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유아 특성 고려치 않아 반 편성 ‘오락가락’, 치료사에게는 ‘근무환경개선비’ 미지급

 

“누리과정 공통을 주고 거기에 맞춰서 교육 하라고 하니까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개별화 교육이 우선인지 누리과정이 우선인지 헷갈릴 정도로 아이들의 발달정도를 무시한 운영과정이 너무 많습니다.”

지난해부터 3~5세 연령별 누리과정이 시행된 이후 곳곳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장애아동은 의무교육과 취약보육 대상자라는 법률적 권리를 가졌음에도 누리과정과 유보통합(유아교육·보육 통합) 논의에서 갈 길을 잃은 지 오래다.

현재 중증 뇌병변장애아동 27인이 교육을 받고 있는 서울의 A 장애아동 전문어린이집에서는 누리과정 시행 후 반 편성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러야 했다. 최근 누리반에서 교육 받던 학생 한 명이 갑자기 어린이집을 나간 게 이유였다.

정부가 올해 3월부터 누리과정 운영안을 실행하면서 통합보육시스템 입력 시 누리장애아반의 경우 장애아동 3인이 채워져야만 새로운 누리장애아반을 편성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

어린이집은 이 자리를 만 2세 학생으로 충원하려 했으나 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만 3~5세 유아에게만 적용되는 누리과정 시행 반에 만 2세 유아는 들어갈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반 편성을 다시 할 것을 어린이집에 요구했다.

3~5세 누리과정 운영안이 실행되기 전인 지난해에는 장애아동 2인으로 한 반을 구성하거나 한 반에 장애아동 초과인원 1인까지 허용했다. 또한 비장애아동이 입소할 때에는 장애아동과 혼합반 구성이 2인 당 1인으로 가능했다.

A어린이집 신미섭 원장은 “장애아동은 어린이집에 왔다가 적응을 못하면 금방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하고 다른 어린이집에서 적응하지 못해 이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등 한 보육시설에 오래 머무르는 경우가 드물다.”며 “담임에 대한 애착이나 표현이 남다른 장애유아에게 심리적·정서적 불안감을 줄 수 밖에 없다. 다른 친구의 입·퇴소가 발생할 때마다 반을 조정하라고 하면 담임반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1년에도 몇 차례 발생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장애아동 한 반에 장애아동이 1인일 경우 교사 인건비 지원을 2개월로 한정하고 있어 서비스 인력의 노동권 또한 열악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3인·3인·3인·1인으로 구성된 반의 경우, 3인 반의 한 명이라도 퇴소하게 될 경우 3인·3인·3인의 반 구성을 유지하기 위해 1인만으로 구성된 장애아동이 반 이동을 연쇄적으로 해야 한다. 또한 1인 반의 아동이 퇴소할 경우에는 아동 변동에 따라 정규직 교사로 채용한 보육교직원을 강제로 퇴사시켜야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비장애아동 어린이집의 경우 아동의 입·퇴소에 따른 인원수가 장애아 한 반의 경우보다 많아 탄력적으로 유지·관리될 수 있으나 장애전문 어린이집의 경우 입·퇴소 사례가 자주 발생함에 따라 장애종일반 또는 누리장애아반 정원 3인에서 1~2인의 퇴소로 한 반이 없어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

아울러 장애전문어린이집에서는 보육교사와 특수교사, 치료사가 협력체제를 이뤄 장애아 보육을 하게 되는데 어린이들의 재활치료를 담당하는 치료사들에게 누리수당을 포함해 근무환경개선비 또한 지급되지 않고 있다.

일반어린이집 누리과정반 교사에 비해 열악한 근로 조건에 시달리며 자긍심을 갖고 일할 동기를 상실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4년 간 장애아 전문어린이집에서 치료사로 근무했다는 마선아 씨는 “장애아동 보육은 보육 따로, 치료는 치료 따로 이렇게 할 수가 없다.”며 “가령 밥을 먹을 때도 치료적인 부분이 들어가게 된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세라든지 휠체어를 앉을 때 어떻게 앉아야 하든지와 같이 모든 보육 안에 치료의 부분이 다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어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이번 누리과정에 치료사는 처우 개선비가 포함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더 좋지 않은 상황이긴 하다.”며 “‘지금 당장은 처우가 좋지 않아도 조금 있다 보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견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 원장은 “누리과정을 하기가 굉장히 겁이 난다. ‘내년에는 누리과정을 하지 말아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될 정도다. 교사들 간에도 어려움이 굉장히 많다.”며 “똑같은 노력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누리반을 맡은 교사는 처우 개선비를 더 주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처우 개선비를 받지 못한다. 정작 아이들을 잘 보육해야 한다거나 좋은 교사가 되는 일에 신경 써야 할 교사들에게 누리과정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다 주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접근성부터 공간까지, ‘통합’ 고려 없어

정부는 지난해 1월 만3·4세 유아에 대해 가정의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유치원비, 보육비를 지원해 아동에게 필요한 기본 소양과 능력을 제고하는 누리과정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하고, 현재 만3~5세 연령별 누리과정을 시행하고 있다.

국내 만3~5세(의무교육 대상) 장애유아의 수는 1만4,850인.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서는 만3~5세 장애유아를 의무교육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만 3~5세 특수교육 대상자가 일정한 교육 요건을 갖춘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유치원 의무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다.

전국장애아동보육제공기관협의회(이하 장보협)은 “누리과정은 유치원과 어린이집 간의 격차를 줄이고 양 기관 간의 공평한 교육 수준을 마련해, 국가 수준에서 유아에게 동일한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지만, 정부는 장애유아 의무교육의 조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아동 전문어린이집에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명시된 의무교육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장애아동 보육에 적합한 물적 환경과 전문성을 갖춘 인적 자원이 필요함에도 실상을 들여다 보면 환경 자체가 갖춰져 있지 못한 곳이 많은 상황이다.

실제로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해 장애·특수통합반에서 5세 누리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교사에게 적용 형태를 조사한 결과, 장애아동 특성에 맞춰 누리과정 활동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경우가 전체의 76.2%, 5세 누리과정을 장애아동에게도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가 21.0%로 나타났다.

이 고문은 “뇌병변장애아동이나 발달장애아동들은 비장애아동에 비해 최소 세 배 이상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결국 그 손해는 비장애아동에게 가게 돼 있다.”며 “비장애아동과 장애아동 모두에게 유리한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환경부터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어 “보육시설을 오갈 때 이동에 따른 비용을 지원하는 등 장애아동은 특별히 이동권이나 접근권이 철저히 보장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효율적인 누리과정 시행을 위해 현재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로 이원화돼 있는 보육체제를 교육부로 이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 특수교육법에서는 만3~5세의 장애유아를 의무교육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를 관리하는 주체 역시 교육부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것.

현재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보육교사-특수교사-치료사로 이뤄지는 종일반 체계와 유아특수교사의 반일제 체계로 교사들의 직제가 다른 한편, 법체계 또한 영유아보육법·장애아동복지지원법과 유아교육법·특수교육법으로 나뉘어 있어 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고문은 “특수교육법에서 장애유아는 만3~5세가 의무교육으로 돼 있다. 장애유아가 의무교육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이를 교육부가 전담해 학생과 교사에 대한 지원 등이 이뤄지는 게 맞지 않나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애아동의 특성을 고려한 별도의 유보통합 청사진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장애아동이 어디에 있든 유아라면 누구나 동일한 서비스를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 고문은 “장애아동은 특수교육에 더해 조기 개입이라는 차원에서 다양한 치료 지원이 필요하다.”며 “보육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이들이 어린이집에 있든, 유치원에 있든 각 개인에 맞는 치료와 교육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실타래처럼 엉킨 장애아 누리과정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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