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시민단체 성명서

1. 대법원 형사 2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지난 28일(금) 일종의 행위예술인 “플래시 몹(flash mob)”도 정치적 주장이 들어가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에 따른 신고대상이 된다고 판결하였다. 이번 판결은 청년들의 노동권 향상을 위해 2010년 만들어진 세대별 노조 “청년 유니온”이 2010년 4월 4일 명동에서 노동부가 자신의 노조 설립 신고를 반려한 것을 규탄하며 펼친 플래시 몹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재판부는 위 플래시 몹에서 '청년들도 일하고 싶다', '정부는 청년 실업 해결하라'는 구호를 외친 것을 문제삼아 “김씨가 주최한 모임은 비록 널리 행위예술의 한 형태인 '플래시 몹' 공연 형식으로 진행됐지만 주된 목적과 진행 내용과 소요시간 등 제반 사정에 비춰볼 때 집시법 제15조에 의해 신고의무의 적용이 배제되는 오락 또는 예술 등에 관한 집회라고 볼 수 없고, 그 실질에 있어 정부의 청년 실업 문제 정책을 규탄하는 등 그 주장하고자 하는 정치, 사회적 구호를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려는 의도 하에 개최된 집시법 제2조 제1호의 옥외집회에 해당해 사전신고의 대상이 된다"고 하였다.

2. 표현의 자유 연대(운영위원장 이호중 교수, 서강대)와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이번 판결은 현행 집시법 상 신고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더욱 강화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3. 통상 행정법상 신고의무는 행정청에 정보를 전달하여 질서유지에 협력하도록 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상 처벌되거나 해당 행위 자체가 금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집시법 상 집회에 대한 사전신고제는 각종 금지통고제도와 결합하여 실질적으로는 허가제(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것)처럼 운용되고 있다. 이는 우리 헌법 제21조가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는 것에 위배된다. 또한 신고 대상 집회의 범위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아 1인 시위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한 모든 인간의 회합이 신고의 대상이 된다. 집시법 상 신고제의 위 두 가지 문제점이 합해지면 사실상 모든 인간의 회합은 사전에 경찰에 의해 허가되어야만 허용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4. 그 동안 경찰이나 법원은 신고제가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하여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며 집시법 제15조의 존재를 그 이유 중 하나로 들어왔다. 집시법 제15조가 많은 다양한 집회에 대해 아예 집시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는 취지이다. 집시법 제15조가 위와 같은 인권침해적 신고제도가 관혼상제, 예술, 학술, 종교 행사들까지 적용될 경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강화되는 것을 일정정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여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아무런 위험성도 없이 문화적 공연형식으로 진행되었던 플래시 몹이 집시법의 적용대상이 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어 집시법 상 신고제가 허가제처럼 운영되지 않는다는 그 동안의 경찰이나 법원의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5. 이렇게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현행 집시법 상 신고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는커녕 기본권 침해적 신고제에 대한 숨구멍으로 그나마 작용하고 있었던 집시법 제15조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케 하여 집회의 자유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기에 비판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집시법 제15조를 대법원처럼 해석하게 된다면, 그것은 정치적 성격이 조금이라도 담겨 있는 한 어떤 형태의 집단적 표현이라도 모두 집시법에 의한 ‘신고=허가’의 대상으로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가장 강력히 보호받아야 할 정치적 표현을 오히려 가장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할 표현으로 건주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집시법 제15조의 적용 여하는 해당 표현이 정치적 성격을 갖는지 여부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행동에 따른 다른 권리와의 충돌가능성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 사건 플래시 몹은 그러한 충돌의 위험성이 전혀 없는 표현으로서 당연히 신고의 필요성조차 인정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표현의 자유를 누구보다도 엄중하게 보호해야 할 대법원이 이와 같은 해석을 통하여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질식시키는 것은 기본권 보장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법부의 임무를 스스로 방기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대법원처럼 해석한다면 집시법은 방법․시간․장소규제라는 정당한 입법목적을 넘어 실질적인 내용규제의 법률로 전환된다. 이런 규제는 당연 위헌이다.

6. 그리고 이번 논란을 계기로,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어 왔고,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서는 모든 인간의 회합에 적용될 수 있는 현행 집시법 상 신고제를 폐지하고, 실제로 위험이나 법익침해를 발생시킨 집회에 대해서만 집시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집시법이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2013. 4. 8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다함께, 문화연대, 미디어기독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불교인권위원회, 서울인권영화제,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인권단체연석회의, 인권운동사랑방, 인천인권영화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언론노동조합,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작가회의, 한국진보연대)
인권단체연석회의(거창평화인권예술제위원회,구속노동자후원회,광주인권운동센터,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다산인권센터,대항지구화행동,동성애자인권연대,문화연대,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주주의법학연구회,부산인권센터,불교인권위원회,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사회진보연대,새사회연대,안산노동인권센터,HIV/AIDS인권연대나누리+,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울산인권운동연대,원불교인권위원회,이주인권연대,인권교육센터‘들’,인권과평화를위한국제민주연대,인권운동사랑방,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전북평화와인권연대,전쟁없는세상,진보네트워크센터,천주교인권위원회,청주노동인권센터,한국교회인권센터,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한국비정규노동센터,한국DPI,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한국HIV/AIDS감염인연대KA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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