 의장은 “여성이나 어린이·노인복지에도 등급이 없는데, 장애인복지에만 등급이 있다. 등급제는 의학적으로만 매기기 때문에 문제.”라며 “서비스는 어차피 나눠질 수밖에 없다. 시각장애인을 예로 보면 돋보기, 점자 등 욕구가 완전히 달라진다. 의약적인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서비스 등급을 나눌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정 과장은 ‘노인요양’이나 ‘병원의 일반환자실과 중증환자실’ 등을 내세우며 반박했다.

그는 “장애분야에서만 등급으로 나눠져 있다고 하는데, 노인요양도 등급으로 나눠 지원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도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등급이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병원에 가서 보면 일반환자·중환자로 나눠져 있다. 도와야 할 필요 때문에 나눈 경우가 꽤 있는 것.”이라고 박론했다.

또 “먼저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 대안을 준비되는 것을 전제로 준비해 나가면서 서서히 폐지해 나갈 것.”이라고 상반된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김 사무총장은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서비스별 기준은 어디나 있다. ‘활동보조 1~4급’ 등 모든 등급을 없애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금의 등급제는 15가지 장애유형 중 각기 다른 유형을 일괄적으로 6개로 나눠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 청각장애와 지체장애 1급이 같은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이 등급제로 연금제도를 2급까지 잘라내지 않나. 3급임에도 소득이 없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등급을 없애고 서비스별로 적격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장애등급제 불가피” 입장 밝혀

장애등급을 결정하는 의학적 기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각기 나뉘었다.

정 과장은 ‘현 등급제의 불가피성’을 강조했으며, 김 사무총장은 ‘의학적이 필요하다면 변형·손상으로 보자’고 제시했다. 서 의장은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인지 판정하는 기준만 있으면 된다’고 바라봤고, 박 공동대표는 ‘의학적 기준으로 나누는 것이 없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상임대표는 “판정기준 자체에 문제점이 많다. 사회적 환경은 반드시 봐야 한다. 의학적 기준은 부차적 문제.”라며 “지금의 관계들 속에서 이런 문제까지 종합적인 판단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의장은 “장애등록을 할 때는 최소한의 기준을 봐야 하기에 의학이 필요하지만, 등급에 있어서는 필요 없다.”며 “얼마나 ‘능력이 있나’가 아닌 환경적 요인만 참고하면 된다.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인지 판정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사무총장은 “의학적 기준이 무엇인가.”라며 “이 사람이 어떠한 기능을 할 수 있는지 보고 보조기구를 주는 것이 ‘의학적 기준’으로 나눈 등급이 필요한가. 의학적 기준을 장애등급으로 보면 동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주장에도 정 과장은 “기초생활수급자를 정할 때 소득을 본다. 장애인지원 대상자를 정할 때도 장애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의학적 판정이 중요한 것.”이라고 입장을 굳혔다.

“예산 확보 및 새로운 판정 기준 마련돼야”

박 상임대표는 장애등급제의 개선이나 폐지를 위해 선별해야 하는 과제로 ‘예산’을 꼽았다.

그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면, 현재 있는 감면제도가 영향 받을 것.”이라며 “장애인의 간접소득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지금의 체계를 약간 변화시키는 것, 직접소득을 위한 예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김동범 사무총장. ⓒ최지희 기자
▲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김동범 사무총장. ⓒ최지희 기자
김 사무총장은 “등급제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대상자를 선정하기 위한 별도의 표가 있어야 한다. 개별화된 서비스의 대표적인 것이 활동보조서비스.”라며 “활동보조서비스는 별도의 도구에서 환경적 요소를 본다. 독거장애인에 좀 더 많은 시간 주고, 보호자가 미성년자거나 장애인이거나 하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하지만 욕구 반영이 미흡하다. 1급 장애인이지만, 활동보조가 아닌 다른 서비스로 전환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최소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 의장 역시 “중증과 의학적인 것이 아닌,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 개인 개별화를 하는 것이 선별 과제가 아닌가 싶다.”고 김 사무총장의 의견에 힘을 더했다.

이에 대해 정 과장은 ‘판정도구를 개편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며, 중·경증으로 나누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나라 법체계가 갖고 있는 어려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상담해서 지원한다’는 것은 어느 법에 어떻게 쓰여 있는지 설명하고 안내한다는 말.”이라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상담으로 찾아 주는 것이 아닌, 법적인 체계를 안내하는 체제다. 이런 상황에서 분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세세한 법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체제가 바뀌었을 때 누군가 손해 보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선정기준을 바꾸다보면 서비스를 받던 사람이 탈락하게 된다. 이 숫자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새로운 체계와 판정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이런 작업들이 필요한 중간과정으로, 중요한 대안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서 의장은 장애등급제 폐지 과정에서 판정 위원회와 함께 TF팀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최지희 기자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최지희 기자
전장연 박 상임대표는 “지금과 같은 관 주도의 획일적인 판정체계에서 판정받으면, 현안 문제에 대해서 개인별, 평가와 사회적 욕구 등을 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며 “방향과 관련해서 장애계가 합의할 수 있었으면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제정하겠다고 했다. 힘을 합치면 등급제 폐지까지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라며 다음 달에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제안하고, 구체적 내용은 박근혜 정부에서 단계적 절차를 밟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장총 김 사무총장은 “장애인은 ‘몇 등급이라는 고정적 관념’을 갖고 있다. 제도과정에서 등급제 없애는 것은 선입견이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부정적 인식을 없애고 창의적으로 할 수 있어야 좀 더 좋은 제도도 마련할 수 있다.”며 “올해가 제도를 재정비할 수 있는 중요한 한 해다. 올해와 내년은 등급제를 없앤다는 계획 아래 적격성 등을 2년 동안 완결하고, 시범사업을 2017년부터 전면적으로 시행해 현 정부가 진행되는 5년 안에 완성하자.”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정 과장은 ‘어려운 일’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는 “새로운 제도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많은 비용과 희생이 따르기 때문에, 한번 제도를 만들 때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필요한 과정이 있다면, 장애계와 함께 의논하고 상의해야 할 것이다. 79개 서비스가 법령으로 엮여 있으면서, 등급제도와도 얽혀 있다. 소득기준과 인정조사가 일부 분리돼 사회환경 요인과 신체적 기준을 판정기준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과정을 의논하면서 이뤄나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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