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무국적과 이주배경 아동 출생등록에 관한 컨퍼런스’ 열려

▲ 국제 구호개발 비정부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층 제1소회의실에서 ‘무국적과 이주배경 아동 출생등록에 관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 국제 구호개발 비정부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층 제1소회의실에서 ‘무국적과 이주배경 아동 출생등록에 관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부모의 출신배경 때문에 제도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국제 난민과 이주아동들에게 ‘출생등록’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국제 구호개발 비정부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층 제1소회의실에서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국가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무국적과 이주배경 아동 출생등록에 관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출생등록 연구를 진행한 호주 시드니대학교 김철효 연구원과 유엔난민기구 마크 맨리 무국적부장, 법무부 관계자 등이 참석해 국내 출생등록과 무국적 현황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제도적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난민이나 미등록 이주아동 등 출생등록에서 배제된 아동이 존재함에도 이들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매우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출생등록을 못 하고 있는 아동의 수가 얼마인지 파악조차 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외국인은 해당국 대사관에서 출생등록을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는 한국 정부의 주장과는 거리가 먼 상황. 또 2011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 2012년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 2012년 유엔인권이사회 국가별 인권 상황 정기 검토(UPR) 등 유엔 차원에서 한국 정부에 출생등록 제도 미비 및 개선 방안 마련을 지적한 것과도 궤를 같이 하는 것.

실제로 한국에서는 부모 양측이나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한국인인 경우에만 출생신고를 인정하며 부모가 모두 외국인일 경우에는 자국 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자국에서의 박해로 한국에 정착한 난민의 경우, 신분 노출에 대한 우려로 대사관 출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체류 자격이 불안정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역시 본국으로 귀국을 종용하거나 까다로운 서류나 높은 수수료 등을 요구해 출생등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로 인해 난민의 경우 대사관 방문에 대한 두려움으로 출생등록을 하지 못한 채 병원에서 발급한 출생증명서만 갖고 있거나, 미등록 이주노동자 부모의 경우 자녀의 강제 출국을 우려해 자녀를 고아인 것처럼 속여 보육 시설에 맡기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이번 연구를 통해 나타났다.

▲ 이주배경아동의 출생등록 제도 연구를 진행한 시드니대학교 김철효 연구원.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 이주배경아동의 출생등록 제도 연구를 진행한 시드니대학교 김철효 연구원.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김 연구원은 “‘출생등록’은 한 인간의 출생과 존재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공식적인 기록이자 의료나 교육 등 아동이 누려야 할 사회적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중요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출생등록을 통해 국가에 의해 존재 자체를 확인받음으로써 건강권, 교육권 등 아동의 성장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권리들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국제인권규약은 자국 내에서 출생한 모든 아동에 대해 국가가 출생등록을 실시할 의무가 있다고 정하고 있다.”며 “난민이나 미등록 이주아동 등 한국에서 태어났음에도 출생과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한국 정부는 속히 아동의 국적, 체류 자격 등 신분과 관련한 다른 법적 요인들을 같이 고려한 법적·제도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제도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외국국적 아동에 대한 출생등록증명제도의 도입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의 도입 ▲국내 출생 이주배경 아동의 안정적 체류와 권리 보장 국내에서 출생한 모든 아동에게 국적을 선택할 권리 부여를 주장했다.

이날 참석한 전문가들 역시 이주배경 아동의 ‘출생등록 의무화’에 관해 대부분 공감하면서도 출생등록 방식과 국적과의 연계 방안 등에 있어서는 입장 차를 보였다.

세이브더칠드런 김희경 권리옹호부장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은 한 국가의 자국 내 아동에게만 한정된 권리가 아니다. 출생등록은 그 자체가 ‘권리’”라며 “이주배경 아동의 출생등록제가 의무화돼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부장은 출생등록제의 구체적 방안으로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을 제안했다.

김 부장은 “출생신고를 하는 장벽을 낮추고 병원을 통한 자동 등록 체계에 의해 모든 출생 사실이 정부에 신고된다면 아동의 부모가 난민신청자든 미등록 이주자든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될 수도 있다.”며 “입양 대상 아동의 출생등록과 연계해서도 부모가 수동으로 등록해야 하는 현행 출생신고 체계 전반을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박영아 변호사는 “이주아동을 위한 출생등록제도의 구현은 필수.”라고 강조하면서도 국적과의 연계방안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혈연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특성 상 국적과 연계돼 있는 현행 국내 출생등록제도는 이주아동의 출생등록을 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이주아동의 출생등록을 마련하기 위해 △현행 출생등록제도상 출생등록과 국적의 연계를 끊고 국민과 이주아동의 출생등록 통합 △이주아동을 위한 별개의 출생등록제도 마련 △국적 취득과 관련 출생지주의 보충 등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장준호 검사는 “이주배경 아동의 보편적인 출생등록제도 도입의 방향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속인주의(국적주의,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은 자국의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법 제도 상 당장 국제적 기준을 도입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업무가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으며 “전 부처의 협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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