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681곳 유치원 장애유아 한 명도 안 다녀…중증장애유아 상황은 더 ‘심각’

“내년에 초등학교 취학 통지서가 날아온다 하더라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아직까지 우리 아이에게 교육을 받을 권리는 ‘산 넘어 산’이에요.”

지난해 누리과정 개편에 따라 장애 아동 무상보육이 유치원 과정까지 확대 시행되고 있지만 다수의 장애 아동, 특히 중증장애가 있는 유아에게 유치원 문턱은 여전히 높다.

뇌병변장애와 발달장애가 있는 딸 규리를 키우고 있는 박태성·이정숙 씨 부부의 사연도 그러하다. 규리는 올해로 유치원 교육을 받아야 할 시기인 만 6세가 됐지만, 유치원에 갈 수 없어 하루종일 집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 가까운 동네 유치원 가운데 규리를 받아주겠다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던 것.

규리의 어머니 이정숙 씨는 “규리가 태어난 후 줄곧 물리치료만 시키다가 유치원을 보낼 나이가 돼 입학절차를 알아보니 생각보다 상당히 복잡했다.”고 밝혔다.

규리가 유치원의 벽에 가로막힌 것은 다름 아닌 ‘신변 처리 문제’였다.

이 씨가 아이의 입학 여부를 유치원 측에 문의했더니 ‘아이가 걸을 수 있는지, 배변훈련을 받았는지, 말을 할 줄 아는지’와 같은 세 가지 신변처리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입학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씨는 “규리가 다닐 수 있는 유치원 전화번호를 알아본 후 줄곧 문의 전화를 했지만 ‘입학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 후에는 아예 유치원에 보내는 것을 체념하게 됐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매년 특수교육대상은 넘치고, 특수교사·특수학급은 부족하고

▲ 박태성·이정숙 씨 부부와 딸 규리. ⓒ정유림 기자
▲ 박태성·이정숙 씨 부부와 딸 규리. ⓒ정유림 기자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치원에 다니는 만 3세~초등학교 취학 전까지의 원아 수는 2011년 56만4,834인, 지난 해 기준으로 61만3,745인을 기록했다.

한편 특수교육대상 학생 수는 일반 학생 수와 달리 매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학생은 매년 20만여 명 이상 씩 감소 추세에 있으나, 특수교육대상 학생 수는 매년 3,000여 명 이상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행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4조에 따르면 특수교육대상자가 학교에 입학하고자 할 때 장애를 이유로 입학 지원을 거부하는 등의 차별을 해서는 안 되고, 제3조에서도 특수교육대상자에 대해 유치원 과정의 교육을 의무교육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특히 정부는 지난해 장애아동 의무교육 대상자 범위를 만 5세에서 3세 이상으로 조정하면서, 장애 영·유아들의 교육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지만, 중증장애아의 가정에는 그 혜택이 크게 돌아가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누리과정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참 좋았어요. 우리 입장에선 교육을 시키고 싶은데 못 하는 입장이었으니까요. ‘누리과정’이라는 것은 부모가 교육을 안 시키면 법적으로 제재를 받는다는 뜻 아닙니까. 그런데 누리과정이 시행됐음에도 장애자녀를 키우고 있는 가정은 그것을 체감할 수 없다는 게 현실이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증장애 자녀가 있는 가정은 경제적인 부담이 줄어들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중증장애가 있는 가정에서는 이를 전혀 체감할 수가 없다 보니까 과연 이것을 의무교육이라 하면서 우리가 ‘유치원에 자녀를 당당하게 맡길 수 있는 구조인 것인가’라는 것은 의문이 드는 것이죠.”

-규리의 아버지 박태성 씨

하지만 서울시 교육청이 ‘2012 서울시내 장애 통합 유치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서울 시내 681개 유치원에는 장애 유아가 단 한 명도 다니지 않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본지가 중증장애 유아의 입학이 가능한지 임의로 서울에 있는 유치원 10곳을 대상으로 문의전화를 해 본 결과, 대다수의 사립유치원에서 ‘본원은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고, 학생이 혼자서 배변활동을 하는 등의 신변처리가 되지 않으면 입학이 곤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A유치원 원장 B 씨는 “사립유치원은 공립 병설유치원에 비해 장애인편의시설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중증장애유아가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며 “사립유치원의 구조 상 하루종일 그 아이만 돌보기에는 특수교사 충원 문제 등 해결돼야 할 문제가 많다. 공립 병설유치원 쪽으로 (입학을)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실제로 2011년 4월 기준, 전국의 유치원 56만여 곳 중 국·공립을 제외한 사립 유치원은 전체의 약 78%인 43만 8,739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도 중증장애아들이 양질의 유아교육을 받지 못하는 이유로 ‘특수교사 및 특수학급의 수의 부족’을 꼽고 있다.

현행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는 특수교육학생 4인 당 1인의 비율로 특수교사를 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지난 해 민주당 유은혜 의원과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가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특수교사의 법정정원 1만6,831인 중 실제 배치된 특수교사는 9,416인으로 전체의 55.9%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으로 정한 특수교사 정원이 확보되지 않음으로 인해 ▲특수학급의 과밀학급 현상 지속 ▲특수학급 신·증설 시 걸림돌 작용 ▲기간제 교원 양산 등의 부작용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장애인교육권연대 김기룡 사무처장은 “국가에서는 현재 유치원에 들어오는 장애학생의 수가 적다는 이유로 교사 선발에 있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며 매년 유아특수교사를 10인 안팎으로 채용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유아특수교사 현장에서는 가르칠 인원이 부족해 비정규 특수교사들을 많이 채용하는 구조가 되면서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육부가 지난해 발간한 ‘2012 특수교육통계’ 자료집에 따르면, 유치원의 특수학급과 전일제 통합학급에 다니는 학생 수는 미취학 학령기 장애아동 8,452인의 34%에 불과한 2,843인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으며, 편의시설과 보조기기 등 학습용 기자재의 수 또한 장애학생의 전체 수요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전문가 “유아기는 발달 최적화 되는 시기…교육 미루면 안 돼”

현재 장애 1급 등록증을 가진 중도·중복 장애학생이 배치된 특수학급은 전국의 55.6%에 이른다.

지난 해 교육부의 ‘특수교육 운영계획’에는 특수교육 보조인력 지원계획에 근거, 특수교육대상 학생 중 특수교육 보조원 배치가 필요한 학생을 선정하되, 중도·중복장애학생을 우선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지난 해 조사 결과, 중도·중복장애 특수교육대상자를 위해 체계 개선 방식을 지원하는 학급 비율은 86.1%였고, 체계 지원이 되지 않아 적절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학급의 비율은 17.8%로 나타났다.

중증장애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또한 ‘중증장애아에게 교육에 대한 진입 장벽이 지나치게 높다’는 의견에 공감했다.

박 씨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아이를 보살필 수 있는 구조가 전혀 안되기 때문에 장애아동의 유치원 진입장벽이 높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장애아를 가르치고 보호할 수 있는 교사가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고, 장애아를 위한 교구 또한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특수교사 인력 확보 문제가 가장 큰 문제이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만약 일반 유치원을 보낸다고 했을 때, 열 몇 명의 비장애 유아들이 있고 장애 유아 두세 명이 있는데 이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교사가 없다고 하면 과연 어떤 부모가 믿고 교육을 시킬 수 있을까요. 비장애 아이들은 교육을 받고 있는데 우리 아이는 또 차별과 방치에 놓일 수 없는 것이죠. 일단 교사 인력부터 확보가 되면 아마 유치원 측에서도 좀더 긍정적으로 장애 유아를 받을 수 있을 텐데, 기본적으로 그러한 구조 자체가 안돼 있으니 장애 유아를 받을 수 없는 환경일 수밖에요. 기본적으로 특수교사 문제부터 튼튼히 구축돼야 장애유아도 마음놓고 교육제도를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부가 올해 특수학교의 인건비와 장애학생의 교육 지원을 위해 마련한 예산은 지난 해보다 35억 원 가량 늘어난 461억 원 선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같은 비용은 유치원과 초·중등 교육 예산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장애 유아만을 위한 교육비 예산은 따로 편성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유아기는 전 생애에서 발달이 가장 최적화 되는 때이므로, 이 시기의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중부대학교 유아특수교육과 이명희 교수는 “생애주기 상 발달 곡선은 0~3세까지, 3~5세까지 일생에서 가장 급격한 발달을 이루는 시기.”라며 “특히 장애 유아의 경우 이 시기에 적절한 발달적 자극과 환경을 제공해 최적의 발달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특수교육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경험의 결여가 점차 축적된다면 더 많은 발달의 지체를 가져오기 때문에 유아기 때의 특수교육 지원은 초·중등 시기의 교육투자에 비해 훨씬 발달적 교육 효과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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