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박흥수 열사의 분향소 ⓒ이지은 기자
▲ 故 박흥수 열사의 분향소 ⓒ이지은 기자

장애해방열사단 장해해방운동가 故 박흥수 열사의 제12주기 추모제가 21일 오후 1시경 경기도 파주시 서울시립승화원 제2의 추모의 집에서 열렸다.

추모제는 장애해방열사단 박승하 활동가, 민족주의열사·희생자추모(기념) 단체연대회의 이형숙 집행국장, 최옥란열사추모사업회 박경석 회장, 장애해방열사단 박김영희 대표를 비롯해 故 박흥수 열사와 생전에 장애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동료 및 지인과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추모식은 민중의례를 시작으로 故 박흥수 열사와 현장에서 함께 했던 동료와 지인들의 추모발언이 이어졌다.

장애해방열사단 박김영희 대표는 故 박흥수 열사를 “장애운동에 있어 노동을 통해 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몸으로 증명하신 분.”이라고 기억하며 “가진 것 없는 현실 속에서도 장애인이 차별받는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장애운동 육성을 통해 꺼지지 않는 하나의 횃불을 만드셨다. 오늘 이 자리가 단순히 故 박흥수 열사를 기억하는 자리가 아닌 그분이 장애운동을 통해 이루고자 하셨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되새기는 자리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옥란열사추모사업회 박경석 회장은 “20년 전 장애인의 현실과 오늘 2013년 장애인의 현실을 비교했을 때 양적으로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다.”고 말하며 “故 박흥수 열사와 함께했던 88년 투쟁의 과정들을 하나하나 얘기하며 왜 그 당시 장애인올림픽보다도 장애인에 대한 생존권을 먼저 이야기해야만 했는지, 그때의 투쟁이 없었다면 지금의 투쟁이 의미가 있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며 장애인의 권리를 적극적인 투쟁으로 지키려 했던 故 박흥수 열사를 기억했다.

분향소에서 故 박흥수 열사의 넋을 기리는 제사가 치러진 뒤 납골실에서 故박흥수 열사 자신이 삶 속에서 끊임없이 외쳤던 장애인 권리를 위한 투쟁의 뜻을 되새기며 추모제가 마무리됐다.

故 박흥수 열사는 1958년 5월 15일 영등포에서 태어나 2세 때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1987~1988년까지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직업훈련과정 동문회 ‘싹틈’ 회장을 역임하며 장애인의 노동을 위해 힘썼다. 1988년 주민의 반대로 건립이 무산된 신망애재활원 건립 촉구 투쟁을 벌였고 같은 해 88년 장애인올림픽 개최를 반대하며 장애인의 생존권을 위해 투쟁했다.

1992년에는 장애인 시설인 정립 회관의 비리문제와 관련해 점거 농성을 벌였고 1995년 서초구청의 살인적인 노점상 단속에 항의하며 서초구청에서 분신한 최정환 열사를 위해 투쟁했다. 그 후로도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생존권을 보장하지 않는 현실에 적극 저항하며 장애운동의 육성과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는 2001년 7월 23일 지병으로 운명했다.

  ▲ 故 박흥수 열사의 동료와 지인들이 그를 기리며 묵념을 하고 있다. ⓒ이지은 기자  

▲ 故 박흥수 열사의 동료와 지인들이 그를 기리며 묵념을 하고 있다. ⓒ이지은 기자

 

  ▲ 故 박흥수 열사의 동료과 가족이 그를 향해 절을 올리고 있다. ⓒ이지은 기자  

▲ 故 박흥수 열사의 동료과 가족이 그를 향해 절을 올리고 있다. ⓒ이지은 기자

 

  ▲ 故 박흥수 열사가 안치된 납골실에서 동료들이 그를 기억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지은 기자  

▲ 故 박흥수 열사가 안치된 납골실에서 동료들이 그를 기억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지은 기자

 

  ▲ 故 박흥수 열사의 생전 모습. ⓒ이지은 기자  
▲ 故 박흥수 열사의 생전 모습.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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